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노동자, 용산 철거민 등이 "국가가 DNA를 채취해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28일 일명 'DNA 채취법'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이날 용산참사 철거민 4명과 쌍용자동차 파업 참가 노조원 등 10명이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경우까지 무차별적으로 DNA를 채취하고, 채취 대상자가 사망할 때까지 국가가 DNA 정보를 보관하도록 한 것은 부당하다"며 제기한 'DNA 신원확인 정보법 헌법소원'을 기각, 각하했다.
헌재는 "범죄 수사와 예방을 위해 DNA를 채취하는 것은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이로 인해 제한되는 신체의 자유 정도는 미약한 것으로서 범죄 수사와 예방이라는 공익보다 크지 않다"고 말했다.
헌재는 'DNA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형이 확정돼 수형된 사람에게도 관련 조항을 소급 적용하는 것도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봤다. "소급 적용으로 인한 공익적 목적이 당사자의 손실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국가가 채취한 DNA 정보를 당사자가 사망할 때까지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삭제 조항)에 대해서도 헌재는 "DNA 신원 확인 정보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고, 개인의 유전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어서 민감한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개인 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범 가능성에 대한 별도의 법원 심사 없이 개인의 동의나 영장 발부만으로 DNA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한 조항(채취 동의 조항)에 대해서도 "이러한 절차가 영장주의와 적법 절차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봤다.
소수 의견 "재범 위험성 없는 사람, 사망 때까지 DNA 정보 보관하는 건 과도해"
다만, 김이수 재판관 등 4명은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대상자에게까지 DNA를 채취하는 것은 입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재범의 위험성을 규정하지 않고, 특정 범죄자에게 획일적으로 DNA를 채취할 수 있게 한 것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채취 대상자가 사망할 때까지 DNA를 보관토록 한 '삭제 조항'에 대해서도 김이수 재판관은 "성폭력범죄 처벌 특별법이 개인 신상 정보 등록 기간을 20년으로 제한하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장기간 재범하지 않은 대상자에게까지 보관기간을 제한하지 않은 점은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이라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이정미 재판관 등 4명은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재범하지 않은 대상자의 경우 DNA 정보의 보관기간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빅브라더 시대 열릴 수도"
이번 헌재 결정 직후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이혜정 변호사는 "수용자 중에는 용산참사 피해자, 쌍용차 노조원은 물론이고 소년범과 술에 만취해 주거에 칩입한 사람도 있다"며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수사 편의를 위해 DNA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겠다는 것인데, 헌재가 기본권을 고려했는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김병수 시민과학센터 부소장은 "DNA는 부모에게 물려받고 평생 변하지 않는 나의 신체 고유 물질"이라며 "DNA 패턴으로 특정 질병, 인종, 심지어 가족까지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DNA 정보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신훈민 변호사는 "이번 결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통제하는 빅브라더 시대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DNA법은 죄명을 나열하고, 그 죄명에 해당하면 법원에서 무조건 DNA 채취 대상자 영장을 발부하게 돼 있다"면서 "개별적으로 재범의 위험성을 심사해서 채취 대상자를 선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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