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우리 현실의 해법을 모색하다
대한민국은 절망이 극대화된 사회처럼 보인다. 굳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돈만 아는 경제'와 국정원 등 국가 기관의 지리멸렬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윤 일병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일같이 폭력적 죽음을 접하고 사는 게 대한민국이다. 대통령부터 육군 일등병까지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조자들이 들끓고 있다. 희망이 없는 사회다.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의 외마디가 끊이지 않고, 히브리 노예들처럼 이제 그들의 음성을 들어줄 이는 하느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심경에 사로잡힌다. 이 마당에 교황이 '대한민국'에 오신단다. 그분은 폭력의 원인을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에서 찾았다. 세상이 "경쟁의 논리와 약육강식의 법칙 아래 놓이게 되면서 힘없는 이는 힘센 자에게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자비와 배려가 실종된 사회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경험하기 힘들다.
이 마당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려는 책이 한 권 나왔다. 가톨릭교회의 대안 언론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을 초창기부터 맡아오다가 최근에 주필로 글을 쓰는 한상봉의 책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다섯수레, 2014년 8월 펴냄)다.
한상봉은 언론인이 되기 전에도 '사회적 복음'을 실현하기 위해 투신해 왔다. 공장 생활에 이어 가톨릭 노동 사목 활동가로 일하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사무국장을 맡기도 하고, <공동선>이라는 잡지 편집장을 하기도 했다. 한때는 전라도 무주로 귀농해 농사꾼이 되기도 했던 한상봉은 1급 예술심리치료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학부에서는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신학을 전공했다.
그이가 무주에서 농사를 지을 때 함양 지리산 자락에 사는 나는 이따금 무주에 들러 안부를 묻곤 했다. 한국 교회에서 몇 안 되는 평신도 신학자인 한상봉이 언론을 시작하면서 그의 글을 다시 접할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최근 교황에 관한 책들이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 번역서라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김근수의 <교황과 나>와 더불어 우리 시각으로 써내려간 교황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교회'를 곰곰이 묵상하게 된다. 절망의 시대에 그이가 발견한 교황에게서 가느다란 희망을 발견하고 싶다.
"우리의 끝없는 슬픔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의 삶에 각인된 슬픔과 고뇌를 복음이 주는 기쁨과 희망으로 뒤바꿔 보자는 게 교황의 생각"이라는 한상봉은 "나자렛 예수 없이 로마 가톨릭은 없다"고 단언한다. 가난한 노동자 예수를 기억하지 못하고서야 가톨릭교회는 헛것일 뿐이고, 이런 점에서 교황이 선언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마땅히 따라 걸어야 할 '길'이라고 한상봉은 전한다.
교황은 교회가 죄에 대한 심판관도 아니고 은총에 세금을 매기는 세리도 아닌 '열린 마음을 가진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 특별히 배제와 차별의 대상으로 버려지는 가난한 이들이 언제든지 찾아들 수 있는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한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과 말씀을 나누실 때 그의 눈을 사랑이 가득 찬 깊은 관심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하고 말했던 것처럼, 무엇보다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교회를 꿈꾼다. 교황이 "교회는 전쟁이 끝난 뒤의 야전병원"이라고 말한 것도, 교회는 "안온한 성전에 머물지 말고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도 모두 고통과 슬픔이 여전한 세상에 대한 깊은 사랑의 눈길 때문이라고 한상봉은 믿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가장 어울리는 칭호 '파파'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에서 한상봉은 교황을 '파파'(papa)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강우일 주교의 말마따나 임금이나 황제를 연상시키는 교황(敎皇)보다는 교종(敎宗), 교도권적 냄새가 물씬 나는 교종보다는, 적절하게 번역할 말이 없다면 그저 '파파'라고 부르자는 것이다. '파파'는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니,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 직무에 대한 이해나 교회론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교황은 성 요셉 대축일에 행한 즉위 미사에서 "진정한 권위는 섬김 그 자체"라면서 "저도 요셉 성인처럼 팔을 벌려 하느님의 모든 백성을 보호하고, 모든 인류를, 특히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없고,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부드러운 사랑으로 끌어안으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한상봉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었던 이탈리아 농촌의 소작농 가정 출신인 요한 23세 교황과 벽돌공의 아들이었던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공의회는 교회를 '권력 구조이기 전에 하느님 백성'이라고 선포했으며, 바오로 6세를 이은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봉건 시대의 유물인 권위적인 태도를 버린 사람이다.
이 교황은 스스로 '짐'(朕)이라고 부르던 관례를 버리고 '나'라고 지칭한 최초의 교황이며, 장엄한 교황 대관식을 간단한 '즉위 미사'로 바꾸었으며, 보석이 박힌 삼층관도 거절했다. 그는 교회법처럼 엄격한 군주의 모습을 벗었다. "하느님은 어머니이시며 아버지이시다. 하지만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기보다는 어머니이시다"라고 말했던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소박하고 다정한 말투를 쓰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닮았다.
파파 프란치스코는 해방신학의 핵심 맥락을 계승하고 있다
한상봉은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에서 '교회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찾아 나선다. 교회는 물론 세상 사람들을 모두 사랑해야 하겠지만, 부모들이 가장 약하고 아픈 자식에게 더욱 마음이 가는 것처럼, 교황은 제일 첫 번째 순방지로 아프리카 난민들이 몰려드는 람페두사(이탈리아 최남단의 섬)를 선택하고, 브라질과 한국을 방문하고, 이어 국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인 알바니아, 그리고 내년에는 스리랑카와 필리핀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는 세상의 가장 아픈 부위를 찾아가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는 '착한 목자'다.
