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처음으로 환영” “일각의 지적과는 달리 서방의 중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반영”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IPO를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이 실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지난 9월19일 미 뉴욕증시 상장을 두고 쏟아진 환구시보 등 중국 언론의 들 뜬 평가 중 일부다. 해외 언론들도 알리바바의 상장을 증시와 정보기술(IT)산업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며 관련 보도를 연이어 내보내고 있다. 알리바바의 증시 상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홍콩증시에 상장했다가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밀린 탓에 2012년 상장폐지 된 적이 있다. 당시엔 B2B(기업간)전자상거래 부문만 상장됐었다. 금융부문 등을 제외한 전 사업부문이 상장 자산에 포함된 이번 IPO는 그래서 알리바바의 가치를 온전히 반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이 주는 메시지는 많지만 대략 4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중국발 글로벌 인터넷기업의 등장 예고, 생태계 전략의 부상, 차이나드림의 부각, 시급한 중국 증시개혁 등이 그것이다.
우선 중국 인터넷기업도 글로벌기업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섣부른 평가가 나온다. 알리바바의 이번 IPO규모는 250억 달러(추가 배정 옵션 행사 기준)로 종전 미 증시 IPO 사상 1위를 기록한 비자(179억 달러)는 물론 세계 1위였던 중국농업은행(221억 달러)을 웃돌았다. 상장 첫날 종가를 기준으로 알리바바의 시총은 2314억 달러에 달했다. 구글에 이어 세계 2위 인터넷 기업이 됐다. 이로써 시총 세계 10대 인터넷기업 명단에 중국기업이 텅쉰 바이두에 이어 알리바바까지 3개로 늘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중국인구만해도 5억 명(5억 2700만 명,6월말 기준)을 넘어설 만큼 넓은 사용자층이 중국 인터넷기업의 부상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시총 10대 인터넷기업에 속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모두 미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글로벌기업인 반면 알리바바를 비롯한 중국기업들은 자국내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수형 기업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리바바의 세계 시총 2위 인터넷기업 등극이 곧 진정한 글로벌기업이 됐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2013년 알리바바 매출(84.6억달러)중 해외에서 거둔 부분은 9%에 그쳤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 회장이 상장 전 투자자에게 보낸 공개서신에서 “과거 10년은 중국을 얼마만큼 변화시켰는지로 스스로를 평가했지만 앞으론 세계에 얼마만큼의 진보를 가져다줄지로 스스로를 평가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알리바바는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기업을 인수해 11main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한데 이어 인도의 전자상거래업체에 대한 투자 협상을 진행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야후 및 한국 롯데그룹과 협력을 추진하고, 프랑스 및 이탈리아 정부와 온라인상거래 협력관계를 맺은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윈 회장의 공언대로 세계에 진보를 가져다주려면 새로운 혁신 기술을 제공해야한다는 지적이다. TV, 컴퓨터, 세탁기 같이 인류생활에 변혁을 가져다줄 정도의 기술을 내놓을 때서라야 진정한 글로벌 인터넷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얘기다. 알리바바의 IPO는 중국발 글로벌 인터넷기업의 등장을 ‘예고’했을 뿐이다. 마윈 회장이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 “15년 내 (매출 기준으로) 월마트를 뛰어넘겠다”는 공언은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만으로는 실현되기 힘들다.
알리바바의 성공적인 IPO는 생태계 사업전략을 부각시킨다. 특정 기술이나 사업에 승부걸기 보다는 부가가치 사슬이 연계된 사업들을 하나의 생태계로 만들어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게 그것이다. 반도체에서부터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사업모델도 생태계 전략과 무관치 않다. 1999년 B2B 전자상거래로 창업한 알리바바는 2003년 C2C(개인간) 온라인쇼핑몰인 타오바오를, 2008년엔 B2C쇼핑몰인 톈마오를 내놓았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알리바바의 입지는 확고하다. 2013년 전자상거래 규모는 1조 8851억 위안으로 중국 소매유통의 8%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알리바바를 통해 이뤄진 거래가 80%에 달했다. 2004년엔 인터넷결제인 알리페이를 선보여 중국 인터넷 결제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매김 시켰다. 지난해 5월엔 마윈 회장이 중국 어느 지역에도 주문 후 24시간 내 배달을 공언하며 5-8년 대 1000억 위안을 물류사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엔 위어바오(余额宝)라는 MMF를 내놓아 중국 기금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1년만인 2014년 6월말 기준으로 위어바오 가입자와 금액규모가 1억 명, 5742억 위안에 달했다. 지난해 말엔 핑안보험 텅쉰 등과 함께 중국 1호 인터넷보험회사 종안보험을 설립했고, 올 들어선 민영은행 설립 인허가도 받았다. 금융은 물론 오락 지도 의료건강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기업 인수합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층을 확대하고 공고히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IPO를 위한 투자설명서에 나온 알리바바 관계기업만 200여개로 80 억달러가 투자됐다. 2009년 이후 부쩍 늘었다. 이번 IPO로 든든한 실탄을 확보한 알리바바는 종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전세계 기업사냥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의 벤처업계도 알리바바의 생태계 전략 영향권에 들어있다.
