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축산물의 유통 현황과 문제점, 해결 과제를 종합적으로 제시
대한민국에서 복날에 가장 많이 소비되는 육류는 소·돼지나 오리가 아니라 닭이다. 복날뿐만 아니라 흔히들 치킨이라고 부르는 닭튀김은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사시사철 좋아하는 국민 먹거리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즉 구원파의 교주 노릇을 해온 유병언 씨의 장남 유대균 씨가 용인의 한 오피스텔에서 숨어 지내다 경찰에 붙잡히기 하루 전날 뼈 없는 닭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사실을 종편들이 이야깃거리로 앞다퉈 다루기도 했다. 이는 요즘 종편이 진짜 국민의 알 권리보다는 알 필요도 없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마구잡이로 조명하는 탓도 있지만 닭이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
무더위가 계속되는 요즘 '치맥집'은 사람들로 들끓는다. 내가 사는 동네 어귀에 있는 ○○치킨 전문 체인점도 예외는 아니다. 해가 진 뒤부터 밤 12시까지 손님들이 자리를 꽉 메워 실내는 물론이고 밖에 테이블과 의자를 차려놓고 손님을 받는다. 1980·1990년대 콜레스테롤 공급 주범이란 낙인이 미국에서 찍혀 한국에서도 한동안 꺼리던 달걀이 요즘에는 완전식품이란 그럴듯한 이름을 달아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달걀 한 꾸러미씩 사다놓고 달걀 프라이나 달걀찜 등 각종 요리에 쓰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피와 살이 되고 생명을 유지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이루는 먹거리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뿌리 뽑아야 할 우리 사회의 4대 악 가운데 하나로 가정 폭력, 학교 폭력. 성폭력. 가정폭력과 함께 불량 식품을 꼽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먹거리의 안전성이 어디부터 문제가 되고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더군다나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먹거리가 생산에서 가정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유통되는지에 대해서는 더 모르고 있다. 관심도 높지 않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농축산물 유통 전문지의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는 김재민이 쓴 <닭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시대의창, 2014년 7월 펴냄)는 우리가 소홀히 여기기 쉬운, 실제로 시민들이 소홀하게 생각하는 농축산물, 특히 축산물 유통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다. 책 제목만 봐서는 닭고기 위생과 안전 문제를 다루었거나 이와 함께 닭고기 유통 문제도 곁들였지 않을까 단정하기 쉽지만 실은 농축산물 유통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전문적이어서 읽기 어렵고 딱딱한 책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언어로 담담하게 농축산물의 생산과 유통, 소비 등의 현황과 함께 선진국과 비교하며 바람직한 정책 방향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풀어놓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칼럼 형식과 보고서 형식이 어우러진 책이라고 보면 된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내용은 눈에 안 띄어 사회 영향력은 글쎄?
농축산물 안전성 문제는 주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이 유행할 때 제기된다.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가축전염병 유행 때 고기나 난 제품을 먹다 혹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가축전염병이나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과학적인 근거에 따라 소비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육류와 계란 소비를 아예 하지 않거나 크게 줄인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이보다도 고기 속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는 성장호르몬, 항생제, 중금속 등이며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는 과도한 육류 섭취나 지방 섭취에서 오는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 암 등 각종 만성질환이다.
만성병 증가와 환경 오염, 공장식 가축 사육과 이에 따른 가축전염병 창궐, 대량 살처분 등은 기업형 또는 공장식 농축산에 대한 반발 또는 반대 운동, 그리고 육식 문화에 대한 반성을 태동시켰다. 완전 채식주의자 또는 채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증가와 이들 목소리를 반영한 매스미디어의 프로그램이나 기획 보도, 채식을 옹호하는 유명 연예인 조명 등도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도 번역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등은 기업형 축산 또는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즐기는 현대인의 삶이 가져다줄 위험을 경고하는 대표적인 책들이다.
지금은 육식 시대 - 지구촌 해마다 580억 마리 도축, 성찰할 필요 있어
지구에서 매년 도축되는 식육 동물의 수는 소, 돼지, 닭, 양, 칠면조 등등 대형 포유류와 가금류를 망라해 580억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이 수치를 보면 우리는 육식 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저자는 공장식 축산을 지원하기 위한 동물과학(수의학)의 발전으로 고기 생산량은 늘고 맛도 좋아졌지만 가축들의 삶은 더욱 나빠졌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에게 말한다. 최근에는 이런 반(反)육식 운동에 반기를 드는 책들과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식품 의약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태균이 펴낸 <우리, 고기 좀 먹어볼까?>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육식 예찬론까지는 아니지만 육식의 장점과 불가피성, 그리고 육식 문화의 효용성을 설파하는 움직임들이다.
