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업계’, 국가적 사회적 ‘세월호 참사’의 진원지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육상과 수영의 기본 종목에서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비록 겉치레는 번지르르하고 장대하지만 기본을 무시하는 한국의 민낯이 다시 한 번 뚜렷이 드러났다. 사회 곳곳이 모두 기본을 무시하는 이러한 나라에서 공정과 안전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인 셈이고, 그러니 세월호 참사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우리의 정치 역시 기본을 무시하는 특성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정치의 기본 조직인 정당은 하나 같이 부실 공사에 얼렁뚱땅 기본 틀조차도 잡혀 있지 않고, 이렇듯 기본을 무시한 ‘정치업계’에서 경쟁업자들의 장내 진입은 철저히 봉쇄한 채 오직 ‘정치업자’ 자기들의 독점적 이익을 보호하는 카르텔과 담합만이 관행화되어 있다.
이렇듯 기본과 안전을 무시하는 ‘정치업계’로 인하여 이 나라의 정치적 안전은 그 뇌관이 언제나 수시로 폭발할 수 있는 휘발성 불안정의 극치이다. 실로 이 나라 국가 안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 요인은 정치이다. 그리하여 우리 ‘정치업계’는 국민을 상시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주범이자 국가적 사회적 ‘세월호 참사’의 진원지이다.
“시민은 없다”- 한국 ‘양당 독재’의 특징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두 정당 후보만 ‘독점적으로’ 당선시키고 있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는 국민들의 정치 의사 반영의 왜곡이며 정치적 측면에서의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42%를 득표하였다. 수치적으로 분석해보면 전체 국회의원 300 명중 126석에 해당하는 비율이지만 실제로는 152석을 가져갔다. 민주당은 36%를 득표율을 보여 본래 108석이어야 마땅하지만 실제 의석은 128석이다. 양당이 담합해 46석을 더 가져간 것이고, 이는 주권자인 국민의 주권을 빼앗아간 것을 의미한다.
정치에서 협상과 합의란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유난히 ‘사쿠라’ 시비가 많았던 우리 정치에서 선명성은 전통적으로 칭찬의 대상이었고 덕목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선명성은 정당 기득권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정치권은 무조건적인 반대와 대립으로 점철되고 있다. 양대 정당은 “나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적이다”이라는 흑백론만 주창하면서 상대의 존재에 기대어 편승하고 ‘격렬하고 지속적인’ 반대와 투쟁에 의존하여 생존하는 절묘한 ‘적대적 공존’이다. 노론과 소론 혹은 서인 대 남인의 사생결단식 당쟁을 연상시키는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이다. 그러나 국회의 이러한 반대와 대결 구도는 역설적으로 양당 구조라는 기득권의 독과점과 고착화를 가속화시켰고, 이렇게 하여 우리의 정치는 민의가 왜곡 반영되고 정치세력 간의 공정한 경쟁이 배제된 ‘양당 독재’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제 독일식 비례대표제 등과 같이 사회구성원들의 지지율에 비례하여 각 정당에 의석이 배분되는 공정한 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 개선을 양대 정당이 솔선하여 추진할 가능성은 0%이다. 시민에게 선거일 하루 투표하는 행위 이외에 한 치의 권리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이 나라 ‘양당 독재’의 현저한 특징이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위헌 제소 운동 등 대중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분권과 합의가 강조되는 연정 정치
지금까지도 의연히 안정적인 복지국가로 그 위상을 자랑하고 있는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거의 모든 유럽 선진국들은 공히 비례대표제-다당제-연립정부로 구성되는 합의제 민주국가들이다.
독일에서 연정(聯政)은 독일 기본법 또는 기타 법률에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제도이다. 그러나 독일의 1949년 정부 수립 이후 연방과 주 정부의 구성에 있어 거의 대부분 연정의 구성이 일반화되어 왔다. 특히 연방정부 구성에 있어 정부 수립 후 1개 정당이 권력을 독점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항상 2개 이상의 정당이 연합하여 정부를 구성하였다. 따라서 군소 정당도 연합 형태로 국정 운영에 참여하여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독일의 연방제 원칙은 국가의 영토를 16개 주로 나누어 각기 주권을 가진 주와 연방이 국가권력을 분점하여 상호 협력하고 또 경쟁한다는 원칙이다. 독일 정치체제를 ‘수상 민주주의’라 할 만큼 연방 수상의 역할은 중요하다. 연방 수상은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이며, 정치행정의 핵심이다. 연방수상은 정책노선 결정권, 조각권, 비상시 군 통수권, 국가경영권을 가진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소통이 필요 없는’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외면적으로 독일 연방수상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독일이 항상 연립정부를 구성해왔기 때문에 수상의 권한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부운영에서 조정과 합의가 강조된다.
차라리 국민에 봉사하는 ‘계파’라도 있었으면
야당의 계파 싸움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사실 만약 현재 계파들이 정책경쟁이나 국민에 대한 봉사 그리고 민주주의의 실천에 치열하게 실천하는 의미에서의 그러한 계파 활동이라면 적극 지지해야 하고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렇듯 바람직한 계파라면 비록 그 계파가 10명밖에 없을지라도 이 나라 정치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계파가 독자적인 정당으로 성장하는 것이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매우 유효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계파란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뭉친 이익집단일 뿐이다.
국민의 뜻에 굴복하여 천하를 잡으라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동시에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수능재주, 역능복주, 水能載舟, 亦能覆舟). 민의를 거스르는 정치세력은 한때 인위적인 정치공학과 위계로써 국민을 속이고 꺾을 수 있지만, 결국은 초라하게 패퇴하는 법이다.
역천자(逆天者)는 망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한다. 그리고 인내천(人乃天), 국민이 곧 하늘이다. 국민의 뜻에 따르면 비록 처음에 미미할지라도 후에 반드시 흥할 것이나, 국민의 뜻을 거스르게 되면 반드시 일패도지 할 것이다.
부디 국민의 뜻에 굴복하여 천하를 잡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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