알리바바의 IPO로 마윈 회장은 보유지분 가치가 180억달러를 넘어서 중국 1위 부호로 올라섰다. 창업 15년 만이다. 특히 세계 시총 2위 인터넷 기업이라는 타이틀은 중국의 젊은이들의 차이나드림에 불을 지폈다는 중국 언론의 평가가 나온다. 중국 대입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진 영어 선생님 출신인 마윈은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하는 데 여러분 누구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매년 2400만개의 일자리가 필요한 중국으로선 창업 열기 고조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알리바바의 성장사는 차이나드림을 일구기엔 투자유치 환경이 열악함도 보여준다. 알리바바 IPO로 가장 큰 대박을 터뜨린 투자자는 일본 소프트뱅크로 37%의 지분을 갖고 있어 그 가치가 상장 첫날 560억 달러로 치솟았다. 투자 15년 만에 55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중국의 태자당(太子黨,공산당 혁명원로 자제)출신이 개입한 사모펀드 등도 투자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지지만 소프트뱅크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의 야후도 대박을 낸 투자자다. 2005년 10억 달러를 베팅한 야후는 이번 IPO과정에서 보유주식 일부를 팔아 최고 93억 달러를 벌은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도 지분 16%를 갖고 있다. 알리바바는 창업한 지 반년 만에 골드만삭스의 투자를 선두로 미국 유럽 아시아의 유명 펀드들이 가세해 500만 달러의 첫 엔젤투자를 받았다. 알리바바는 외견상 외국계 기업이지만 마윈을 비롯한 공동창업자들이 이사 추천권 등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기업지배구조를 뉴욕증시로부터 인정받았다.
알리바바에 가장 큰 차익을 남긴 투자자들이 외국인 투자자인 현실은 과거 중국 인터넷 기업이 충분한 토종자본을 공급 받기 힘든 환경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알리바바는 물론 바이두 시나닷컴 텅쉰 등 대부분의 중국 인터넷기업이 해외에 법인등록해 법적으로는 외자기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토종자본을 유치하기 어려워 외자에 의존해야하는데 인터넷 기업은 외자유치를 못하도록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이들 인터넷기업은 계약을 맺는 식으로 중국내 실제 사업법인을 지배하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알리바바는 마윈 회장을 비롯한 공동 창업주들이 최대주주가 아닌데도 이사추천권 등 경영권을 사실상 장악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동일 주식 동일 주권’이라는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홍콩 증권거래소는 알리바바의 지배구조를 거부한 반면 뉴욕증권거래소는 이를 인정했다. 알리바바의 상장 무대가 홍콩이 아닌 뉴욕인 이유다. 알리바바의 성공적인 IPO를 계기로 중국 벤처에 투자하려는 토종자본도 늘어나겠지만 이를 계기로 증시개혁의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알리바바의 IPO를 두고 중국 언론들은 알리바바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중국인들이 알리바바 주식에 투자하는 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며 증시제도의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중국의 우량기업이 돈은 중국에서 벌고 배당은 해외에서 하는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알리바바의 IPO가 해외 증시 상장 러시로 상장자원이 유실되고 있다는 우려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아직 개인투자자들의 미국 등 해외 증시 직접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10월중 홍콩 증시에 한해 일정 한도를 두고 직접투자를 허용할 계획이다.
알리바바 상장으로 신랑 소후 텅쉰 바이두 징둥 등에 이어 또 하나의 중국 IT기업이 해외 상장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중국 10대 IT기업이 모두 미국이나 홍콩증시에 상장했다는 분석도 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해외증시에 상장한 중국기업은 1200여개에 이른다. 중국 증시 상장 기업수(2400여개)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해외증시 상장 중국기업 가운데 홍콩 증시 상장기업이 749개로 가장 많았고, 미국(205), 싱가폴(132), 캐나다(56) 영국(35), 독일(24) 등의 순이었다. 2013년에만 66개 중국기업이 해외증시에 상장해 190억 달러를 공모했다.
민영 IT기업의 해외증시 상장 러시 배경엔 중국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중국 당국이 국유기업의 상장을 선호한 게 그것이다. 중국 증시에 민영기업의 상장이 크게 늘긴 했지만 최근의 일이다. 해외증시에 비해 IPO 규제가 많은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 증시에 외자기업이 상장을 못하는 게 대표적이다. 상당수 민영 IT기업들은 조세피난처 등에 등록된 외자기업이다. 알리바바 역시 케이만군도에 설립됐다. 특히 신생 IT기업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지만 중국 증시 문턱은 이들 기업에 너무 높다. 트위터가 2012년 7940만 달러의 순손실을 냈으면서도 2013년 미 증시에 상장했지만 중국 증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 당국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최근 중국 증감회 관계자가 “이익을 못내는 인터넷기업과 첨단기술기업은 신3판시장에서 1년간 거래한 뒤 창업판(중국판 나스닥)에 상장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공개 발언한 게 이를 말해준다. 작년엔 IPO 등록제 준비에 착수했다. 내년에 개정될 증권법에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될 전망이다.
정부의 손이 아직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국 증시의 특성도 중국 기업의 해외증시행을 부추긴다. 중국 정부는 지수 관리차원에서 수시로 IPO를 전면 중단시킨다. 최근엔 IPO가 15개월간 중단된 뒤 올초에야 재개됐다. 중국 창업판엔 현재 상장 대기 중인 기업만 200여개에 이른다. 증시에 상장하려면 2년 정도 줄서기를 해야 심사비준 절차를 밟는 경우도 허다하다. 알리바바가 열려라 참깨를 외치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알리바바의 IPO에서 중국이 대국 경제에서 강국 경제로 체질 전환을 하기 위해서 풀어야할 숙제가 적지 않음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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