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얘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너무 의아한 일이 있다.
왜 유병언이 사망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유병언과 수없이 관련되었을 유착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졌는가?
얼마 전 강서구 재력가의 죽음에도 많은 정관계, 검찰 등 유착 관련자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나왔다. 그런데 훨씬 큰 손 유병언의 죽음 뒤에 전혀 말이 없다. 아마 수없이 많을 그 유착 관련자들은 유병언의 죽음을 손 모아 기원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희망대로 사태는 흘러가고 있다. 이 정도로 언급이 없을 정도라면 언론계에도 그 유착이 상당히 존재하지 않았을까 의구심까지 든다.
배수진의 시기를 놓치다
참패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상대의 장점보다 나의 단점으로 인하여 패배했다는 점이다.
야당은 세월호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서 청와대나 대통령 인신공격의 ‘남 탓’을 너무 많이 했다. 야당은 책임 있는 정책 주체로서 예를 들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관료 개혁에 대해서도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야당은 항상 해경 해체 반대 등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했고, 입만 열면 청와대 책임론이나 흠집내기에만 골몰했다. 누차 지적했듯이, 국민들은 이런 야당의 모습을 혐오한다. 그리고 야당이 계속 이런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야당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참패하고 또 참패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남 탓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일을 하면서 남 탓을 해야 한다.
또한 만약 투쟁을 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투쟁다운 투쟁을 했어야 했다. 야당은 세월호 문제에 대응하여 한두 달 전, 아직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일체감이 살아 있을 때 예를 들어, 의원직 총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승부를 걸었어야 했다. DJ와 YS 때보다 훨씬 못하다. 야당은 스스로 지연전술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전략 부재, 눈치 보기, 책임 회피로 일관함으로써 결국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의 힘만 뺐다.
이렇게 아무 것도 해결은 되지 않으면서 시간만 많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국민들은 일종의 ‘세월호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야당은 그 대중적 피로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이미 불리해진 정황에서도 마지막까지 관성적으로 정권 심판론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이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자충수였다. 그러나 야당은 이러한 행태로 이제까지 존속해왔고, 더구나 때론 어부지리 승리도 몇 차례 거둔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변화시킬 생각도 없었다.
결국 야당은 아직 너무 배가 부르다. 도탄에 빠진 이 땅의 민주주의와 국민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은 급하지 않다. 적지 않은 야당 국회의원들은 정권은 못 잡아도 최소한 금배지는 계속 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처절한 패배를 당한 지금도 이러한 사고방식이 근저에 강인하게 깔려 있을 것이다. 손에는 아직 기득권이 많이 남아 있고, 몸은 갈수록 무거워지며, 의도적으로 힘이 들어간 목에는 군림의 자세가 여실히 배어난다. 이번 선거 패배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던 기상천외 이전투구의 공천 파동도 당권 쟁탈과 다음 선거의 공천에 그 뜻이 있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좀 더 멀리 보는 눈
필자는 전에 안철수 의원이 노원구에 출마했을 때 노회찬 전 의원에게 안철수 당시 후보와 일종의 공동협약을 맺으면서 양보를 하는 방안을 개인적으로 권한 바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면 이번 선거에서 연대의 힘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또 아쉬운 점은 노동당 후보 득표수보다 적은 표차로 패배했는데, 노동당 후보와 말로는 단일화한다고 했지만 끝내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다. 아쉽다. 2%씩 부족하다.
순천 곡성 지역은 상대방 후보의 장점도 있지만 패인에는 야당 후보의 문제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고 판단된다. 나이는 아직도 젊지만 나이에 비하여 너무나 노회한 이미지와 행적을 보여 주었다.
손학규, 김두관 그리고 임태희 등 이른바 정치 거물이 패배한 것은 다른 의미에서 보면 정치 혁신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른바 486은 항상 당권파에 편승한다는 세간의 시선을 명심해야 한다. 솔직히 이제까지 패거리 정치와 끈질긴 욕심을 제외하고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대,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중을 위하여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 자신들이 활동하던 시절 외쳤던 이신작칙(以身作則)의 원칙을 지금 수행해야 한다.
다만 이번에 나름 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준 기동민의 행동은 486에 남아 있는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였다.
지금 필요한건, ‘나부터 혁신’
얼마 전부터 민주당이 깨져야 이 땅의 민주가 살고 진보당이 깨져야 이 땅의 진보가 산다는 말이 떠돌았다. 비록 실패한 드라마로 마감되었지만, 정치 열망을 갈구하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다.
이번 선거로 또 무슨 당 대 당 통합을 한다든지, 외부의 일부 시민 세력과 통합을 한다든지 등의 논란이 틀림없이 회자될 터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 밥에 그 나물이고, 아무런 신선감도 없다. 국민에게도 어필될 리가 없다. 기껏 보여주기 쇼로 국민들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고 냉소감만 심화시킬 뿐이다.
지금 야당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형식보다 내용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고, 시작이 반이다. 진리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국가를 혁신하라고 정부와 청와대에 요구만 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부터 혁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다시 무장하여 차근차근 건강한 정당을 세워나가고 국민의 생활에 밀착하는 정책을 마련하며 정치 신인을 양성해 나가야 한다.
특히 이번에도 분명히 입증된 바처럼, 오늘의 야당은 이 땅의 하층에게 전혀 인기가 없다. 전교조와 대기업노동자를 비롯하여 사실상 중간층과 비판적 지식층에만 기반하고 있는 현재야당 상황을 돌파하여 비정규직 등 소외된 하층에게 실질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위기 뒤에 반드시 기회가 오는 법이다.
지금의 좌절을 오히려 하늘이 준 기회로 받아들여 참다운 ‘야당 개혁’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선거는 상대의 장점보다 나의 단점으로 인하여 패배한 전투이다.
우선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그러한 성찰의 토대 위에 한 걸음 한 걸음 차근차근 정비해나가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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