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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의료보험 중단', 그는 결국 죽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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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의료보험 중단', 그는 결국 죽어야 했다

[기고] 의료보험 지키려 파업하는 나라, 미국

나는 미국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법률서비스노동자노동조합(Legal Services Staff Association, NOLSW/UAW Local 2320)의 조합원이다. 의료 민영화의 천국인 미국에 살면서 겪은 나의 경험을 통해 한국에서 추진되는 의료 민영화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같이 들여다보려고 이 글을 쓴다.

얼마 전 남편이 정기 검진을 받으면서 대장 내시경 검사도 함께 받았다. 나중에 병원에서 검사 비용 청구서가 왔는데, 그 금액을 보고 나는 너무나 놀랐다. 대장 내시경 비용만으로 자그마치 5545달러(약 570만 원)가 청구되었다. 대장암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정기 검진의 일부로 한 대장 내시경 검사인데도 엄청난 비용이 든 것이다.

너무나 다행히도 노조가 있는 직장을 통해 가입한 꽤 괜찮은 의료보험이 있어서 우리가 직접 부담한 비용은 20달러에 불과했지만, 만약에 직장 의료보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미국의 직장 의료보험도 대개 영리 회사가 운영한다. 미국에는 전국민건강보험이 없기에 '직장 의료보험'이 기업 내 복지 제도로 자리 잡았다. <편집자>)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없다. 그래서 직장을 통해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으면, 개인이 영리 보험회사에서 보험을 직접 사야 한다. 이윤 추구가 주목적인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의료보험은 돈의 논리가 지배한다. 일 년에 수천만 원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 대신 비교적 보장이 잘 되는 보험부터, 보장성이 형편없는 무늬만 보험인 것까지 천차만별이다.

▲ 미국의 의료 민영화를 고발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

영리 보험 가입하고 비싼 보험료 내고도 아프면 파산

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많은 미국인이 의료보험 없이 그저 큰 병에 걸리지 않기만을 빌며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것처럼 살고 있다. 2009년 인구조사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 의료보험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4860만 명 정도라 하니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 자신도 미국에 처음 와서 학교 다닐 때 의료 보험이 없이 지냈다. 몇 년을 보험 없이 지내다,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직장에 취직했을 때야 비로소 의료보험 혜택을 받았다. 그때 나는 아직 20대였고, 비교적 건강했기에 별 탈 없이 지나갔지만, 혹시 병이라도 걸렸거나 다치기라도 했다면 의료보험도 없이 어찌했을까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의료보험이 있다 하더라도 보험에 따라 보장성이나 혜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정작 큰 병에 걸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게 태반이다. 미국인들의 개인 파산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의료비용 때문이라고 한다. 직장 잘 다니며 내 집 장만해 소위 중산층으로 잘살다가도, 만에 하나 가족 중 하나가 암이라도 걸리면 치료비를 감당 못 해 결국 파산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의료비용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놀랍게도 이미 어떤 형태이든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즉, 의료보험이 있더라도 큰 병에 걸리면 의료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항목이 많고 당사자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감당이 안 되게 비싼 게 의료 민영화의 천국인 미국의 현실이다.

미국의 한인교포사회에서는 보험이 없거나, 보험이 있더라도 커버리지가 적은 보험을 가진 사람들이 일부러 비행기 타고 한국까지 가서 병원 진료와 치료를 하고 온다는 얘기를 흔히 듣는다. 한국에 보험이 없어서 치료비를 전액 현금으로 낸다 할지라도 미국보다 비용이 훨씬 덜 들기 때문이다. 수백만 원 하는 비행기 삯과 체류 비용을 다 제하고도 말이다.

임금은 동결해도 보험 혜택은 못 줄여!

운 좋게 직장을 통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더라도 만사형통은 아니다. 직장 의료보험도 종류가 다양해서, 경우에 따라선 본인 부담금이 엄청난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엔 정말 운 좋게 노조가 있는 직장에 다녀서 혜택이 비교적 좋은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나마 이것도 지난 몇 년간 단체협약이 갱신될 때마다 혜택이 삭감되어서, 해가 갈수록 커버리지는 줄어들고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

흔히 "캐딜락 플랜"이라 불리는 비교적 질 좋은 의료보험에 대해 사용자들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매번 단체협약 갱신 때마다 노동자들의 부담료 인상을 요구해 왔다. 그러다 작년 5월에 우리는 더 이상의 양보를 할 수 없다며 파업에 들어갔다. 주요 요구 중의 하나는 기존의 의료보험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경기가 안 좋아서 임금은 동결하더라도 더 이상 의료보험 혜택을 줄일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왜냐면 임금 인상이야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요구할 수 있지만, 한 번 양보해서 잃어버린 의료보험 등의 복리 혜택은 되찾아 오기 어렵다는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사실 사용주의 의료보험 혜택 삭감에 항의해 파업에 들어가는 경우는 미국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예를 들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뉴욕시와 뉴욕시 교외인 롱아일랜드를 연결하는 통근 열차(LIRR MTA)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조가 이달 말 파업을 예고했는데,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기로 한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노동자의 의료보험 부담금 인상 반대이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9월 의회에서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연설을 했다. ⓒ백악관 홈페이지

파업 중 경영진이 보험 중단해 동료 남편 숨져

우리는 경영진 측이 이전에 있었던 몇 번의 파업에서 관례로 그랬듯이, 파업 기간에도 파업 노동자들의 의료보험을 계속 유지하리라고 생각했었다. 설사 만에 하나 파업 동안 의료보험을 중단할지라도 적어도 우리에게 미리 시간을 주고 통보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리의 순진한 예상은 빗나갔다. 경영진은 우리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파업을 시작하자마자 의료보험을 중단했다. 우리는 그 사실을 파업 후 보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비극적인 방법으로.

파업에 참가한 한 동료의 남편이 암 투병 중이었는데, 하필 파업 기간 중 그의 항암 치료가 잡혀 있었다. 별 의심 없이 남편과 예약된 항암 치료에 갔던 동료는 병원에서 처음으로 의료보험이 중단되었다는 걸 통보받았다. 보험이 취소되었기에 그녀의 남편은 그 날 예정대로 항암 치료를 받지 못했다. 노조에서 부랴부랴 파업 노동자들에게 대체 의료보험을 마련해 주었지만, 동료의 남편은 그 일분이 아까운 시간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그의 암세포는 더 많이 전이되었고, 결국 동료의 남편은 우리가 파업을 마치고 복귀한 지 석 달이 좀 지나 세상을 떠났다. 이윤이 아니라 생명을 위해 파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에게 의료보험 취소라는 비인간적인 압박을 가한 경영진 덕분에 동료의 남편은 이제 열 살도 안 된 어린 두 아이를 남기고 더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이다.

우리는 6주 동안 치열하게 파업했지만, 결국 다른 원칙들을 지키는 대신 의료보험에 배우자를 포함하는 경우 노동자가 비용을 부담하기로 하는 절충안에 합의하고 파업을 접어야 했다. 6주 동안이나 파업했어도 결국 의료보험 혜택은 줄어든 것이다. 이러다간 미국 노동자들이 직장을 통해서도 있으나 마나 한 의료보험을 갖게 되는 날이 올까 두렵다. 의료보험을 지키기 위해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노동자들이 파업까지 불사해야 하는, 의료비용이 일반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이 비싸지는 세상이 바로 의료 민영화가 가져올 미래의 한 모습이다. (☞ 관련 기사 : '돈독' 오른 병원의 속살, 현직 의사의 '카메라'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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