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는 모두 '원균'이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는 모두 '원균'이다"

[기자의 눈] '유민 아빠'의 간절한 바람, '좋은 제도'로 답해야

사실과 허구가 적당히 섞인 이야기 하나.
러일전쟁의 분수령이 된 쓰시마 해전을 하루 앞둔 날. 일본 해군 지휘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함대의 신사에 이순신의 위패를 모시고 무운을 빌었다. 그는 세 배가 넘는 규모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지휘관이었다. 다음 날, 그는 이순신의 학익진을 모방한 정자진(T자 형 전술)으로 러시아 발트함대를 격파했다. 승전 이후 찬사가 쏟아지자 그는 말했다. "저의 공로는 영국의 넬슨 제독과는 비교할 수 있으나 이순신 제독에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순신 제독에 비하면 저는 하사관 수준입니다."

이순신의 사후복수?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일부는 출처가 모호하다. 그래서 내용 그대로 사실이라고 보긴 어렵다. 과장, 또는 허구가 섞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게다. 다만 도고 제독이 이순신 장군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그가 이순신에 대해 공부했으며 찬사를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일본 해군 수뇌부에 퍼져 있었다.

이순신은 12척(혹은 13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을 물리쳤다. 물자 보급도 시원치 않은 조건에서 지휘관의 전술과 리더십에 힘입어 거둔 승리였다. 러일전쟁 이후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기간, 일본 군부를 지배했던 정신주의와 이순신에 대한 선망이 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자와 병력이 부족해도 ‘사즉생(死卽生)’의 각오와 뛰어난 전술 능력만 있으면, 강력한 적을 무찌를 수 있다. 이순신도 해내지 않았느냐. 이런 식의 정신주의, 요컨대 의지와 지략으로 물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승산 없는 전쟁으로 몰아간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인구와 자원, 산업생산력과 국토 면적, 과학기술 수준 등에서 일본과 미국은 차이가 현격하다. 그런데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니.

국력 차이를 무시한 무모한 전쟁은 결국 패망으로 끝났다. 그 결과, 식민지 조선은 독립했다. 소수로 다수를 깨부순 이순신의 사례가 일본군 지도부에 환상을 심어주고, 그래서 일본제국이 망했다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의 ‘사후복수’가 이뤄진 셈 아닐까. 이순신은 죽고 나서 한참 지나서도 일본을 패망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 게 아닐까. 이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억지스런 생각이다.

"12척밖에 없는 사태, 안 생기게끔 하는 게 현대의 영웅"

▲영화 <명량>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명량>이 흥행몰이를 하니까, 너도나도 한마디씩 한다. 이리저리 훑어보다 소설가 곽재식 씨의 트위터에서 무릎을 쳤다. “이순신을 본 받자 해도, 어지간한 일반인은 이순신같은 천재/영웅을 따라하기 어려움. 대신 원균처럼 하면 망하겠다, 싶은 게 있을 때, 그건 절대 안 하겠다고, 고치겠다고 노력하면서 사는 쪽이 더 쉬움.”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작가가 <시사인>에 쓴 글과도 통하는 내용이다. “이순신이 이슈만 되면 정치인들이 12척으로 330척을 물리치겠다며 설치고들 하는데,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12척 가지고 나가면 백전백패한다. 이순신이니까 이긴 것이고, 이순신이니까 병사들이 따라간 것이다. 그들이 12척 가지고 따라오라면 따라가지도 않는다. 12척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현대의 영웅이다.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삶의 방식으로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이순신을 동경했던 일본군 지도부가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 주변에 ‘이순신’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 설령 있다 해도 그가 꼭 리더가 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원균’은 흔하다.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배를 수리하고 무기를 개량하는 이순신은 아주 드문 유형이다. 대개는 윗사람이, 대중이 관심 갖는 일에만 골몰한다. 마치 원균처럼.

'무법천지'에선 이순신도 소용없다

‘제도’가 중요한 건 그래서다. 제도란 곧 규칙인데, 규칙이 없는 무법천지에선 ‘이순신’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 ‘이순신’은 도태되거나, ‘원균’으로 변신하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반면, 좋은 제도가 있는 사회에선 ‘이순신’ 같은 영웅이 없어도 배가 가라앉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제도는 ‘원균’처럼 부족한 사람을 ‘이순신’에 가까워지게끔 키워주는 역할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세월호 선장 이준석을 욕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나눠줬던 승무원 고(故) 박지영 씨의 고귀한 희생을 기린다. 역시 우리는 누구나 안다. 현실에서 이준석은 흔하고, 박지영은 드물다. 이준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사고가 터지지 않게끔 하는 게 제도의 역할이다. 그리고 제도를 운용하는 게 정부다. 이준석을 욕하기만 할 뿐인 정부라면, 없는 것과 다름없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40일째 단식하다 병원에 실려 갔다. 김 씨를 포함한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는 보상이 아니다.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게다. 그들 역시 잘 안다. 세상에는 박지영보다 이준석이 흔하다는 걸. 이런 세상에서 ‘세월호 참사’가 또 일어나지 않으려면 좋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게다. 그게 그들이 요구하는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이다.

청해진해운이 세월호에 무리한 짐을 실었던 배경에는, 연안해운의 구조적인 수익성 악화가 있다. KTX, 저가항공 등으로 이동하는 비율이 늘고 석유 가격이 뛰면서 연안해운의 수익성은 나빠졌다. 이를 만회하려는 압력은 결국 안전을 해치는 쪽으로 작용한다. 구조적인 문제는 제도적인 해법을 요구한다. 실제로 ‘연안해운 공영제’ 등 다양한 제도적 해법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논의에 힘을 쏟아야 한다.

원균이 모는 배도 침몰하지 않게끔하는 '좋은 제도' 만들어야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유족들의 목소리가 결국 향하는 지점도 ‘제도’다. 어떤 구조에서 발생한 사고인지, 어떤 제도를 통해 예방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찾기 힘든 '이순신'만 기다리다가는 배는 또 침몰한다. '원균'이 모는 배도 침몰하지 않게끔 하는 '제도'를 만드는 게 절실하다. '유민 아빠'의 간절한 바람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 단식 40일째, 병원에 실려간 '유민 아빠' 김영오 씨.ⓒ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유경근 대변인 페이스북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