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여성을 '매춘부' 등으로 표현해 논란에 휩싸인 책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법리 공방이 시작됐다. 소송 당사자인 출판사 관계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양측이 9일 법정에서 처음으로 마주쳤다.
제국의 위안부' 출판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 소송 1차 심문기일 절차가 이날 오후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21부 고충정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렸다. 총 9명의 신청인 가운데 이옥선 씨를 포함한 3명이 법정에 출석했다. 피신청인 가운데는 <제국의 위안부> 출판사 '뿌리와이파리'의 정종주 대표가 참석했다. 저자인 세종대학교 박유하 교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청인 측은 재판부에 과거 일본군 과거 위안부 경험으로 받은 고통을 호소하고, 아울러 <제국의 위안부> 출간에 따른 2차 피해를 주장했다.
이옥선 씨는 "1942년 7월 29일 중국에 끌려갔다. 우리는 위안부가, 위안소가 뭔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여자들을 데려다가 위안부라고 하고 말 안 들으면 찔러 죽였다. 위안소는 사람 잡는 도살장이었다. 저도 칼에 맞았는데 그때 왜 죽지 않았는가 한다"며 "일본에 끌려갔는데, 우리더러 위안부라고 하니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강일출 씨는 "(박유하 교수가) 말 한마디 없이 일본 제국주의 국가에 편지(나눔의 집 관계자에 따르면 '책'을 잘못 표현한 것)하고 자기 장사를 하고 이런 건 내가 절대 용납하지 못 한다. 우리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피신청인 측은 책 출간 취지를 밝혔다. 정 대표는 "박유하 교수는 한일 간 여러 문제에 대해 제언하는 책을 낸 바 있다. 이후 네 가지 주제 중 하나였던 위안부 문제가 20년 동안 풀리지 않는 현실을 분석해보고 싶다고 해서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심리에 참석하지 않은 박 교수는 가처분 신청 취지에 대한 답변서를 8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박 교수는 답변서를 통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 인식에 입각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을 둘러싼 문제론을 쓴 것일 뿐 위안부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위안부가 피해를 입는 행위와 관련하여 돈이 지출되었다는 의미에서 즉 '성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가치 중립적으로 사용한 것일 뿐, 위안부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 "'협력'이라는 단어도 식민 지배 하의 조선인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었고 위안부들에게는 특히 강요되었던 봉사를 표현한 것일 뿐"이라며 이 사건 신청을 모두 기각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심문 절차는 양측 모두 증거 보강 및 진술서 제출을 약속한 뒤 40여 분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후 법정 안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참관한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씨가 법정을 빠져나가는 정 대표에게 다가가 거칠게 항의한 것. 이용수 씨는 "당신 친일이냐. 어디서 그따위 행동을 하나. 얼마 벌었나. 왜 책을 팔아먹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이 씨는 법정 밖에서도 기자들에게 억울한 심경을 밝혔다. 이 씨는 "보시다시피 여기에 역사의 산증인이 있지 않나. 감히 친일의 족속이 아니면 어떻게 '매춘부'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느냐"며 "일본이 아직도 망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막지도 못할망정 그런 말을 지껄이고, 이건 책으로 내 돈 벌어먹자는 심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나눔의 집 관계자에 따르면, 이 씨를 비롯한 다른 위안부 피해 여성들도 고소단에 이름을 올릴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이번 소송 자문을 맡은 박선아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제 시대 피해자 유족 단체가 박 교수 전작 <화해를 위하여>에 나온 야스쿠니 신사 언급 등과 관련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은 박 교수를 비판했다. 안 소장은 "고령의 할머니들이 법정에 나오셨는데 박유하 교수는 오지 않았다. 예의가 아니"라며 "다음엔 반드시 참석해 할머니들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일본 제국주의 위안부'라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했다.
다음 심문기일은 오는 9월 1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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