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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나라(中國)'와 패권주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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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나라(中國)'와 패권주의 사이에서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중화사상과 공존 모델, 중국의 선택은

중국을 여행하면서 중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대부분 처음에는 개인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한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 채워지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정치와 역사 위주로 흐른다. 중국에 당하면 당했지, 위해를 끼치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라서 그런지 중국인들은 매우 친근하게 역사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중국과 한국은 원래 하나였다',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싫어하는 '중화사상'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사상이 사회 각계각층, 심지어는 정치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퍼져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잘 알다시피 중국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며, 심지어는 곧 미국을 대체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중국의 성장에 찬사보다는 반감과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앞서 이야기한 중화사상이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이는 위험한 역사관으로서, 중국인들 의식의 밑바닥에서 그들을 조종하여 주변국과의 마찰을 야기하며, 자칫 패권주의로 치달을 가능성마저도 보인다.

▲ 중국 수도 베이징에 위치한 자금성 ⓒ프레시안 자료사진

'가운데 나라(中國)'의 기원과 의미

우리가 흔히 '중국'(中國)이라고 부르는 개념은 현재의 국호인 '중국'(中国)과는 다른 개념이다. 현재의 중국은 그저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의 약칭일 뿐이다. 이에 비해 과거의 중국은 글자 그대로 '가운데 나라'라는 의미이다. 천조(天朝)로서 '세상의 중심에서 만국을 다스린다'라는 의미로서, 그들의 세계관이 만들어낸 이상향이다.

그럼 이 '가운데 나라'라는 용어는 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조금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중국 고대의 세계관인 '오복'(五服) 사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복'(服)이라는 말은 '복종하다, 따르다'라는 의미로, 오복은 다섯 개의 권역으로 나뉜 세계이다. 이 개념이 등장한 것은 '황하의 치수'의 공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 임금 때라고 한다. 『상서(尙書)‧우공(禹貢)』 편을 보면 그는 하나라를 세우고 천하를 아홉 개의 주(州)와 오복(五服)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하나라 시기부터 존재했던 이 개념에 대해 당(唐) 초기의 대학자 공영달(孔穎達)은 『오경정의(五經正義)』 중 『서(書)·익직(益稷)』편에 이 개념에 대해 아래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오복이란 후(侯)·전(甸)·수(綏)·요(要)·황(荒)이다. 복마다 500리를 두고, 사방의 거리는 5000리다. (五服, 侯﹑甸﹑綏﹑要﹑荒服也。服,五百里。四方相距爲方五千里)“

▲『흠정서경도설(欽定書經圖說)』 『상서(尙書)‧주고(酒誥)』의 오복시의도(五服示意圖)
이해를 돕기 위해 청대에 만들어진 옆의 그림을 보자.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과 같이 네모로 이루어진 천하(天下)의 한가운데 '천자'(天子)가 있었다.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땅을 '기'(畿)라고 한다. 우리의 '경기도(京畿道)' 역시 조선시대 임금이 직접 다스리던 곳을 뜻하는 말로 바로 여기에서 따온 말이다. 기와 가까울수록 중국의 선진문화에 가까우며, 거의 끝인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은 중국의 '덕화'(德化)가 거의 미치지 않는 오랑캐가 사는 곳으로 여겼다.

이렇게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의 민족들을 각각 이(夷)‧융(戎)‧만(蠻)‧적(狄)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 즉 '화하'(華夏)와 이민족을 구분 짓는 '화이관'(華夷觀)의 기초이며, 여기에서 '가운데 나라'(中國)라는 개념이 탄생하였다. 여기에서 약간 반발심이 드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이런 우월주의는 중국만의 특수 현상이 아니고, 고대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주변 이민족들을 '바르바로이(Barbaroi)'라고 부르며 멸시한 것처럼 말이다.

'가운데 나라'와 '패권주의'(覇權主義) 사이에서

잘 알다시피 '4대 발명품'은 중국의 걸작이자 인류의 위대한 발명이다. 과거 중국의 이러한 뛰어난 과학기술과 제도 등은 실제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선두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역대 왕조 중 '중국'을 국호로 한 왕조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중국 스스로 혹은 주변국에서 중국의 왕조들을 별칭으로 그렇게 불러왔다. 이는 주변국들이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만들어놓은 '천하질서' 체제 속에 자신을 편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주변국들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있는 나라'라고 인정했고, 중국 역시 '가운데 나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중국의 역대 왕조들도 비록 잘 실현시키지는 못 했지만, '가운데 나라'와 '천자'라는 의무를 이행하려고 노력했다. 중국의 덕화를 멀리까지 미치게 하다라는 뜻의 '덕화원급'(德化遠及)이 바로 그것이다. 강제로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중국의 덕에 감화하여 자발적으로 중국의 세계에 들어오게 하고 그들을 포용하는 것, 이것이 '가운데 나라'가 행해야 할 의무였던 것이다.

현재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평등하다. 하지만 일부 중국인들은 지금도 옛날 '잘나가던 때'만 회상하며 과거와 같이 주변국을 '아랫것'으로 대하는 구태의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이 졌던 '가운데 나라'로서의 의무는 망각한 채 말이다. 이런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을 이끌어 간다면 패권주의로 치달을 수 있다.

'패권주의'(覇權主義)란 말은 강대한 군사력에 의하여 세계를 지배하려는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가리킨다. 이는 1973년 8월 중국 제10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을 비난하며 사용했던 말로, 영어의 '헤게모니(Hegemony)'를 번역한 말이다. 재미있게도 현재는 중국 자신이 만든 이 말이 주변국에 의해 중국을 비난하는 말로 되돌아오고 있다. 다시금 강대국이 되어가는 여정에서 중국은 지금 그들의 이상적 모델인 '가운데 나라'와 미‧소의 뒤를 잇는 '패권주의'로 가는 갈림길에 서있다. 미래를 위해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는 역사인식 태도를 보이는 것, 이것이야 말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 '가운데 나라'로 가는 올바른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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