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일었던 현직 당 대표의 탈당 논란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단락됐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무 복귀 입장을 밝혔다. 비대위원장 직에서는 물러나겠지만, 원내대표 직은 한시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박영선 탈당 철회 "세월호특별법에 혼신의 힘 쏟겠다")
새정치연합은 18일 전·현직 대표, 원내대표, 상임고문단 연석회의를 소집해 차기 비대위원장 인선을 논의한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당의 총의를 모으는 과정"라고 했다. 이 회의에서 의견이 모이게 되면 그 결과에 대해 당내 여론을 수렴하고, 그 이후 임명 절차를 거치겠다는 뜻이다. 유기홍 당 수석대변인은 "내일 그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부탁드리자는 얘기가 (원내대책회의에서)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원내대표직까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일부 의원들의 반발을 살 여지가 있다. 전날 원내지도부는 '원내대표직은 세월호특별법 해결과 관련해 마지막 수습 노력을 한 후 결과와 관계없이 사퇴한다'는 안을 마련해 소속 의원 전원의 의견을 물은 결과 "80여 명 이상이 동의"(박범계 원내대변인)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일부 의원들은 이 문안 자체를 "조기 사퇴"(유승희 의원 등)로 해석하고 있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 노영민, 전해철, 최민희, 배재정, 김용익 의원, 강기정, 최재성 의원, 최규성, 인재근, 우원식, 이인영, 이목희, 진성준 의원, 홍익표, 은수미 의원, 김동철 의원과 이종걸 의원 등 19명이 모인 '긴급의원모임' 결과에 대해 "비대위원장 조기 분리 선출 및 원내대표직 조기 사퇴를 밝힌 것에 대해 수용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친노계, 정세균계, 민평련 등 계파를 초월한 구성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조속히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들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최재성·오영식 의원 등이 주축인 '혁신모임'과 민평련은 박 원내대표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 바 있다.
박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그러나 "지금 물러날 수 있나? 물러날 모양이 만들어져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새정치연합 원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 원내대표는 △한 달 이내의 시간 안에서 △협상을 시도하되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나름의 결론을 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협상 성과가 없으면 '열심히 했지만 안 됐다'고 양해를 구하고 물러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박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내다봤다. 원내대표직을 놓지 않겠는 것이 아니라, 그만두긴 하되 물러날 '명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전날 청와대와 여당이 세월호특별법과 관련해 초강경 메시지를 내놓은 일 등의 배경을 고려하면, 여당과 몇 차례 협상을 시도해 보다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양이 될 확률이 현재로서는 높다. 박 원내대표 측 관계자도 이런 상황을 가정한 질문에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파 지도부의 한계? 새정치연합의 한계?
문제는 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 등 당직에서 물러난 후다. 먼저 박 원내대표라는 정치인 개인은 이번 사태에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마무리할때까지 원내대표직을 잠시 유지하는 동안에도 '시한부 대표'라는 점에서 당 내외에 권위를 세우기 어려운 처지다.
새정치연합의 미래 역시 밝지 않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원내대표가 차기 비대위 구성과 관련해 가장 강조한 것은 "환골탈태", "60년 전통의 뿌리만 빼고 끊임없이 혁신해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비대위원장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은 과감한 개혁을 수행하기보다는 관리형에 더 적합하다는 평이다.
이른바 친노그룹이나 정세균계 등 차기 당권을 준비해 온 쪽에서는 '혁신은 비대위가 아니라 새로운 당 대표가 할 일'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길어야 수 개월, 그것도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예산 처리까지 동시에 하는 동안만 지속될 비대위가 아니라,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새 지도부가 권한을 갖고 혁신을 하고 이를 스스로의 '업적'으로 내놓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럴 경우, 전당대회가 치러질 때까지 '관리형'으로 지도부가 구성된 야당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구 민주당 시절부터 있어 왔던 새정치연합 내의 계파 문제가 다시 떠오른 점도 뼈아프다. 박영선 지도부와 그 직전의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는 다수의 의원을 보유한 힘 있는 계파의 수장이 아니었다.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정치인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는 당 대표로 추대됐다가 모두 큰 정치적 타격을 입고 물러나게 됐다.
박 원내대표의 경우 지지기반인 강경 성향 초·재선 의원들이 이상돈 교수 영입 문제로 등을 돌리자 사실상 당내에서 고립돼다시피 했다. 긴밀한 소통을 통한 지지기반 관리를 제대로 못한 박 원내대표의 실책이자, '흔들기'에 유난히 취약한 소수파 지도부의 한계이기도 하다.
또 친노그룹의 좌장으로 평가받는 문재인 의원도 이상돈 교수 영입 문제와 관련한 진실 공방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박 원내대표 측이 '문 의원도 이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데 동의했으면서 당내 여론이 안 좋자 말을 바꿨다'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문 의원 측은 '영입에는 찬성했으나 비대위원 정도라면 몰라도 위원장으로 하는 데 동의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 의원 측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야당의 가장 힘있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는 평이 나온다. 이 교수가 부적당하다고 생각했다면 적극적으로 의사를 관철하려 해야지, 문제가 터진 이후 논평하는 식의 정치는 전 대선후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최근 김무성 대표가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혁신위원장에 앉히는 등 차기 대권주자들 간 견제와 협력의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인기 있는 자당 소속 정치인들이 족족 상처를 입는 난감한 지경에 빠진 꼴이다. 박 원내대표 탈당설이 불거졌을 당시에도 나왔던 '제3지대 신당' 논의가 주기적으로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것은 이같은 야당의 문제 때문인 면이 많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2016년 총선을 앞두고서는 정계개편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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