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와 일본 리조트, 하나로 이어진 두 개의 오키나와
오키나와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코발트빛으로 물든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새하얀 모래사장, 야트막한 산자락을 뒤덮은 미답(未踏)의 원시림, 오키나와 꽃으로 불리는 붉은 데이고 꽃과 사람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사탕수수 밭, 곳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붉은색 기와(琉球赤瓦)와 거북이 등을 닮았다는 귀갑묘(龜甲墓). 이 같은 '이색적'인 풍광에 밀가루로 만든 오키나와 소바, 각종 돼지고기 음식, 고야(여주)라 불리는 채소를 섞은 '찬푸르' 볶음 요리를 즐기며 오키나와 술 아와모리(泡盛)를 곁들인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이 남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열대의 땅에서 안식을 찾아 헤맨다. 1990년대 이후 바닷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각종 리조트에는 이런 이색적인 경관에 더해 도시적인 편리한 생활양식을 그대로 이식해놓았다. 사람들은 해양 스포츠를 만끽하고 도쿄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이색적인 경관과 문화를 즐기다가도 밤이 되면 도쿄의 중심가에 있는 유흥 숙박 시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고급 리조트에서 오키나와의 냄새가 살짝 가미된 무언가를 즐기면서 편리한 도시의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관광과 휴양의 마을이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아도 이색적인 풍광과 함께 사람들의 눈에 뛰어 들어오는 또 하나의 오키나와가 있다. 바로 미군 기지와 미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또 하나의 오키나와이다. 특히 국도 58번 선을 따라 북상하다 마주치게 되는 수없이 많은 미군 차량과 거대한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를 찾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특히 극동 최대의 군사 비행장인 가데나(嘉手納) 기지의 크기는 도쿄 하네다 공항의 두 배에 달한다. 한국전쟁 때도 베트남전쟁 때도 수없이 많은 전투기들이 이 공항을 이륙해 폭탄을 한반도와 베트남 인민들의 머리에 떨어뜨렸다. 이 군사 비행장 밖에 자리한 국도 휴게소 옥상에 올라서면, 엄청난 폭음을 뿜으며 이착륙을 반복하는 각종 군용기를 목측(目測)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군사 마니아나 평화 활동가에 더해 많은 관광객들이 이 자리에 올라서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이 '비극'을 관람한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 전시 시설에선 폭음의 엄청남을 군용기종에 따라 체험해볼 수 있는 전시물이 있다.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 면적의 20퍼센트 이상. 일본 전체에 있는 미군 기지의 70퍼센트 이상이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 일본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부분의 미군 기지를 떠안는 부조리한 현실. "오키나와는 밝은 빛인 헌법 제9조가 야기한 암흑의 미일 안보에 갇혀 있다"(390쪽)는 미야기 야시히로의 말대로 일본(야마토)의 '평화'가 오키나와(우치나)의 '희생'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듯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의 또 하나의 '일상'이다. 전자가 탈정치적인 오키나와 '소비'의 한 단면이라면, 후자는 미군이라는 존재가 오키나와에 어떤 식으로 군림하고 이 군림을 통해 동아시아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두 개의 오키나와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노마 필드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미국의 기지와 일본의 리조트, 이것은 두 개의 깃발 아래 각각 결집되는 세력의 구체적인 실현체이다." (노마 필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창비, 66쪽).
이 두 개의 오키나와 중, 주로 군사기지의 마을 오키나와를 다룬 책이 바로 개번 매코맥과 노리마쯔 사또꼬가 지은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창비, 2014년 7월 펴냄)이다. 저자인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은 호주국립대학의 명예교수이며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일본의 현대를 분석해온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이다. 최근에는 The Asia-Pacific Journal : Japan Focus의 책임 편집자로 일하면서 일본 관련 비평을 세계로 발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는 <종속 국가 일본>, <일본, 허울뿐인 풍요> 같은 책이 번역 소개되어 있다. 노리마쯔 사또코(乗松聡子)는 주로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2007년에 설립한 평화철학센터(Peace Philosophy Centre)의 대표를 맡고 있다.
