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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와 거리 먼 박정희…그 딸이 대통령 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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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와 거리 먼 박정희…그 딸이 대통령 된 비결

[프레시안 books] 이병천 <한국 자본주의 모델>

술자리에서나 듣는 말인 줄 알았던 '싸가지'라는 표현이 곳곳에서 활자로 박힌다.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회고록에서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적었다. 얼마 전에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을 냈다. 부제는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이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온갖 생각이 들끓었다.

보수는 왜 '싸가지'가 없어도 선거에서 이길까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능력과 '싸가지' 사이에는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진보가 집권하길 바란다면 '싸가지'를 갖춰라, 이런 주장이다. 그렇다면, 권력 게임의 승률이 진보보다 훨씬 앞선 보수는 과연 얼마나 '싸가지'가 있는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66년 동안,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시기는 10년 남짓이다. 4.19혁명으로 들어선 장면 내각은 1년을 못 채우고 무너졌다. 김대중 정부는 박정희 세력과 연대를 통해 간신히 집권했고, 노무현 정부는 삼성 재벌의 영향을 받았다. 건국 이래 지금까지 권력은 늘 보수의 몫이었다. 권력과 '싸가지' 사이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주장대로라면, 보수 진영의 '싸가지'는 대단해야 할 텐데, 글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는 '일베' 누리꾼들을 보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공직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라. 그들에게 과연 얼마나 '싸가지'가 있었나.

차라리 보수는 왜 '싸가지'가 없어도 대중의 지지를 받는지를 분석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걸 모르면, 아무리 대단한 '싸가지'를 갖춘 진보가 나타난다고 해도 권력 게임의 승부를 점치기 어렵다.

사실 '싸가지' 없기로는 박정희와 5.16쿠데타 세력도 누구 못지않았다. 쿠데타 당시 박정희의 나이는 44세, 윤보선 당시 대통령의 나이가 64세, 장면 당시 총리의 나이가 62세였다. 쿠데타 주역이었던 장교들은 말 그대로 30대 초중반 청년이었다. 한마디로 새파란 후배들이 선배들을 몰아낸 셈. 게다가 박정희는 걸핏하면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돌아다녔다. 사용하는 언어 역시 교양이나 품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선 대단히 '싸가지 없게' 보였을 게다. 그럼에도, 그들은 권력을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박정희의 딸은 직선제 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상당 부분, '싸가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 덕분이었다.

▲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이날 공개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먹고살 길은 없었을까

어쩌면 대중의 채점표에서 '싸가지' 항목은 의외로 배점이 낮을지 모른다. '싸가지' 항목에서 만점 받아봤자, 다른 항목에서 점수를 못 따면 말짱 헛일이다. 물론 시험의 당락이 1∼2점 차이에서 결정 나듯, 권력 게임의 승패 역시 작은 차이에서 갈린다. 그러므로 '싸가지' 항목의 배점이 낮다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배점이 더 큰 항목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상식을 확인하고 싶을 따름이다. 누구나 안다. '먹고사는 문제', 그게 가장 배점이 크다.

'박정희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먹고산다'라는 믿음이 작동하는 한, 박정희 후계자들의 권력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믿음 속에서 친일 행적과 쿠데타가 정당화되고, 인권과 민주주의는 배부른 소리 취급 받는다.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고통스럽다면, 그래서 바꾸고 싶다면, '박정희 신화'에 제대로 맞서야 한다. 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비전을 찾아낼 때, 현실을 바꿀 힘도 생겨난다. 박정희식 경제 체제, 즉 '(5.16쿠데타가 있었던) 1961년 체제'에서 배제된 자들은 누구이며, 특혜를 누린 이들은 누구인가. 박정희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먹고살 길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박정희식 성장 노선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또 부작용은 무엇인가. 한발 더 나아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체제', '(절차적 민주주의가 수립된) 1987년 체제', '(외환 위기가 발생한) 1997년 체제' 등은 각각 한국 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겼나. 그리고 지금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게 사회과학자, 특히 경제학자의 역할이다. 진보 진영이 대중의 채점표에서 배점이 큰 항목에서 점수를 따려면, 이런 역할에 충실한 연구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 성과에 관심을 쏟고 널리 알려야 한다.


