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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유산, 아픈 아이…반도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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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유산, 아픈 아이…반도체 때문?"

끝나지 않은 반도체 논쟁…"같은 공정 교대 동료 2명이 암"

사진 속 얼굴은 앳돼 보였다. 한껏 멋을 낸 아가씨들이 회사 야유회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19살, 20살에 삼성전자 공장에 취직했던 이들이었다.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된 이영희(가명·42) 씨는 사진첩을 넘겨보며 추억에 잠겼다.
지난 26일 충남 아산시에서 만난 이 씨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사진첩을 꺼내 보였다. 앓고 있는 병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고생하다가, 2012년 갑상선 암 수술을 했다. 올해는 상피내암 전 단계 세포가 발견돼 치료를 받았다. 류머티즘도 앓고 있다.

이 씨는 1991년 만 19세에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 공장에 취직했다. 1998년 IMF의 여파로 퇴사했다. 퇴사 당시 임신 7주 차였다.

이듬해 아들을 낳았는데, '선천성 거대결장'으로 대장 전체를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아들은 된 변을 못 보고 평생 설사를 해야 한다. 다행히도 아들은 잘 컸지만, 이 씨는 그 뒤에 한 차례 아픔을 겪어야 했다. (☞관련 기사 : "아이 유산하고 암까지…삼성 반도체 때문?")

"제가 우리 아들 6살일 때 임신했는데, 6개월 뒤에 유산됐어요. 하혈하는 바람에 병원에 갔더니, 세균이 머리에서까지 나왔다고 해서 돌려서 낳았어요. 중절 수술했어요. 산부인과 의사가 이제는 임신 안 하는 게 좋다고. 자궁이 너무 약하다고."

▲ 1990년대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이영희(가명) 씨와 김은정(가명) 씨. ⓒ프레시안

180도 기계에 머리 박고 청소…"너무 뜨거웠어요"

이 씨는 자신을 '온양공장 세트업 멤버'라고 했다. 한쪽에서는 공장을 짓고 있고, 그와 동료들이 세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도체는 사람 손을 많이 탔다.

이 씨와 동료들은 '몰드 공정'에서 일했다. 반도체 칩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려고 검은색 '에폭시몰드컴파운드(EMC)'라는 화학합성물질을 180도의 고온에서 녹인 후 반도체 칩에 도포하는 공정이다. 지금은 자동화돼서 없어진 공정이기도 하다.
작업자들은 반도체 칩을 기계에 넣고, 20킬로그램이나 되는 EMC통을 7~8킬로그램으로 나눠서 기계에 넣고, 다 도포된 반도체 칩을 기계에서 빼고, 고온의 기계를 청소하는 일을 했다. 한 명이 4~6대 정도 기계를 보는데, 알람은 계속 울려댔다. 자재가 떨어졌다고 울리고, 도포가 끝나면 칩을 빼라고 울렸다. 작업자들은 "앉아 있지 못하고 늘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다 불량이 나면, 180도짜리 기계를 '멜라민컴파운드'라는 화학물질이 묻은 동주걱으로 직접 청소했다. 긁어냈다. 1시간~1시간 반 정도 청소했다. 기계 안은 너무 뜨거웠다. "머리를 박으니 (EMC가 녹는) 냄새를 흡입하고, 사람들은 손목을 다 뎄어요."

ⓒ프레시안(김윤나영)

"이제 와서 우리끼리 '언니, 그런 거 알았어?' 해요"

퇴사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아줌마'가 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출신 동료들은 가끔 모여서 수다를 떤다.

동료들도 어딘가 조금씩 아프다. 처음에는 주야 맞교대로 일하다가 조금 뒤 3조 3교대로, 퇴사 직전에는 4조 3교대로 일했는데, 이 씨는 "나는 갑상선암, 한 명이 유방암이고, 다른 두 명은 갑상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1992년에 입사해 이 씨와 같은 조에서 교대로 일했던 김은정(가명·40) 씨는 2007년 유방암(상피내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다.

이들은 자신의 병이 직업병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온양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한 후배가 몇 년 전 30대에 위암으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다. 바로 옆 공정에서 일하던 김옥이 씨(2005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 발병, 산재 소송 2심 패소)를 기억하지만, 아픈 줄은 몰랐다.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 보니 위험했던 것 같다.

"호흡기로 검은 가루가 날리는데 조심하란 말을 아무도 안 했어요. 빨리하란 소리밖에 안 했어요. 이제 와서 우리끼리 '언니, 그런 거 알았어?' 해요. 그땐 정말 무식하게 일했다고. 그땐 왜 시키는 대로 생산량 빼려고 아등바등했는지 모르겠다고."

반도체 여성 노동자 유산 확률 84% 높아
몰드 공정이 위험하다고 알려지기까지는 20년 넘게 걸렸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내 3개 반도체 공장을 조사해 2012년에 낸 연구 보고서를 통해 몰드 공정의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가열해 칩에 코팅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의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EMC 자체가 발암물질이기도 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EMC의 구성성분인 페놀수지도 발암물질인 페놀, 포름알데히드의 화합물이고, 수지가 녹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크레졸 등 부산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발암물질은 생식독성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임신 6개월 전에 벤젠에 노출된 여성에서 태아의 신경 능선 기형과 주요 선천성 기형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2005년)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2008~2012년 건강보험 가입자 규모와 진료비 청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가 유산할 확률은 일반 여성보다 최대 84% 높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밝힌 삼성전자 출신 중증질환 제보자는 164명이다. 이 중 70명은 사망했다. 반올림은 난임, 유산, 월경 불순 등까지 합치면 제보자는 더 늘어나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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