1996년 '전환론'과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누구에게 저항하는가? '미국과 일본에 맞선 70년간의 기록'이라는 부제대로 저항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민족국가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민족국가"라는 번역어보다는 "국민국가"라는 말이 현실에 더 조응하는 말인 듯하다). 이 저항은 역사 속에서 강요당해온 "섬의 운명뿐만 아니라, 미국과 '속국' 일본이 부과한 지역적 및 전 지구적 질서 자체를 지탱하는 기둥에 도전"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 책에서 지은이는 "처분, 억압, 그리고 소외가 마침내 저항으로 전환된 과정에 대한 해명"(36쪽)을 시도한다.
그렇다면 전환은 언제 일어났으며 전환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지은이는 1996년으로 보고 있다. 그전에는 "압도적인 외부 세력의 힘에 의해" 속수무책이었던 오키나와가 1996년 이후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지역적 및 전 지구적 씨스템에서 점점 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저항국가(state of resistant)"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1996년 '전환론'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1995년 9월, 미군 병사 3명이 12세 소녀를 렌터카로 납치해 한적한 바닷가에서 성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항의 운동이 오키나와 전역에서 일어났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일지위협정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 사건은 미군 기지와 미일 동맹에 심각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부상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협상을 개시해 결국 1995년 12월 '오키나와 특별행동위원회'(SACO) 최종 보고를 발표한다. 내용은 후텐마 기지의 전면 반환이었다.
후텐마 기지(MCAS FUTENMA, Marine Corps Air Station Futenma)는 오키나와 중부 도시 기노완(宜野湾) 시에 자리한 미 해병대의 전투비행장으로 기노완 시 면적의 무려 25퍼센트를 차지한다. 게다가 기노완 시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의 발언)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보수파 정치인인 오키나와 지사 나카이마 히로가즈(仲井眞弘多)가 후텐마 기지를 도쿄의 히비야 공원 같은 곳이라 했겠는가? 실제로 1972년부터 2002년까지 각종 비행기 사고가 77건이나 발생했고, 급기야 2004년에는 기지에 인접해 있는 오키나와 국제대학 캠퍼스에 해병대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까지 발생한 곳이다.
따라서 SACO 최종 보고대로 만일 후텐마 기지가 철거된다면, 오키나와 주둔 미군 기지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면 반환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즉 후텐마 기지는 철거하되 이에 따른 대체 시설을 오키나와 내에 마련한다는 것이었고 대체 시설은 그 후 오키나와 북부에 자리한 나고(名護) 시의 헤노코(辺野古)로 압축되었다. 이후 후텐마 기지 철거와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려는 미국·일본 양 정부와, 후텐마 기지 완전 철거와 신기지 건설 반대를 주장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대립 구도가 만들어진다. "거대한 군사기지를 이 장소에 밀어붙이는 것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나 호주의 카카두 국립공원을 군사기지로 만드는 것"(286쪽)이라는 지은이의 설명대로, 헤노코 이전은 멸종 위기종인 듀공, 바다거북이, 해초, 산호로 가득한 이곳에 원자력 잠수함이 정박 가능한 항만 시설과 긴 활주로 두 개, 각종 부속 시설을 포함한 해병대 및 육해군 공용의 거대 군사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미국과 일본에 맞선 70년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오끼나와 역사에서 새로운 국면의 시작을 알리는"(181쪽) 1996년 이후 부상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와 헤노코 신기지 건설 문제를 주제로 삼아, 이 시기를 전환점으로 해서 본격화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저항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제1장부터 4장까지(19∼178쪽)를 오키나와의 근현대 이야기에, 5장부터 13장까지(179∼457쪽)를 헤노코 문제를 포함한 미군 기지 문제에 각각 할애한 것만 보아도 지은이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오키나와 기지 문제에 대한 최고의 개설서라 볼 수 있다.