허망하게 끝난 '사회구성체 논쟁', 현실 접점을 잃어버린 지식인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자)의 저술이 나올 때마다 눈길이 가는 것도 그래서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을 기억한다면, 이 교수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게다. 당시 논쟁을 주도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실 접점을 잃어버렸다. 원래부터 무척이나 공허한 논쟁이기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특정 학문 분과의 틀에 갇히지 않고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며, 사회운동에 복무하려던 태도까지 함께 잃어버린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교수를 포함한 소수의 연구자가 돋보이는 건 이 대목이다. 불길처럼 타오르던 '사회구성체 논쟁'이 한순간에 꺼진 뒤에도, 논쟁의 긍정적 요소를 잘 이어갔다. 익숙한 전문 영역에 안주하지 않고 첨예한 쟁점에 개입했으며, 현실이 지닌 역사적 맥락을 놓치지 않았다. 인문학과 접점을 잃어버린 사회과학자, 사회의 구체적 쟁점을 회피하는 사회과학자가 늘어난 요즘 세태에선 더욱 귀한 존재다.

박근혜가 놓친 보수 수동혁명의 기회

ⓒ책세상
이 교수가 지난 10여 년간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을 한데 묶어 책으로 냈다. <한국 자본주의 모델 - 이승만에서 박근혜까지, 자학과 자만을 넘어>(책세상, 2014년 7월 펴냄)라는 제목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와 책세상이 기획한 GPE총서 가운데 한 권인데, 성격이 제각각인 글들을 맵시 있게 정리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그의 인식이 잘 정리된 글로, 나는 "박근혜 정부와 깨진 약속-'박정희 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재림'"(293∼394쪽)을 소개하고 싶다.

"반면에 보수 세력의 개혁은 진보 세력에 비해 기득권층의 동의를 구하기가 용이하다. 기득권층의 이익이 다소간 손상을 입긴 하지만, 여전히 밑바닥에 '우리 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환영하고 기득권층이 동의한다면 보수 개혁의 앞길은 밝다. (…) 이처럼 보수가 '개혁적 보수'로 거듭나 성공할 때, 우리는 이를 보수의 '수동혁명'이라고 하며 그런 보수를 '진짜 보수'라고 부른다.

(…) 박근혜식 '줄푸세' 사고는 신자유주의의 나쁜 면과 개발 독재의 나쁜 면(친재벌 성장 제일주의, 폐쇄적 관민 유착과 부정부패, 결과 지향 계획주의 등)이 악조합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 박근혜에게는 시대에 뒤진 줄푸세 기조를 바꾸고 사회 통합에 기초한 선도형 성장 체제의 길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 한번은 대선 국면이고 다른 하나는 집권 후 세월호 참사 국면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불행히도 두 번 모두, 짧은 기간 변화의 모습을 보였을 뿐 빠르게 자신의 오랜 신조인 줄푸세 기조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시 어렵게 찾아온 보수 수동혁명의 기회를 놓쳤다."

논쟁에 임하는 정직한 태도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갇힌 이들 가운데 일부는 보수 수동혁명에 대해서도 탐탁찮아 한다. 그러나 대중이 겪는 구체적 고통에 천착한다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대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놓고, 보수보다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할 때, 진보에게도 길이 열린다. 이 교수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늘 구체적 현실을 중심에 둔다는 것.

글 도입부에서 문재인 의원, 강준만 교수 등이 언급한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해 거론했다. '싸가지'가 과연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런 지적이 나오고, 호응을 얻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게다. 실제로 진보 논객 가운데 일부는 '말꼬리 잡기'식 논쟁에 골몰하곤 했다. 문제의 핵심은 비켜가면서 지엽적인 문제만 놓고 비아냥대는 식이다. 이른바 '허수아비 논법'을 쓰는 일도 흔했다. 상대방 주장의 핵심은 A인데, 제멋대로 B라고 규정한 뒤, B를 신랄하게 논박하면서 상대방을 망신 주는 식이다. 이런 사례가 쌓이면, 대중이 진보 지식인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 불신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진보 지식인은 핵심적인 문제와 지엽적인 문제를 구별할 줄 모르는 집단, 구체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비켜가는 집단이라는 평판이 생길 수 있다.

이병천 교수의 저술 활동은 이런 점에서 모범 사례다. 그 옛날 사구체(사회구성체) 논쟁부터 최근의 뉴라이트 논쟁, 장하준 논쟁에 이르기까지, 그는 첨예한 쟁점에서 비켜선 적이 없다. 동시에 그는 구체적 현실과 접점 역시 놓치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으며, 지엽적 문제로 핵심을 대체하지도 않았다. 논쟁과 토론에 임하는 정직한 태도다.

예전에 한 토론회에서 이 교수의 옆자리에 앉았던 적이 있다. 한참 후배에게도 깍듯한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토론 내용을 꼼꼼히 메모하는 모습, 의심스런 통계 자료는 일일이 출처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모습 등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진보 지식인의 논쟁 태도가 모두 이와 같다면, 진보에 대한 대중의 신뢰 역시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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