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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꽃 떨어지는 9월, 메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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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꽃 떨어지는 9월, 메주 만들자

[살림이야기] 뚝딱 만드는 우리 장

9월이다. 콩꽃이 떨어진 자리엔 조금 덜 여물었기는 하나 제법 모양을 갖춘 꼬투리들이 매달려 있다. 기온이 내려가고 일교차가 커지면 콩을 수확한다. 콩은 늦가을의 긴긴밤을 보내는 지루하고도 재미있고 중요한 일거리로 남는다. 이른 저녁을 먹고 모여든 앞뒷집 할머니들이 해묵은 이야기보따리를 펼치면서 귀퉁이는 떨어져 나가고 칠도 벗겨진 오래된 밥상 위에 콩 한 줌씩을 올린다. 꼬투리 중에서 쭉정이를 골라내는 작업으로 눈앞이 어리어리하다.

초저녁잠이 많은 할머니들이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빴던 농사를 모두 끝낸 여유 때문인지 수다와 함께 가을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다. 이 콩은 저자로 팔려나가 두부가 되기도 하고 청국장이 되기도 하겠지만 꽤 많은 양은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이 되기 위해 메주로 변신한다. 시골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는 사뭇 다른 삶의 지혜가 있다. 오랜 세월 시골에서 살면서 몸으로 부대끼며 알게 되고 본능처럼 대처하는 힘이 생긴 어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지혜 중 하나는 절기를 따라 사는 것인데, 태양력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낯선 문화일 수도 있겠다. 오랜 시간 음력과 절기를 통해 삶을 꾸려온 어르신의 먹을거리 갈무리가 대표적인 예다.

나를 설레게 하는 메주

▲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 ⓒ류관희
도시에서 귀농한 젊은 사람들은 농사일이 끝나면 여행을 떠나거나 아니면 그동안 못했던 문화생활을 시작하지만, 그 터에서 삶을 유지해 온 어른들은 봄부터 키워 수확한 콩을 삶아 메주를 쑤고 긴 겨울 동안 먹을 청국장을 띄운다. 메주를 잘 만들어야 다음 한 해의 반찬 밑천이 되는 장맛이 제대로 나오므로 온갖 정성을 다해 콩을 삶고 찧고 다져서 메주를 만드신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 법이라 때를 놓치지 않고 메주를 쑤어야 좋은 곰팡이가 번식해 잘 뜬다.

마을 어른들이 콩을 삶는 날에 구경삼아 거들러 가면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배울 일이다. 정성 들여 콩을 씻고 가마솥에 넣어 삶으면서 불 조절하는 일도 배우고, 사포닌이 들어 있는 콩물이 아깝게 넘치지 않도록 솥뚜껑에 찬물을 끼얹는 지혜도 덤으로 얻는다. 대여섯 시간을 훌쩍 넘기는 긴 작업의 무료함을 이야기꽃으로 물리고 마지막에는 미리 준비해 둔 쌀가루를 얹어 고추장메주를 만드는 동시에 시루떡으로 배도 불리니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사조, 일석오조가 된다.

손가락 두 개로 비비는 약한 힘에도 뭉그러질 정도까지 삶은 콩을 절구에 찧고 다독인다. 그렇게 콩 한 말로 메주 4~5개를 만든다. 콩 한 말로 만드는 메주의 개수에도, 다지는 정도나 모양에도 다 그만한 뜻이 있다. 덜 삶거나 너무 작게 만들면 메주로 뜨지 않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가정에 따라 모양은 다르지만 무게는 비슷하다. 다 만든 메주는 짚 위에 가지런히 눕힌다. 못생긴 것의 대명사로, 더 이상 메주란 단어를 쓰면 안 될 것같이 참으로 예쁘다.

겉이 마르고 좋은 곰팡이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메주를 짚으로 엮어 처마에 매달고 겨울을 난다. 메주는 장으로 담길 날을 위해 자신을 삭히는 시간을 가지겠지만, 그러는 동안 집집의 처마 밑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멋진 풍경이 되어 소리 없이 빛난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늘 설레고 두근거린다.

옛 문헌에 콩과 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황대두라 불리는 메주콩은 비위를 건실하게 하며 비의 기운이 허해서 오는 부종이나 대장이 허약해서 오는 습관성 변비, 골다공증, 고지혈증,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병, 종기로 인해 생긴 독에 효과가 있다. 흑대두라 불리는 검정콩은 신장의 기운을 더하고 흐릿한 눈을 밝게 해 주며 이뇨작용은 물론 해독작용이 뛰어나다.

간장이나 된장은 짜고 찬 성질을 가졌으나 독이 없으며 위장과 비장, 신장에 기운을 더하며 더위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나는 것을 없애 주며 임신 중의 요혈에 도움이 되며 식중독, 약물 중독, 화상 등에 효능이 있다."

반찬이 변변찮았던 시절, 밥상을 차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양념이었던 장. 그래서 1년 농사 중 가장 먼저 꼽아 담가 왔던 장은 음력 정월 말날에 담그면 큰 탈 없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대개의 농가에서는 경칩 무렵 장 담그기를 해왔다. 이때 담그는 장은 40일에서 80일 동안 숙성된 후, 건더기는 다시 된장으로 태어나고 남은 액체는 간장이 된다.