<닭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반(反)육식 유행에 본격적으로 반기를 든 책은 아니다. 물론 저자는 축산업의 발전과 축산인에 대한 애정을 듬뿍 지녔다. 과거 귀한 음식이었던 양계 산물이 어떻게 저가 식품, 서민 음식이 되었는지, 왜 농축산업이 공장화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추적해 정부가 추진했던 농장의 대규모화와 자본 중심의 수직 계열화가 지금의 기형적인 농축산물 대규모 유통과 공장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국내 최대의 닭고기 회사 (주)하림의 성장 이면을 파헤치다
저자는 또 바람직한 농축산 유통 방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 자유 직거래를 꼽는다. 또 농장보다 힘의 우위에 있는 대형 식품업체 그리고 대형 소매 유통업체들의 가격 인하 공세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사육과 가공의 분리를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이 책은 "농축산업의 공장화는 우리 농장의 규모를 크게 불렸고 대규모 단작농업 형태로 바꿔놓았다. 또한 크고 작은 다양한 농장을 저마다의 특성을 무시한 채 하나로 묶는 계열화 사업이 이루어졌고, 농업 회사와 식품 기업의 대형화, 농업 관련 회사의 통합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국내 최대의 닭고기 회사인 (주)하림을 한국형 수직 계열화의 대표 주자로 꼽고 한 장을 할애해 정부의 정책 지원으로 성장의 발판을 하림이 마련했다고 까발린다. 그리고 양계 농가가 열심히 투자해 얻은 열매를 회사가 고스란히 따먹는 모순 구조를 지적한다. 하림의 성공 이면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깊은 내막까지 짚어내지는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농민 중심의 계열화 사업을 추진할 대한육계축산업협동조합의 창립을 반기며 이 조직에 희망을 걸고 있다.
국민들의 '성인병'을 농약과 화학비료 탓으로 돌린 것은 옥에 티
한편 이 책이 담고자 했던 본질은 아니고 곁가지이기는 하지만 일부 사실과 다르거나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부분도 눈에 띈다. 그 대표적인 보기로 49쪽을 보자. "자연스럽게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이들 화학물질의 대량 살포로 농지는 산성화됐고 논은 생물다양성을 잃어갔다. 통일벼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화학물질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원인 모를 성인병에 고통당해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말은 다시 말해 통일벼에 사용한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국민들이 성인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엄청난 문제이다. 하지만 농약과 비료 성분 때문에 국민들이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 등의 성인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지금껏 듣지 못했다. 성인병(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지는 꽤 됐음에도 저자는 20~30년 전에 사용하던 성인병이란 말을 쓰고 있다. 성인이 아닌 아이들도 비만, 당뇨 등에 걸려 고생하는 문제는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요즘은 대신 생활 습관병이란 말을 쓴다. 탄수화물과 고지방, 고열량 식품을 많이 먹고 운동을 잘 하지 않는, 나쁜 생활 습관 때문에 생기기 때문이다.)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원인 모를 성인병'이라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저자가 보건학 또는 의학 전문가가 아니어서 이런 오류가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저자는 132쪽에서는 "좀 더 싸게, 많이, 빠르게 공급된 음식은 결국 잘못된 식습관을 불러일으켰고 비만, 암, 당뇨 등 각종 성인병을 초래했다"고 앞서 지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광우병 발생을 신의 창조 섭리를 거슬러 인간이 치르는 대가라는 식으로 기술한 것도 비과학적이다.
또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것은 용어 문제이다. 육가공 부문, 유통 부문 등 부문이라고 해야 할 것을 죄다 육가공 부분, 유통 부분 등 부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부문과 부분은 엄연히 차이가 나는 용어이다. 문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료(또는 단백질)를 급여한다'는 표현도 그렇다.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 사료(단백질)를 준다거나 사료를 먹인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사료를 급여한다'는 식으로 표현해 독자들로 하여금 읽는 순간 어색하다는 느낌을 줄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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