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노동문제의 핵심은 '간접 고용'이다. 기간제, 시간제, 근로 빈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쟁점이 '비정규직 문제'라는 타이틀 아래 얽히고설킨 모습을 드러낸 지는 꽤 오래되었다. 간접 고용도 그중에 하나이며, 새롭게 등장한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고용주가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채 숨어버린데 따른 고통과 분쟁은 근래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약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하청 노동자의 현실은 한국 자본주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핵심적인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러던 중에 들려온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사내 하청에 대한 불법 파견 판결 소식은 한 줄기 희망이 아닐 수 없다.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 1179명에 이어 기아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 468명도 소송에서 불법 파견 판결을 받아냈다. 현대자동차 불법 파견 문제로 법정 싸움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고, 최병승 씨에 대한 현대자동차 정규직 지위가 인정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지도 4년이 지났다. 이번 사건이 다시 대법원까지 가게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업종의 사내 하청 문제가 모두 법적인 판결을 받게 되기까지 앞으로 갈 길이 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자동차 업계의 불법 파견 판결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진짜 고용주를 찾는 것이 왜 중요한가? 아니, 진짜 고용주들은 왜 바지사장을 중간에 세우고 자신들은 그 뒤에 숨는 것인가? '간접 고용'이라는 무미건조한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그 회사를 위해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며 선을 긋는 행태를 지칭한다. 이렇게 해서 진짜 고용주가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첫째, 인건비 절감이다. 사내하청 노동자에게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현저하게 낮은 임금을 지불한다. 둘째, 재해 사고가 났을 때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셋째, 일감이 적을 때는 사내 하청 업체와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간단히 인원을 축소할 수 있다. 평소에는 고용 기간을 정하지 않은 노동자를 써서 그 숙련 기술을 충분히 이용하면서도, 그 노동자에 대한 책임은 어떤 방식으로도 지지 않는 것이 '간접 고용'이다. 진짜 고용주가 누리는 이 모든 이득은 뒤집어 놓고 보면 노동자에게는 억울한 차별이며 손해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산재가 나도 원청은 나몰라라하며, 항상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간접 고용 노동자의 현실이다.
이런 못된 관행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막을 방도는 없는 것인가? '불법 파견'이라는 용어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 노동법은 원칙적으로 간접 고용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적나라하게 말해서 중간착취고 사람장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에서도 사람 빌려주는 장사를 금지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제9조)'고 명시하고 있고, 직업안정법은 노동조합에 의한 근로자 공급 사업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근로자 공급 사업을 금지하고 있다. 이렇게 간접 고용을 제한할 수 있는 근대 노동법의 근간에는 다른 이에게 노동을 시켜서 이익을 본 자가 이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가 깔려있다. 요컨대 다른 제3자가 아닌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고용주와 노동자는 서로 무엇을 거래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준다. 그리고 국가가 중간에 서서 약속하는 사회보장제도에 들어가게 해 주는데, 일하다가 발생하는 사고로 인한 재해에 대해서는 누구의 과실인지를 묻지 않고 책임져 주는 것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노동자가 약속한 것은 정해진 시간동안 '고용주가 시키는 방법대로'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따옴표 친 '고용주가 시키는 방법대로'라는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노동의 결과물을 납품하기로 약속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드는지는 알 바 없고 아무튼 제대로 된 물건만 받으면 되는 것이 외주 하청이고, 이때 원청의 사업주를 이 물건을 만든 노동자의 고용주라고 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핵심은 누가 노동과정을 통제하는가에 달려있다. 고용주는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사람이고 노동자는 그 지시에 따라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원칙에 조그만 구멍이 뚫린 것이 '파견 노동'이다. 특정 영역에서 피치 못할 경우에 노동자를 빌려 쓰도록 합법화 한 것이 '근로자 파견법'이고 파견 근로자에 대해서 파견을 받은 회사가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 경우도 중간착취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 허용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고, 파견법을 어긴 불법 파견에 대해서는 원청 업체가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현대나 기아차가 사내에 들어와 있는 하청 업체 직원에게 실질적인 업무 지시를 하고 노동과정을 통제하였다면 실제로는 파견 근로자를 사용한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는데, 이는 제조업 생산직에서는 파견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법을 어긴 것이므로 해당 근로자는 현대나 기아차 정규직 직원이라는 것이다. 현대·기아 자동차 판결에서 작업 지시를 내린 실질적인 주체가 누구인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소위 컨베이어 시스템이라고 하는 흐름 공정 상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그 흐름을 통제하는 사업주의 의사에 따라 일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이번 기아차 판결의 분명한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서비스업에서는 어떨까?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 서비스 기사의 고용주는 누구일까? SK나 LG로고가 찍힌 작업복과 명함을 사용하고, 이 회사들이 다음에 가서 서비스해야할 곳을 정해준다. 서비스를 받은 고객에게 전화를 해서 서비스의 질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계속 고용 여부나 임금에 반영한다. 이렇게 노동과정을 통제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업종에서 누가 진짜 사장인지는 아직 법적으로 확인받지 못하였다. 노동조합이 진짜 사장이 나와서 교섭하라고 요구하면서 농성한 지는 오래되었다.
당신의 고용주는 누구인가? 당신의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이가 고용주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로 제공에 합당한 보호와 보상을 지급할 책임도 당연히 그에게 있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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