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한다. 일차적으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독려하는 목적이다. 아울러 근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새겨진 분열의 역사를 되새기고,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기 위한 순례이기도 하다. 순례단은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출발해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순례를 시작한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떠나 오는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이들은 순례 동안 매일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글을 <프레시안>에 싣기로 했다. 도보순례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유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오늘(9월 31일) 오전 8시부터 도보순례를 시작하였다. 비 오던 첫 날과는 달리 날씨가 개었고 옅은 구름덕분에 햇빛도 적당히 가려져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오늘은 온 종일 걷는 일정이라 몸과 마음의 다짐이 필요했다. 출발에 앞서 원을 그려 서서 서로를 향해 큰 절을 올리며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함께 걷지만 몸이 힘들어지면 작은 일에도 불편한 마음이 일게 마련이라 미리 양해를 구하는 일종의 예방책이기도 했다.
어젯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만났던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하신 말씀이 걷는 동안 계속 떠올랐다.
“우리는 어떤 보상을 바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를 모릅니다. 우리는 다만 아직 찾지 못한 아이들을 찾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의 바람을 사람들이 왜곡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특별법이 제정되어 원인이 밝혀지고 보상을 받더라도 이들이 결코 4월 16일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을 길을 걷는 성공회 사제들은 잘 알고 있다. 고통과 상처를 받은 이들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스스로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 홀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하려고 우리 사제들이 팽목항에서 부터 걷기 시작한 이유다.
하루 도보순례를 마치고 쉬던 중에 세월호특별법 여야합의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보순례자들 중에 아무도 그만 하자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진상규명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는 것을 익히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걷기로 한 것은 세월호 문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자는 뜻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걷는 생명평화 도보순례’의 구호는 ‘미안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변하겠습니다’이다. 사실 이 구호들은 이번 도보순례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것이 아니라, 4월 16일 이후 전국 곳곳에서 국민들이 내건 구호였다. 누가 먼저 시작하였는지 그 연원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호를 내 건 사람들의 처지와 동기도 서로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구호 아래 함께 모였고 공감했다. 처음 한 동안 교회, 학교, 관공서, 단체 그리고 개인들조차 ‘미안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을 건 것을 보고 국민적 추모의식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아했다. ‘우리 국민들은 무엇이 그렇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미안했던 것일까?’
그리고 ‘들불처럼 번졌던 미안한 감정이 왜 지금은 갈라져버린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고자 도보순례 둘째 날 ‘미안합니다’를 묵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미안한 감정의 편린들을 듣게 되었다.
첫째,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이 나 자신과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 때문에 생긴 사건이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부와 명예, 성공만을 위해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한국사회 전체가 성공성장주의, 경제제일주의를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생명을 경시했다는 것이다. 둘째, 자식을 잃거나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갖는 아픔의 공감 때문에 미안하다고 했다. 앵그리맘으로 불린 30, 40대 엄마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대표적이다. 셋째, 사회 지도자들이 갖는 책임의 통감에서 미안하다고 했다. 양심적인 지도자들이 남의 일이라 보지 않고 세월호 선장과 같이 무책임한 모습을 성찰하는데서 볼 수 있었다. 넷째, 그리스도교가 한국사회에서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한데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아 미안하다고 했다. 올바르고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종교계의 역할이 미미했고 사회의 순기능보다는 자기 종교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음에 대한 반성이었다. 마지막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깝고 슬픈 마음에서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의 어떤 잘못에 대한 반성보다는 희생자와 고통을 겪고 있는 유가족, 실종자 가족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감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사람이 걸어가면 길이 된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내어주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이리라 믿는다. 우리가 내어주고 터주면 그곳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결국 든든한 길이 될 것이다. 도보순례를 통해 탁발하며 오늘 깨달은 것은 자비로운 마음을 회복하여 먼저 내어주는 사람이 우리 사회를 올바로 이끌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하느님의 정의를 보는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를 누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계속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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