한상봉은 이러한 교황의 생각에는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내려 있다고 판단한다. 세계청년대회 때문에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대륙인 라틴아메리카의 브라질은 해방신학의 못자리다. 과거 교황청에 의해 심문을 받기도 했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가 활동했던 곳이 브라질이며,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가 활동한 땅도 브라질이었다. 그가 예전에는 해방신학을 감찰했던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친구인 뮐러 대주교를 유임시키고, 최근에는 그를 아예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에서 한상봉은 "교황은 한 번도 해방신학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해방신학의 핵심적 맥락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해방신학이 독자적인 신학이라기보다 메데인과 푸에블라, 산토도밍고, 아파레시다 문헌으로 이어지는 라틴아메리카 주교들의 견해를 신학화한 것이라 말하며,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주교들과 보수적 주교들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과 논쟁점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한편 교회 개혁과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그넷길에 있는 교회는 그 자체로서도 인간적인 지상 제도로서 언제나 필요한 개혁을 계속하도록 그리스도께 부름 받고 있다"고 한 말을 인용하며, 특별히 교황이 '교황직 쇄신'까지도 거론한 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한상봉은 이러한 교황직 쇄신의 신호탄을 전임이었던 베네딕토 16세의 '종신제 교황의 중도 사임'에서 찾았다. 한편 한상봉은 "지나친 중앙 집권은 교회의 생활과 그 선교 활동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이를 어렵게 만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하며,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를 설파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해방과 위로를 주고, 정의와 평화, 용서와 사랑이 깃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고 말한다.
교회 민주화와 관련해서도 한마디 하고 있는데, 한상봉은 지난 2013년 3월 21일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헌법에 대해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또한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발의·제안·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 대통령 긴급조치 1호, 2호, 9호가 모두 위헌이라고 결정한 사실을 밝히며, 교회 안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학문의 자유를 요구했다. 현재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제의 선택적 독신제와 여성 사제, 낙태와 피임 문제, 신학적 쟁점 등이 있는데, 이러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자유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상봉은 레오나르도 보프의 글을 인용하며 "교계 제도는 국가의 검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발하면서도 교회의 언론 수단에는 사사건건 통제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회는 그동안 교도권의 해석과 다른 의견이나 새롭게 제기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신학적 가설에 대해 격렬히 반발하며 단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신학자들의 경우에는 침묵령을 내리거나 출판을 불허하고 이단 판정을 내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교황청에서 문제 삼은 신학이나 신학자의 경우에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투명성, 자기 해명의 권리도 없이 심문이 무한정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反)인권적이라고 보프는 보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피고가 할 수 있는 것은 신앙교리성의 권고에 응하는 것뿐이며, 교황청은 이미 "신학적으로 모호하며 위험하고 오류이며 가톨릭 교리와 신앙의 규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죄명을 정해 두고 심문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보프는 "신앙의 규칙은 신앙의 본질을 보존해야 하지만, 그 본질을 불변의 공식처럼 받들어서는 안 된다"며, 그리스도교 신앙이 역사적 변동 속에서 새로운 이슈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허구적인 현실만 모방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상봉이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에서 더 심각하게 주목하는 것은 "껍데기뿐인 영성과 사목으로 치장한 세속적인 교회"에 대한 비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려하는 교회의 '영적 세속성'은 신앙심이나 교회에 대한 사랑이라는 미명을 앞세우며 사실상 인간적인 영광과 개인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다. 개신교의 번영신학을 닮은 이런 교회는 관료주의나 실적주의에 빠지고, 결국 '빌어먹는 교회'에서 '벌어먹는 교회'로 변한다. 한상봉은 이를 두고 "성전이 사업장으로 변해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국가 폭력 희생자들을 복권시키는 시복식 미사는 산 자들을 위한 '길거리 미사'
한상봉은 교황 방한을 앞두고 교황마저 '가공 처리'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에 기대서 그 이미지만 차용하고, 그 정신은 실행하지 않는 방법이다. 한상봉은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유병언과 구원파'의 경우를 예로 들며 "종교 뒤에 숨어 있는 속물성은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이 내놓은 해법은 '단 한 가지뿐'이라고 한상봉은 말한다. "교회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사명을 지속하며, 가난한 이들을 향한 투신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상봉은 교황이 광화문에서 봉헌하는 시복 미사를 교황이 집전하는 '길거리 미사'로 규정하고,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임금도 부모도 없는 사교(邪敎)에 빠졌다는 명분으로 조선 봉건 정부에 의해 희생당한 정치적·사상적·종교적 희생자들"로 본다. 이른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국가 권력의 심장부인 광화문 네거리에서 복권시키는 것이 시복식이라는 관점이다.
적어도 한상봉이 바라본 프란치스코 교황은 철저히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의 편에 서서 이들 안에서 구원의 빗장을 여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만일 한상봉의 생각대로 교황이 '파파'라는 호칭 그대로 가련한 이들을 진심으로 끌어안는 분이라면,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이른바 '보편적 구원의 성사'로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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