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나온 '통일은 대박'이라는 화두(속칭 통일대박론)가 지난 2월 대통령 취임 1주년 담화문을 통해 통일준비위원회 발족 구상으로 구체화됐다. 이후 5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 통일준비위가 공식 출범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차제에 필자는 역발상으로 이러한 담론이나 기구가 과연 남북통일에 보탬이 될까하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왜 그럴까?
우선 통일대박론이나 통일준비위의 거론 자체가 알게 모르게 통일이 임박했다거나 임박할 징조가 있다는 의미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개선을 저해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준비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개념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 간에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이 핵심인데 통일준비위는 북측에 '흡수통일'의 잘못된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신뢰'를 저해하는 결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올해 들어 14차례에 걸쳐 미사일‧방사포를 발사하는 등 최근 들어 직‧간접적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 것과 입에 담지 못할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저들이 볼 때는 우리 측 제안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신뢰'라는 개념은 상대방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상대라 함은 북한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좋든 싫든 북한의 통치집단, 즉 김정은 지도체제를 말한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는 남북 간의 신뢰형성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성급히 내놓는 이른바 '액션플랜'(action plan)의 지향점이란 것들이 암묵적으로 상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통일대박론'이다. 이를 사람에 비유하면 상대가 죽으면 로또 당첨과 같은 엄청난 유산을 챙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통일준비위원회는 북측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유산 얘기가 나왔는데 사람으로 치면 '장의준비위원회'쯤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싶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선언(2014. 3. 28)은 어떨까? 그 자체로 선의가 있다고 해도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흡수통일 계획의 결정판' 정도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그것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일각에서는 통일대박론을 국내정치용으로 폄하) 우연치 않게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후속 논의들이 협상 상대방의 가장 예민하고 취약한 포인트를 건드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작년 12월 장성택 처형과 그동안 북한 군부‧권력 엘리트의 빈번한 숙청과 교체 등에서 보듯이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한의 통일대박론을 북한 매체에서 '흉악무도한 북침전쟁론'이라고까지 매도하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현상타파의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우선 통일대박론은 점진적으로 거두어들이고 통일준비위는 출범을 보류하거나,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배제한 시민단체 등 민간 주도의 남북교류 중심의 기구로 재편돼야 마땅하다. 통일준비는 우리 정부가 이미 갖추고 있는 통일 관련 기구나 부처에서 조용히,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수행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한편, 남북신뢰회복의 준비 차원에서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재개 등의 현안은 북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동시 일괄타결하는 방식(남한의 조건부 일방조치도 가능)으로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끝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대사급 수교)와 함께 한국전쟁의 주교전당사국(국제법상)인 남북한, 미, 중 4자간의 평화협정 체결로 북한 스스로가 핵이 필요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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