"하토야마의 난"은 어떻게 '하토야마의 항복'으로 귀결됐나
그중에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009년 8월 총선거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 특히 하토야마 정권과 오키나와 문제의 관련성에 대한 분석이다. 지은이는 1955년부터 2009년 8월말까지 지속된 자민당의 장기 일당 지배를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속국' 씨스템이 체제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던 시대로, 그리고 민주당 정권의 등장을 "극적인 변화의 전조"이면서 "구체제의 붕괴 후 신질서의 개막을 예고"(214쪽)하는 것으로 각각 자리매김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의 등장을 이렇게까지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지만,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정권이 후텐마 기지를 "최소한 현외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니 오키나와 사람들이 하토야마 정권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은이는 "최소한 현외로"라는 공약을 내건 하토야마의 시도를 "하토야마의 난(亂)"이라 하고 이것이 좌충우돌을 거쳐 어떻게 하토야마의 '항복'으로 이어지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하토야마가 미국의 일극 지배에서 다극화 시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동아시아 공동체'(215쪽)를 제시하면서, "혁명의 기치가 되는 전투적인 개념"으로 "생명을 지킨다"는 뜻을 담아 자신의 정치적 열쇳말로 우애(Fraternire)를 제시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생명 중시의 정치적 신념이 "생명이야말로 보물"이라는 말로 회자되는 오키나와 운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오키나와 기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이 같은 생명 중시의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워싱턴은 하토야마의 평화 중시가 미일 동맹의 경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하토야마를 매우 불편하게 생각했다. 이 같은 불편함은 부시 정권 하에서 아시아 태평양 안보 문제 차관보를 지내면서 2006년과 2010년 대일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리처드 롤리스가 하토야마 정권에 대해 비판한 아래의 내용에 거칠게 드러나 있다.
"하또야마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이 다루고 있는 이슈가 얼마나 중대한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일본의 안보를 위한 더 큰 그림에서 보면, 그들은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방에 앉아서 성냥갑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스스로 무덤을 판 뒤에야, 진정한 재해가 일본이라는 집을 덮칠 것이다. 일단 집을 불태우기로 결정해버린다면, '소방관' 미국은 더 이상 주변에 없을 것이다. (…)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면, 스스로 그것을 중지하거나 누군가 삽을 빼앗아야만 한다. (…) 일단 힘과 선의가 일본을 떠나버리면 일본이 이 문제를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민주당의 지도자로서 하토야마 씨는 그와 민주당의 지도자들이 설정한 것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 일본이라는 범위를 넘어선 결과들, 국가로서 그리고 안보의 파트너로서 일본이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자기소외의 결과들 말이다." (230쪽)
민주당 정권에 대한 모멸과 협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이 글은 <아사히신문> 2010년 3월 4일 자에 실렸다. 헤노코 신기지 건설 문제에 대해 하토야마가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던 시점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아사히신문>이 보수파 리처드 롤리스의 인터뷰를 진행해 이를 게재했다는 것은, '야마토'의 주류 언론이 오키나와 문제와 민주당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민주당 고위 당직자도 또 일본 정부 내의 고위 관료도 하토야마의 '최소한 현외로' 공약이 미일 동맹의 손상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해 물밑에서 '하토야마 죽이기'를 시도했다. 예를 들면,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오키나와 현민의 의지를 존중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미국 대사관에 연락했고, 야부나카 미토지(藪中三十二) 당시 외무사무차관은 "미국이 총리대신에게 안보의 기본을 가르쳐 주면 도움이 될 것"(224쪽)이라고 미국에 조언했을 정도라니, 하토야마가 얼마나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같은 미국과 민주당 및 일본 정부 내의 방해 공작을 지은이는 위키리크스 정보 등을 활용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위키리크스 정보를 일본의 언론이 거의 무시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위키리크스 전문을 실은 <아사히신문>조차 관료들의 이름을 누락하는 방법을 통해 진실의 인화력을 잠재우려 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일 동맹의 손상을 우려하는 미국과 이에 동조하는 친미 동맹파 민주당 고위 정치인과 관료들의 암묵적인 방해 등으로 '하토야마의 난'이 '하토야마의 항복'으로 귀결되었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이로써 오키나와의 우군은 적어도 '야마토'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하토야마 이후에 등장한 간 나오토를 비롯한 '야마토' 정권은 마치 하토아먀 시대에 나타났던 미일 동맹의 일시적인 '공백 기간'(335쪽)을 서둘러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헤노코 기지 건설안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게 되었다.
