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을 규제하는 법안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사교육 과열 지구 내 학원들의 선행학습은 더 심해졌다. 심지어 중학교 1학년에게 대학 과정인 ‘정수론’을 가르치는 경우까지 있다. 무리한 선행학습은 학생으로 하여금 개념 이해 대신 문제 풀이 요령을 외우는데 치우치게끔 한다는 비판이 종종 나왔었다. 또 학습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학부모의 불안감을 불쏘시개로 삼는 학원들의 선행학습 마케팅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7일 서울시 강남·송파·강서·중계 등 4곳에 있는 주요 학원 10곳의 수학·과학 선행교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 10곳에선 평균 4.0년의 선행학습이 이뤄지고 있었다. 정상적인 진도보다 평균 4년 앞당겨 가르친다는 뜻이다. 중학교 2학년에게 고교 3학년 과정을 가르치는 셈. 같은 학원들에 대한 2012년과 2013년 조사에선 이 수치가 평균 3.8년이었다.
이 단체는 올해부터 송파 청어람수학원, 대치플라즈마, 대치CMS 등 학원 3곳을 조사 대상에 추가했다. 앞서 10곳에 이들 3곳을 추가한 결과, 선행학습 정도가 평균 4.2년으로 늘어났다.
상당수 학원이 영재학교·과학고·의대 입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초등학생에게 고교 과정, 중학생에게 대학 과정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단체의 조사 결과, 강서청산학원은 지난해까지 2년 정도 선행학습을 시키다 올해부터 '7년 선행'을 시작했다. 이 학원은 중학교 1·2·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재고와 과학고반 강의에서 대학 2·3학년 과정에 해당하는 정수론을 가르친다고 홍보했다. 대치플라즈마는 초등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올림피아드 대비반을 개설했는데, 초등학생에게 고교 3학년 과정인 물리Ⅱ와 화학Ⅱ를 가르친다고 홍보했다.
선행학습의 부작용이 널리 알려진 탓에, 실제 영재고, 과학고 입시는 선행학습이 필요 없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그럼에도 학원들은 ‘영재고, 과학고 합격 이후’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선행학습을 부추긴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교육규제법)'은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해서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사교육 현장에선 법안의 존재감이 없다. 이에 대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선행교육 규제법 통과로 선행교육 실태가 호전됐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밝혔다. 이어 이 단체는 "사교육기관이 선행교육 상품을 선전·광고하지 못하도록 교육부와 교육청이 적극적인 실태 파악 및 행정 지도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이 단체는 "교육부는 영재학교, 특목고, 자사고 및 대학 입학 전형에 상급학교 교육 과정이 반영되는 것을 철저히 규제해 이에 대비한 학원 선행교육이 무의미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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