'막장'은 드라마가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 담가 먹던 별미장 중 대표적인 것은 강원도식 막장. 막장은 콩으로만 담그는 된장과 달리 보리를 쑤어서 단맛을 올리고 간장을 빼지 않는다. 고추씨와 고춧가루를 소량 넣어 된장의 밋밋함을 보완한다. 막장은 된장처럼 찌개로 끓이고 뚝배기에 지져서 밥을 비비거나 쌈을 싸 먹기도 한다. 막장으로 만들어 먹는 최고의 음식은 막장덮밥이다. 카레나 짜장을 좋아하는 사람도 즐겨 먹을 수 있다.

막장

재료
보리쌀 200g, 메주 1kg, 고춧가루 100g(씨 포함), 소금 500g, 엿기름 200g, 물 2 ℓ

만드는 법
① 보리쌀을 씻어 불린다.
② 보리쌀이 푹 퍼지게 보리밥을 약간 질게 하여 식힌다.
③ 엿기름을 분량의 물에 풀어 거른 후 끓인다.
④ 식은 보리밥에 고춧가루를 잘 섞는다.
⑤ ④의 재료에 끓인 엿기름물을 섞는다. 이때 농도 조절을 위해 조금 남긴다(6번 작업을 한 후 너무 되면 엿기름을 더 붓기 위해서다).
⑥ 메줏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
⑦ 소금으로 간을 해서 항아리에 담는다.



막장덮밥

재료
소고기 200g, 들기름 1큰술, 양파 1개, 호박 1/2개, 가지 1/2개, 감자 1개, 당근 1/2개, 대파1 뿌리, 멸치육수 5컵(멸치 20g, 다시마 5장, 표고버섯 3~4개, 파뿌리 등), 막장 3~4큰술, 감자 물녹말 약간

만드는 법
① 분량의 재료로 멸치육수를 만든다.
② 껍질을 벗긴 감자, 양파를 사방 1cm 길이로 깍둑썰기 하고 가지, 호박, 당근을 같은 크기로 깍둑썰기 하고 대파는 1cm 길이로 썬다.
③ 달군 팬에 당근, 감자, 양파, 단호박의 순서로 넣고 볶는다.
④ 채소가 어느 정도 익으면 막장을 넣고 재료와 어우러지게 볶는다.
⑤ ④에 준비해 놓은 육수를 넣고 감자와 당근이 익을 때까지 끓인다.
⑥ ⑤에 가지와 애호박, 대파를 넣고 한소끔 끓으면 물녹말로 농도를 맞춘 뒤 간을 확인하고 2~3분 더 끓인다. 국물 내고 남은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썰어 넣어도 좋다.
옛 사람들 지혜만큼 깊고 그윽한 고추장

고추장은 고추가 한국에 전래된 임진왜란(1592년, 조선 선조 25년) 이후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추장에 관한 최초 기록은 <증보산림경제>(1766)에서 나온 '만초장'이다. 메줏가루 한 말에 고춧가루 세 홉과 찹쌀가루 한 되를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하고 개어 고추장을 담근다고 했다. <규합총서>(1809)에서는 삶은 콩 한 말과 쌀 두 되로 흰무리를 쪄서 메주를 만든 다음 소금 넉 되, 고춧가루 다섯 홉을 넣어 고추장을 만들었다는데 이것은 현재의 고추장 담그기와 흡사하다.

고추장은 간장이나 된장에 비해 역사가 짧지만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도 아시아 지역 국제식품규격으로 통과되어 'Fermented Soybean Paste'로 표기되는 된장과 함께 'Gochujang'(고추장)으로 표기되는 쾌거를 이뤘다.

고추장은 나물을 무칠 때, 볶음이나 구이를 할 때, 찌개를 끓일 때, 장아찌를 만들 때 등에 쓰여 많은 음식에 깊이를 더한다. 고추와 콩이 찹쌀이나 보리 등의 탄수화물과 함께 어우러져 내는 구수하고 달콤하고 매콤한 고추장의 맛은 우리 선조들이 다지고 전해준 삶의 지혜만큼이나 깊고 그윽하다.

아파트마다 항아리가 놓이는 꿈

처음에는 약이 되는 음식에 대한 강의를 하러 다녔지만, 밥상의 대들보인 장이 대량 생산되는 공장의 양념으로 대체된 현실이 안타까워 지금은 주로 '쉽게 담그는 장' 이야기를 하러 다닌다. 첨가물 범벅의 국적 없는 소스와 양념이 판치는 세상에서 내가 내는 목소리가 얼마나 멀리 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리산의 풍광을 프리미엄으로 얹어 된장을 파는 일보다 아파트 베란다마다 장항아리가 놓이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뚝딱고추장

재료
고추장용 고춧가루 500g, 메줏가루 200g, 조청 1kg, 소금 300g(천일염 기준), 끓인 물 1ℓ(끓이기 전 1.2ℓ)

만드는 법
① 분량의 물을 끓인다.
② 끓인 물에 분량의 조청을 잘 푼다.
③ 조청을 푼 물에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
④ ③의 재료에 메줏가루를 넣고 잘 저어 섞는다.
⑤ 소금을 넣고 잘 젓는다.
⑥ 항아리에 담아 일주일 정도 숙성시킨 후 먹으면 된다.






고추장떡꼬치

재료
떡볶이 떡 1kg, 현미유 약간, 꼬치
고추장 양념 : 고추장 1T, 토마토케첩 1T, 조청 1T, 설탕 1/2T

만드는 법
① 분량의 고추장 양념 재료를 모두 잘 섞어 양념을 만든다.
② 떡볶이 떡을 3~4개씩 꼬치에 꿴다.
③ 꼬치에 꿴 떡을 달군 프라이팬에 현미유를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④ 구운 떡에 양념을 발라 접시에 담아낸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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