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걸으면 생명이 보인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걸으면 생명이 보인다"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생명평화 도보순례·<4>] 걷지 못하게 하는 문화와 세월호 참사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지난달 29일 팽목항을 떠나 서울 광화문을 향하고 있다. 내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두 다리를 믿으며 걸어서 광화문을 향하고 있다. 때로는 4차선 도로를 따라, 때로는 2차선 도로, 때로는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여 걷고 있다. 걷기 시작한지 넷째 날이 되니 발바닥에 물집도 잡히고 전에 없던 무릎통증도 생긴다. 함께 걷는 동료 순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흙길을 걸으면 얼마나 걷기에 좋겠느냐며 투덜거린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는 우리의 다리를 병들게 한다.

도로 위에서 차들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달린다. 사람이 지나가든, 동물이 지나가든 상관치 않고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우리 같은 사람이야 조심스럽게 갓길을 따라 걸으면 되겠지만, 동물들은 어찌하겠는가! 길가에 죽어간 동물들의 시체들이 즐비하다. 동물들의 사체를 보니 남일 같지 않아 보인다. 갓길이 있어 그나마 우리는 피할 수 있지만 그 갓길이 언제까지 존재하련지. 어떤 구간은 갓길마저 없는 구간이 있다.

4대강 사업의 결과로 강가에 쭉쭉 잘빠진 자전거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차도보다 덜 위험스럽고 한적하다. 그러나 발바닥과 무릎에 충격을 주는 정도는 매한가지이다.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오고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하나같이 속도를 멈추지 않고 쌩쌩 달리며 지나간다. 전방을 주시하며 열심히 달리는 모습이 마치 차들이 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순간 발바닥과 무릎에 통증을 느끼며 걷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자전거도로는 자전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우리 같은 도보 순례자들은 이방인!

차로 6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20여일에 걸쳐 걷는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일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시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인도도 확보되지 않은 길을 걷는 모습이 차를 타고 달리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까? 시가 100만 원 이상은 되어 보이는 레저용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비춰질까? 바보스럽게 보이겠지.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차를 타고 가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꽃잎들 사이로 오가며 꿀을 따는 벌들을 볼 수 있고, 도로 옆 농지에서 노동을 하는 주름진 어르신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차에 치어 죽은 동물들을 바라보며 잠시 기도할 수 여유도 있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것은 빨리 달려가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짓이다. 걷다보니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지지 못한 채 기성 문화를 강요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내에게 잘못했던 순간이 떠오르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아쉽게 한 언행들도 떠오른다. 내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고 내 이웃들에게 발생한 일에 대해 곱씹어 보는 공감하는 마음이 찾아온다. 종종 걸으며 나누는 대화 속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리의 한 대목을 건지기도 하고, 주위 풍경의 아름다움에 절로 시 한수가 읊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자꾸만 걸을 수 없는 문화로 변하고 있다. 그저 목표를 향해 빨리 나아가려고 속도를 높인다. 하여 굽은 길은 곧게 만들고 좁은 길은 넓게 만들어 빨리 달리도록 많은 돈을 투자한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걸으며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 것들을 놓치고 가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빨리 목적지에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세월호는 출항했고, 빨리 고수익을 내야한다는 생각에 세월호는 출항했으며, 빨리 뭔가를 회피해야 했기에 아이들은 물에 잠겨야 했다. 빨리 보도해야 한다는 마음에 언론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알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빨리 이전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세월호를 잊고 있다.

지난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사회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말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가라는 말이 있듯이 안전이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가는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빠름이 아닌 느림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 굽어져 있고 좁아 속도를 낼 수 없는 길, 가끔은 물웅덩이가 있어 주위를 잘 살펴야 갈 수 있는 길, 동식물들이 함께 이용하는 길. 이러한 길들이 많이 생기면 우리는 자연스레 걷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느림을 경험하며 미처 놓쳐버린 것들을 되찾을 것이다. 그러면 안전사회는 우리 눈앞에 놓이게 되리라 믿는다.
▲ 생명평화 도보 순례를 하고 있는 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 ⓒ성공회 생명평화도보순례단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