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세월호 ‘사고’가 ‘참사’가 되고, 죽은 자식을 못 잊어 가슴에 묻고 울부짖는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대한민국의 10월의 첫 주일, 세월호의 아픔으로부터 173일째 되는 날에 광주 국립5.18민주묘역을 찾았습니다. 잊지 말자더니, 미안하다더니,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더니, 반 년도 채 못되어 하다하다 못해 ‘세월호 피로감’조차 입에 담는 세태를 바라보면서, 아픈 가슴으로 나선 순례였습니다.
이 순례는, 세월호 참사로 여지없이 드러난 몰상식과 몰인정이 횡행하는 비정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면서, 우리 또한 이 사회의 부끄러운 한 부분이요 책임 주체임을 자성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한 세기의 역사만 돌아보더라도 이 땅에 아로새겨진 아픔들이 무수할진데, 또 하나의 비극적인 아픔을 더하고 만 것이 슬프고 또 슬프기만 합니다. 일제 침탈과 동학의 사그러진 꿈, 해방과 남북 대립, 전쟁과 체제 경쟁, 분단과 독재, 천민 자본주의와 비인간적 세계화로 이어지는 이 땅의 아픈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숱한 생명들을 기억하며 걸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우금치를 향해 걷던 동학군의 해방의 길이요, 고향을 뒤로하고 간도로 떠나가던 슬픔의 유랑길이요, 괴나리봇짐 지고 총포를 피해 갈팡질팡하던 정처 없는 피난길이요, 민주주의 사수를 결심한 시민군이 전남 도청을 향해 걸어가던 밤길이요, 6.10 시민항쟁의 민주영령 이한열 학생을 짊어진 민초들의 장례행렬이 걸었던 바로 그 길입니다.
작금의 정부는 정말 부끄럽고 한심하게도 국가 기념일에 부르지 못한다는 금지령을 내렸어도, 우리의 순례에서는 민주묘지의 추모비를 향해 입장할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졌고, 망월 민주묘지(구묘지)에서는 목청껏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자못 선동적인 가사에 가슴이 움찔했지만, 아마도 그것은 정곡을 찔린 아픔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너무도 소중한 우리 사회의 경험과 교훈이 물거품이 되고 있는 현실에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칼로 권력을 움켜쥔 군사 폭력 정권같이 정통성 없는 정권은 아니라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국민의 죽음을 방치하고 그 책임을 비껴가고자 거짓과 조작과 여론 몰이에 이념 잣대까지 들먹거리는 무책임과 철면피함은 할 말을 잃게 합니다. 눈물과 슬픔, 아픔과 위로마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천인공노할 작태가 백주 대낮에 주저함도 없이 허용되는 부끄러운 시대를 신앙인들이 침묵으로 살아온 때문입니다.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온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역사를 새로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새 하늘 새 땅의 꿈을 접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 첫째 날, "팽목항에 내려가며 느낀 흐린 날의 여운" 둘째 날, "우리는 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미안했던 걸까?" 셋째 날,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세상, 생명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넷째 날, "걸으면 생명이 보인다" 다섯째 날, "아이들 목숨값 흥정하는 부모는 되지 않겠다" 여섯째 날, "강변 꽃길 대신 매연 가득한 길을 걷는 이유" 일곱째 날, "자식 잃은 부모는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여덟째 날, "세월호 희생자 이름 적은 공책을 품고 갑니다" 아홉째 날, "세월호 참사를 보며 '5월 광주' 떠올린 이유"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