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동북아 정세속에서 남북대화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지고 있다. 9월 1일이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끝난다. 남북고위급접촉을 재개할 공간이 열리는 시점이다. 9월 19일부터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선수단을 파견한다. 10월 4일은 10.4 남북공동선언 7주년이다. 아시안게임과 10.4 선언을 남북대화발전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국 차원에서 남북고위급접촉을 가지고, UFG 훈련 전후로 여러 가지 이유로 유보되었던 민간차원의 초보적인 교류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끝나는 시점이 적기
남북의 최고지도자는 신년 초부터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결과 1,2월에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북한 노동당 통전부 사이에서 고위급접촉과 이산가족 상봉을 실시하였다. 고위급 접촉에서는 쌍방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경욱 대변인이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북한에 충분한 설명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키리졸브 훈련과 일부 겹치는 일정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받아들였고, 우리 정부도 키리졸브 훈련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게 로키(low key)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문제였다. 로키로 실시하겠다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유례없이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북한은 평양점령훈련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은 남북관계 발전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남북관계에서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북한은 7월 7일 공화국성명을 발표하면서 다시 남북대화를 제안했다. 정부는 남북고위급접촉을 다시 제안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남북대화를 언급했다. 하지만 키리졸브 한미군사훈련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던 1,2월의 상황은 반복되지 않았다. 북한은 8월 18일부터 시작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합동군사훈련을 강력히 비판했다.
한미합동군사훈련만 남북대화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북정부 모두 대화는 말하고 있지만, 북한의 태도는 더 근본적이고 강력해졌고,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에 대한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 남북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미니냉전도 구한말도 아닌 동아시아 정세
지금 동아시아 정세는 요동치고 있다. 혹자는 '미니냉전'으로 부르기도 하고, 혹자는 구한말의 혼돈기와 비교하기도 한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과 비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척도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하는데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동아시아 상황은 냉전 시대의 대결구조와 같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동서진영 대결구조가 아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심화되고 있고, 북한과 일본이 대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냉전시대 미·소 대결과는 다르다. 미·중 관계는 신형대국관계는 아니만 냉전시대와 같은 구형대국관계와는 확연히 다른 협력과 대결의 이중관계이다. 조선이 개화에 반대하면서 강대국의 압력에 시달리거나 편승하는 구한말의 혼돈기하고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대응을 잘못한 경우 동서냉전 구조 속의 한국의 위상, 구한말 조선이 처했던 상황이 재연될 수가 있다. 우리가 취해야 할 길은 우리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국가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다. 미·중 관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남북관계를 수단으로 동아시아 정세에서 한국의 레버리지를 높여가는 것이 우리의 국가전략이 되어야 한다. 9월 1일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끝나는 대로 남북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대륙의 패권국가를 염려하는 미국
동아시아 정세가 소용돌이치는 것은 중국의 성장과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에서 비롯한다. 중국은 미국에게 중국이 신형대국이 되었으니 잘 지내보자고 한다. 그 말속에는 자기들의 지위와 파이, 즉 남지나해, 티베트, 신갈, 서해, 대만해협 등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해달라는 뜻이 당근 담겨 있다. 미국의 속내는 중국이 G2가 되는 것이 미국의 위협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중국과 협력하면서도 다른 한편 2차대전 후 소련에 취한 봉쇄정책에 연원을 둔 대(對)중국 견제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이 견제정책에 일본의 참여가 필요하다. 미국의 재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부상으로 일본의 존재가 미국에게 더 긴요해졌다.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미·일 동맹과 중국의 국가전략의 충돌이 늘어날 전망이다. 전통적인 해상에서의 영유권 분쟁뿐만 아니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에서 알 수 있듯이 공중으로까지 확산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군사력을 확대하면서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정세변화에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이 정책의 핵심은 대중국 견제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대소련 정책으로 자리 잡았던 봉쇄정책은 동아시아에서 대중국견제정책으로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냉전시대에 유럽에서 대소련 봉쇄정책을 펼쳤던 이유나 탈냉전인데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대중국 견제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봉쇄정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국의 역사가이자 외교관인 조지 케넌(George Kennan)은 유럽대륙에서 하나의 강력한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우려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지 케넌은 1946년 모스크바 주재 대리대사 때 워싱턴에 보낸 장문의 전문에서 소련 봉쇄를 주창했다. 케넌이 소련봉쇄를 주장한 것은 유럽에서 강력한 국가가 존재할 경우 반드시 바다 건너 미국의 위협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조지 케넌은 자신의 구상이 지나치게 장기적인 군사적 봉쇄정책이 되었다면서 미국정부의 봉쇄정책을 줄곧 비판했다.
