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배제의 사회 구도
5.18 희생자에 대하여 “홍어 택배” 등 노골적인 비하가 난무하고, ‘일베(일간베스트)’를 비롯하여 극우 사이트에서는 아예 “전라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는 구호까지 공공연하게 주창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극우 세력만이 아니다. 심지어 역대 정권에서 그나마 형식적으로 주장되었던 호남 출신에 대한 지역 안배론조차 눈 씻고 보려 해도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없게 된지 이미 오래이다. 오로지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무장된 고의적인 호남 차별, 호남 대 반호남의 집단 따돌림이 구도화되었다. 야당의 유력 대권주자들도 거의 모두 영남 출신이다. 이 모두 호남에 대한 철저한 배제 구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남인 스스로가 “호남은 정치에서 잃은 것을 문화와 예술에서 찾아야 한다”는 서글픈 주장까지 출현하게 되었다. 이심전심, 자의반 타의반의 패배주의이고, 스스로 자임한 모욕과 굴욕이다. 이는 마치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 사회의 운명을 연상시키고, 일제 강점기 시대 식민지 문화주의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연방제를
역발상이 필요하다. 오히려 이러한 호남 배제 구도와 호남에 대한 왕따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호남은 적극적으로 불복종 비협조 운동을 전개해나갈 때다.
이를테면, 역설적으로 지금과 같이 호남을 배제시키려면 차라리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시대처럼 나뉘어 중앙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를 판이다.
지금 연방제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는 불온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 미국이나 독일 그리고 영국 등 정치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연방제란 자치권을 가지는 둘 이상의 지방이 공통의 정치 이념 아래에 결합하여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연방제 형태의 정부 구성은 장기적인 통일 전략에도 효과적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장군을 잘 세워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모름지기 장군을 잘 세워야 한다. 만약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원균이나 배설을 장군으로 계속 세웠다면 연전연패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보수 여당을 이기려면 야당을 잘 세워 리더십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야당으로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꼴이다.
호남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온 선구자요 주력부대였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를 차치하고서도 전두환 폭압정치에 온몸을 불살라 맞선 민주화 항쟁의 발원지였고, 이후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매김 되면서 김대중이라는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고 노무현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냉철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광주 민주화운동의 논공행상에 몰입하여 그 조그만 과실을 둘러싸고 사분오열 적전분열, ‘광주’ 정신의 상실을 초래한 것은 바로 호남의 정치 엘리트를 비롯하여 민주 진영이었다는 점을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특히 호남에서 야당은 아무나 꽂기만 하면 된다는 관행이 어느덧 3,40년 지속되었고, 그러는 동안 호남의 야당 권력은 철저히 관료화, 보수화되고 퇴영적 행태를 보이면서 호남이 지녀왔던 민주화의 성지나 민주화 운동의 주축으로서의 자부심은 자취도 없이 실종되고 말았다. 아니 그 ‘훈장’은 어느덧 조롱을 당하고 있다. 호남의 지자체 역시 보수 세력과 전혀 차별성이 없고, 오히려 중앙의 보수 권력에 의존하고 아부하며 구차하게 그 목숨을 이어 구명도생(苟命徒生)해왔다. 지금 호남을 주름잡고 있는 연로한 정객들은 물론이고 기껏 구의원 정도의 역할에 자임하고 만족해 하는 호남의 젊은 국회의원 모두 혁신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여 호남의 야당은 ‘대의(代議)하지도 못하고’ 빈껍데기만 남은 공허한 대의 민주이며, 호남에 악착같이 그 뿌리만 깊이 내린 반근착절(盤根錯節)의 보수 정치일 뿐이다.
야당 권력을 넘어 시민 정치로
이 나라가 변하려면 무엇보다 정치가 변해야 하고, 정치가 변하려면 먼저 야당이 변해야 하며, 야당이 변하기 위해서는 호남이 먼저 그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중앙권력의 부스러기 선심과 야당 권력의 군림과 기만을 걷어내고 새로운 지역 권력, 시민 권력의 새 정치 세력을 창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모욕과 속수무책의 현 정치 질곡을 깨뜨리고 자랑스러운 민주화 성지의 전통을 계승해나가는 길이다.
구체적으로 광주전남 그리고 전북의 시민사회가 이번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살릴 마지막 기회라는 소명의식으로 그간의 분열과 반목을 대범하게 극복함으로써 일치단결해야 한다. 여기에서 통일된 정책을 정립해내고 시민후보를 추천하여 야당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 단계 민주 진영의 핵심 과제인 리더십의 형성도 자연스럽게 실현될 것이다.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배수진의 실력 행사에 나선다. 물론 적지 않은 실패가 뒤따를 것이지만, 이러한 혁신과 과감한 실험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호남의 진정한 시민 정치가 창출될 수 있고 동시에 지도자의 배출 등 참다운 리더십이 형성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만약 이러한 길을 모색하지 않고 기존 관행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하여 현재와 같은 모욕과 좌절의 쓰라린 나날일 뿐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이러한 정치 실험은 호남 지역민의 높은 정치의식 및 사명감과 결합되어 종국적으로 반드시 승리해낼 것이다. 그리하여 호남은 오늘의 굴종을 떨쳐내고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헌신적인 선구자로서의 찬란한 그 발자취를 역사에 기록해낼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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