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자 오바마에 관한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부시에 대한 피로감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 등장은 억눌렸던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오바마가 이끈 미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저널리스트 츠츠미 미카는 2008년부터 <르포 빈곤 대국 아메리카 1·2>를 시리즈로 발간했고, 2013년에는 <주식회사 빈곤 대국 아메리카>(윌컴퍼니, 2014년 7월 펴냄)를 통해 오바마 정권에서도 변함없이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과 대기업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미국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꿔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언론과 시민사회까지 장악해 여론을 지배한다. 기부금으로 대통령과 정치인을 조정하고, 정부 요직을 차지해 친기업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책을 읽을수록 섬뜩한 것은 미국에서 진행 중인 일이 한국에서도 판박이처럼 재현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기업과 정치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식 시장 자유주의에 전도되어 있고, 공무원과 시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두 사회는 닮아가고 있다.
지자체 파산을 기다리는 투자자들
폰티액시처럼 아예 소방서와 경찰서가 없는 도시도 등장했다. 오리건주에서는 유지비 부족을 이유로 교도소를 폐쇄하고 경찰을 대량 해고했다. 그러자 형기를 마치지 않은 죄수들이 도시를 활보하면서 주민들이 대량 이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상황이 실제 벌어진 것이다.
지자체는 파산하지만 공공사업을 인수한 상위 1퍼센트의 수입은 급증한다. 글을 읽다 갑자기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지자체 긴급 재정 관리제', 즉 파산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 기억났다. 명분은 지자체의 재정 관리 책임성 강화였지만,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지자체가 통째로 민영화되기도 한다. 2005년 12월, '완전 민간 경영 자치구 샌디스프링스'가 탄생했다.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저소득층 복지와 공공시설에 쓰이는 것에 불만을 품은 부유층이 독립적인 자치시를 설립하고, 시의 운영을 건설 기업에 맡긴 것이다. 이렇게 민영화된 시가 다섯 군데나 생겼다고 한다. 필자가 사는 성북동엔 대사관저가 몰려 있는 부유층 동네와 성북동 비둘기로 상징되는 가난한 동네가 공존하는데, '샌디스프링스'에서는 성북동 부자들이 자신들만을 위해 예·결산을 운영하는 자치 지역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정말 "민영화, 어디까지 가는 거니?"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청업자로 전락한 미국과 한국의 농민들
미국에서도 소농이 거의 사라졌다. 가족형 양계장은 가격 경쟁으로 몰락하고, 양계농가들은 거대 기업의 하청업자로 변했다. 양계 사업을 하면 돈을 벌 것이라는 샌더스팜스의 선전에 혹한 퇴직 준비자들은 거액을 대출해 대규모 축사를 짓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까다로운 운영 규칙과 계란 12개당 37센트라는 고정 가격 때문에 빚더미에 앉는다. 그만두고 싶어도 대출금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을'들의 처지와 비슷하다.
게다가 그렇게 생산하는 닭과 계란이 건강할 리 없다. 성장촉진제 때문에 닭은 체중이 25년 전의 8배가 되었고, 내장이나 뼈의 성장 속도가 체중을 따라가지 못해 6주째가 되면 대부분 다리가 부러지거나 폐질환에 걸린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닭을 먹은 시민들도 건강할 리 없다.
오바마는 "미국 농무부(USDA)는 산업이 아니라 농가를 위한 기관이다", "국민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GM 식품의 라벨 표시를 의무화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당선 이후 100퍼센트 달라졌다. 식품 안전 요직에 업계 관계자를 줄줄이 앉히고, 우유 생산량이 30퍼센트 증가하는 'GM 소 성장호르몬'을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식품 회사의 막대한 선거 자금이 오바마 캠프에도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기부금의 출처를 알면 어떤 정책을 펼칠지 보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한국 농촌의 현실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농지는 줄고, 농민들은 초고령화에 접어들었다. 정부의 기업화, 대농(大農)화, 수출 증대 정책으로 농업이 기계화, 규모화되었다. 씨앗, 비료, 농약, 비닐, 농기계, 창고, 포장, 유통 등에 든 비용 때문에, 농민들이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도, 대출금을 갚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농민이 아니라 농업 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다. 이러다간 농민들이 멸종할 판이다.
이제는 잊히고 있는 이름, 이경해 씨가 생각난다. 그는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 회의에서 'WTO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목숨을 끊었다. 그는 생전에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에게 다음과 같은 항의 서한을 보냈었다. "미국 농민들과 대화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농민이 생산한 옥수수 4달러어치로 팝콘을 만들어 팔면 소비자가 사 먹는 값은 140달러입니다. 그럼 남은 돈 136달러는 누가 가져갑니까. 곡물 메이저, 가공업자, 초국적 기업들 몫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정치권과 짜고 농산물 수입국들에 압력을 가한다고 생각하는데, 총장님의 견해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때보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농부는 몰락하고, 농기업만 성장했다. 그리고 2014년 가을, 다국적 곡물 기업들은 미국을 통해 이경해 씨가 지키고자 했던 한국의 들판과 쌀 시장마저 열어젖히고 있다.