할 말은 하겠다는 중국
미국이 아시아회귀정책을 펼치면서 중국에 대해 견제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중국의 경제력이 급성장해서 미국과 함께 G2 국가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소련의 부상을 위험스럽게 염려했던 것처럼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가가 될 경우에 태평양 건너 미국의 위협이 된다는 발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으면서 과거의 범죄에서 면죄부를 받아 군사대국화를 꾀하는 일본의 이른바 '보통국가' 전략을 용인해주고 있다. 미일동맹이 중국 견제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이 대외적으로 팽창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과거사 문제로 인해 한일 동맹을 구축할 수가 없기 때문에 미·일 동맹을 축으로 해서 한미동맹을 결합시키려는 것이 미국의 구상이다. 이는 필연코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시도를 비롯한 한일간의 잦은 군사협력과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 한반도 인근에서 열리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8월 22일 중국의 전략과 관련하여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하였다. 왕이 외교부장은 '두 개의 100년 (兩個一百年) 목표'와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적으로 참여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를 제시했다. '두 개의 100년'이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샤오캉'(小康·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단계) 사회를 건설하고,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을 조화로운 현대사회주의 국가로 변화시키겠다는 시진핑 체제의 미래비전이다.
중국은 2021년과 2049년이라는 2단계 국가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서 할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웃국가와 화목하게 지내는 게 할 일이라는 것이 공식입장이지만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해치는 것에 대해서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정부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라는 외교방침을 조심스럽게 재해석하였다. 도광양회는 '겸손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뜻이라는 것이다. 도광양회가 '숨어서 힘을 기르자' 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을 피하고자는 중국정부의 고뇌가 엿보이는 해석변경이었다. 왕이 외교부장이 공식적으로 '유소작위'를 표방한 것은 도광양회를 조심스럽게 해석하던 그동안의 조심스러운 태도와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남북관계가 한국의 지렛대
많은 중국 사람들은 한중관계는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7월 시진핑 주석의 방한 이후 중국정부는 한중관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제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는 한국외교의 양대 축이 되고 있다. 한중관계와 한미관계에서 균형외교를 통해서 동아시아평화를 촉진시키는 평화선도국가가 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MD 참여는 이러한 한국의 국가전략에 혼선을 빚을 것이다. 중국의 대한국접근은 한국을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에서 이탈시키기 위한 중국의 내밀한 의도가 담겨 있다. 한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고 MD에 변형된 형태로 편입되어 들어갈 때 중국의 대한국접근은 '유소작위'라는 방침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드 미사일 배치와 MD 편입은 한미일 합동군사훈련과 연계되어 진행되는데 중국은 언제까지 이를 용인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미 지난 7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MD 체제는 중국의 안보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균형외교와 MD 참여가 모순이 되어 충돌하는 상황으로 다가갈 소지가 있다.
물론 중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고려할 때 중국이 '유소작위'를 주변국과 화목하게 할 수 있는 '책임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관도 낙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성장하는 중국, 그러나 민주화 속도가 느린 중국'은 한국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할 것이다. 한국이 달성한 민주화의 성과와 이 과정에서 한국이 이룩한 각종 표준화된 시스템 때문이다. 한국이 설사 중국이 레드라인에 근접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과격하게 넘어서지 않는 한 한국은 대중외교에서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대해 '유소작위'라는 방침을 압력으로 행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지 못하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정립구도가 불안해질 수 있다. 한중 무역규모는 2015년 3000억 달러가 목표이다. 중국에 대한 교역량은 미국, 일본의 교역량을 합한 것을 이미 넘어섰다. 한중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균형점을 찾지 못할 경우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몸살을 앓는 비대칭적 관계가 되었다.
지금 미국 내부에서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전작권 전환 반대 등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MD 배치, 미군기지이전 재조정 등을 위한 미국 정부의 대한국 협상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균형외교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상황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이 시급한 것이다. 안정된 남북관계는 한국의 대중외교와 대미외교에서 균형외교와 평화촉진외교를 펼치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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