국민국가 뛰어넘는 지향성 내포한 오키나와의 저항
이 책의 열쇳말은 '저항하는 섬, 오키나와'라는 제목대로 오키나와의 주체적 '저항(resistant)'이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저항'이 구체적으로 오키나와 내부에서 어떻게 내재적으로 구성되어 어떤 논리와 모순을 가지고 현재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계통적인 고민을 이 책에서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은이는 1996년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헤노코 문제의 근(近)기원이라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저항하는 주체로서 오키나와인에게도 저항의 방향과 사상이라는 면에서 1996년을 계기로 어떤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저항의 전환을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포착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이 책 곳곳에서 오키나와의 저항을 '비폭력'이라는 개념으로 형용하고 있다. 예컨대 나폴레옹 보나파르뜨의 전언을 인용하면서 "무기도 없고 전쟁도 모르는 왕국"이라고 류큐 왕국을 묘사하는 것은 오키나와의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보면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억압과 차별에 시달리면서 이에 대한 저항의 끈을 놓지 않았던 오키나와의 근현대에서 발견되는 "견고하며 꺾이지 않는 비폭력적 저항"(439쪽)을 오키나와 저항의 특징이라 한다면, 이 같은 특징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오키나와의 저항 앞에 붙는 비폭력이라는 형용은 그 자체가 역사적인 사실이라도, 왜 저항이 비폭력으로 일관되어 왔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자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류큐왕국 시대의 '비무장'이 사실은 류큐왕국의 군사 반란을 우려한 사츠마 번의 '무기 금지' 정책의 결과라는 주장도 한편에 있고, 또 일본의 비무장 평화주의가 주일 미군의 '강무장'에 의해 지탱되는 역설적인 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는 주장도 있는 것처럼, 비폭력주의라는 것은 주어진 정치·경제적 조건에 대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가 문화적 전통과 결합되어 제도로 정착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1996년을 계기로 해서 전환되었다는 저항이 어떤 이유에서 오키나와의 비무장 전통과 결합하여 비폭력주의로 일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 이 점에 대한 이 책의 설명과 분석은 다소 미흡하다. 비폭력주의, 생명 중시와 관련해서는 오키나와 운동에서 1960년대 이후부터 왜 '양키 고 홈'이라는 구호가 없어졌는지에 주목해 평화적 감수성을 강조한 정유진의 연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정유진, '오키나와에는 왜 '양키 고 홈' 구호가 없을까', <당대비평> 14호, 삼인, 2001).
물론 이 책에서 1996년 이후의 저항의 양상을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후텐마 기지 문제를 둘러싸고는 "'혁신과 보수'라는 대립이 더 이상 존재"(264쪽)하지 않게 되었고, 혹은 "국가기구를 가지지 못한" 오키나와 사람들이 "합법적 투쟁의 제도 공간"을 이용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공모를 견제하면서 탁상공론이 아닌 다원적이고 구체적이고 끈질기게 투쟁"해왔다는 점을 지은이는 저항의 특징으로 들고 있다. 즉 지은이는 "견고하며 꺾이지 않는 비폭력적 저항"(439쪽)을 오키나와 저항의 핵심으로 본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지만, 이런 오키나와 저항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에 대한 설명과 분석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예를 들면 나카이마 지사를 비롯한 오키나와의 보수 정치가들이 왜 헤노코 신기지 건설 문제에서 혁신 진영과 거의 같은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지, 혹은 군사기지 건설로 막대한 부를 얻고 있던 오키나와의 건설업자들이 왜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여론몰이에 실패하게 되었는지 등등에 대한 분석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점은 매우 아쉽다. 역시 1990년대 이후, 오키나와 사회 변동이 반(反)기지 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저항의 섬, 오키나와'라는 제목과는 달리, 저항에 대한 내재적 분석은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기지를 둘러싼 미국·일본이라는 국가기구와 이에 대항하는 오키나와의 갈등·대립의 상호 규정 과정을 실증적으로 재구성·분석했다는 의미에서 '헤노코 기지의 지배 정치와 저항'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렇다면 '국가기구'를 가지지 못한 오키나와의 반기지 평화 운동은 어디를 지향하는 것일까?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당연히 독립의 흐름도 있고 자치의 흐름도 있다. 전자가 미국의 통치와 일본의 주권 범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흐름이라면, 후자는 일본의 주권 범위 내에서 오키나와의 자기 결정권을 확대해 일본을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전자이든 후자이든, 지은이가 쑨꺼의 말을 인용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오키나와의 저항은 국민국가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어떤 지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는 평자가 과거에 쓴 책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이른바 독립론도 복귀론도 아닌, 국민국가 그 자체를 거부하는 사상, 즉 '반(反)복귀론'과 상통한다(권혁태,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교양인, 2011년 참조).
오키나와에 관한 책이 조금씩 출판되고 또 한반도와 맺은 깊은 관련성과 유사성 때문에 오키나와 평화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오키나와 현대사에 대한 포괄적인 개괄서이면서 입문서인 <오키나와 현대사>(아라사키 모리테루 지음, 정영신 외 옮김, 논형, 2008년)를 곁들여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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