법은 국회가 아니라 기업이 만든다
대기업은 이제 게임의 룰을 직접 만든다. 총기 규제를 완화하고, GMO 규제를 폐지하고, 국가를 동원해 전쟁 후 이라크와 지진을 겪은 아이티의 농업을 장악한다. 기업들은 미국입법교류협의회(ALEC)를 통해 기업에 유리한 법안의 초안을 작성하고, 그걸 토대로 정치권에 로비한다. 정치인들은 정치자금 후원금 액수대로 법을 통과시킨다.
한국에서도 기업과 전경련이 게임의 룰을 만든다. 지난 8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무역투자진흥회의를 개최했다. 그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산림 분야 투자 활성화 대책은 한 달 전 전경련이 제안한 '국민이 누리는 산을 위한 정책 방향' 보고서와 똑같다.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 산지 관광 특구 제도, 산림 입지 규제 완화 등 전경련 요구 사항을 100퍼센트 수용한 것이다. 전경련은 철저히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인데, 정부는 이를 국민의 이익인 것처럼 포장한다는 점이 문제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국회에서 민생 법안 통과가 지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를 회복시킬 골든타임을 놓치면 야당이 책임져야 한다고 윽박지른다. 지금 제일 시급한 민생은 세월호 진상 규명이다. 진실을 밝혀야 안전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민생과 관련 없는 무시무시한 법안들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재벌 대기업에 의료 시장을 안기는 것이다. 한 사람당 최소 120만 원을 내고 생체 인식 기계 같은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원격의료법이 어떻게 민생 법안인가? 보건의료단체연합 변혜진 기획실장은 의료 민영화가 통째로 들어 있는 '서비스 산업 발전 기본법'은 '민생을 살리는 법'이 아니라 '민생만 골라 죽이는 법'이라고 일갈한다.
이런 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는데도 방송과 언론은 조용하다. 법안 하나하나가 방대하고 복잡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가 시민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언론으로 변질된 것이다. 종합편성채널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츠츠미 미카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분석했지만 책을 읽다 보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유사 사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99퍼센트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캘리포니아주의 제3당 주의회 의원으로 입후보한 질 스타인의 말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1퍼센트에 의해 모든 것이 매수되고 있습니다. 사법, 행정, 입법, 매스컴 (…). 1퍼센트는 2대 정당에게 모두 투자하기 때문에 누가 이기든 본전을 찾을 수 있어요." 기업은 정치권에도 '분산 투자'를 한다. 그러니 유력한 두 개 정당 중 누가 되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의 마무리 역시 결국 오바마의 '민주당'도 기부금을 주는 기업들에게 복무한다는 것이다. 제3세력의 정치, 돈 없이 하는 정치, 99퍼센트를 위한 정치는 이제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불가능한 것일까?
돈을 가진 1퍼센트가 더욱 탐욕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그들은 집중해서, 전략적으로 먹잇감을 공략하고, 진화를 거듭하며 공룡으로 성장했다. 나머지 99퍼센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들의 쳐놓은 이윤의 사슬에 걸려 저임금 노동자로 착취당하며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2011년 10월 맨해튼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은행 옮기는 날' 운동을 소개한다. 기업의 기부금을 일절 받지 않는 "99퍼센트의 대표를 정계로 보내기 위한 운동"도 제안한다. 책은 대안보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질문만 던질 것이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을 더 많이 제시해주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99퍼센트의 단결을 위해서는 더 많은 대안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 불같이 일어난 반세계화 운동에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고 호기롭게 외쳤던 세계사회포럼이 떠오른다. 필자도 2003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했었다.
운동가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달아올랐던 대회장에서 단상 위의 아룬다티 로이가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우리가 그들을 원하는 것보다, 그들이 우리를 훨씬 더 필요로 한다. 우리는 기업 없이 살 수 있지만, 기업은 우리 없이 살 수 없다." 생존의 토대가 무너지는 한국 사회에서, 미국에서, 전 세계에서 다시 한 번 거대한 사회운동, 저항 운동을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99퍼센트의 살길은 1퍼센트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대안적인 경제 체제, 금융 체제, 사회 체제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협동조합인지 사회적 경제인지 시민 공동 소유의 은행인지, 다양한 방식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시작되었던 참여예산제가 국내 지자체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가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꾸준히 활동해야 밤톨만큼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 책은 미국 사회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미국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기를 불러일으킨다. 쉽게 읽히면서도 충격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친기업 규제 완화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한 사람들은 꼭 읽어보면 좋겠다. 더불어 99퍼센트의 저항 운동이 들불처럼 크게 한번 일어났으면 좋겠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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