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 재판에서 국정원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의 진술서를 써주는 대가로 전직 중국 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소) 직원 임모(50) 씨에게 돈을 건넨 정황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김우수 부장판사) 심리로 29일 열린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임 씨는 "국정원에서 요구하는 대로 진술서를 써주고 현금으로 10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선족 출신인 임 씨는 자신의 중국 소학교 스승이자 국정원 협조자인 김모(62)씨의 부탁을 받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기소된 유우성 씨의 출입경 기록과 관련해 유씨 변호인 측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의 진술서를 써줬다.
이 진술서에는 '전산장애로 출입경 기록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없던 기록이 생성될 수는 없고, 유 씨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을종 통행증으로도 북한을 여러 차례 오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 씨 측은 출입경 기록에 '입-입-입'이 세 번 연속 찍힌 것이 전산 오류로 없던 기록이 생성된 것이고 을종 통행증으로는 북한에 1번밖에 다녀올 수 없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임 씨의 진술서는 국정원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임 씨는 "이 진술서는 당시에 스스로를 검찰 직원이라고 소개한 권모 씨(국정원 과장)가 프린트해 온 내용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베껴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씨는 증거조작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을 기도했던 국정원 직원이다.
임 씨는 "권 씨가 올해 1월 17일 열릴 유 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달라고 부탁했고, 재판에서 어떻게 말하면 되는지 1문 1답 방식으로 연습도 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다만 유 씨 재판 기일이 연기돼 실제 증인으로 출석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에서는 또 국정원 비밀요원 김모(48) 과장이 지난해 11월 27일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가짜 사실확인서를 한국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선양영사관으로 보낸 사실이 중국 웹팩스 업체 '엔팩스24'에 대한 사실조회를 통해 확인됐다.
김 과장은 허룽시 공안국에서 보낸 것처럼 보이기 위해 팩스 번호를 위조하기도 했다.
사실확인서는 검찰이 유 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위조된 출입경 기록을 국정원에서 받아 증거로 제출한 뒤 이 기록이 중국 당국에서 정식으로 발급받은 공문서인 것처럼 꾸미려고 추가로 제출한 문건이다.
검찰은 당초 이 사실조회서가 국정원 사무실에서 보내진 것으로 파악하고 김 과장 등을 기소했지만, 발송 장소가 김 과장의 집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한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김 과장과 김 씨 등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유 씨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출입경 기록 등을 위조한 혐의로 지난 3월 기소됐다. 권 과장은 자살 사건으로 기소중지됐다가 이달 초 불구속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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