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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이 뽑는 치과, 왜?

[병원 영리 자회사가 온다 ①] 어느 치과 의사의 '기업형 사무장 병원' 탈출기

보건복지부가 지난 10일 의료법인에 주식회사를 포함한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겠다고 밝히자, 의료단체들은 "불법적인 사무장 병원이 합법화되고, 비영리병원이 영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프레시안>은 한국과 미국의 기업형 사무장 병원의 실태를 분석하는 기사를 3회 연재한다. <편집자>

치과 의사인 김호준(가명) 씨는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봉직의(병원에 고용돼 임금을 받고 일하는 의사)로 일하려고 구인광고를 봤다. 그러다 한 네트워크 치과에 취직했다. 다른 일자리보다 처우가 괜찮아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법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기 전이었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본사는 김 씨에게 치과 의사 명의를 빌려달라고 했다. 인감도장도 달라고 했다. 월급 의사일 뿐인데, 김 씨가 치과를 개설한 소유주인 것처럼 서류가 꾸며졌다. 근로계약서도 이상했다. 연봉이 성과급제인 건 그렇다고 쳐도, 비급여 진료를 할 때만 건당 인센티브를 받게 돼 있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에는 인센티브가 적용되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면서 김 씨는 자신이 '바지 원장'임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프랜차이즈 각 지점에 본부가 파견한 CEO인 '실장'(사무장)은 경영권, 인사권 등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다. 아침에 회의가 있을 때면 사무장은 "원장님들은 오실 필요 없다"고 했다. 심지어 각 지점을 총괄하는 사무장이 '치료 플랜'을 짜주기도 했다.

"무료 스케일링 미끼로 안 해도 될 치료 권유"

기업형 사무장 치과는 공격적인 광고 마케팅을 했다. '무료 스케일링'으로 환자들을 유혹했다. 무료 스케일링은 '대충대충 빨리빨리' 했고, 상담 직원들은 다른 진료를 끼워 팔았다. 간혹 환자들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상담하는 분들이 알아서 처리"했다.

흔히 '코디네이터'라고 불리는 본사 파견 직원들은 '자기 방'을 갖고 1 대 1로 환자를 관리했다. 그들이 환자 치료 상담부터 진료 보조 업무까지 했다. 의사가 내려야 할 치료 지시는 직원들이 내렸고, 환자는 수납을 마쳐야만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김 씨는 위에서 내린 계획대로 치료만 했다. 심지어 그는 치료 계획을 짜고 진료를 보조하는 본사 파견 직원들이 치위생사인지 간호조무사인지도 몰랐다. 사무장이 의사가 직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걸 경계한 탓이다.

문제는 본사 파견 직원들이 '매출'을 위해 짠 치료 계획이 때로는 의사의 양심에 어긋났다는 점이다. 그는 멀쩡한 치아를 제거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왜 이런 걸 치료 스케줄로 잡아놨지?' 싶을 때가 있어요. 도저히 문제가 되지 않으면 굳이 치아를 제거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데 (코디네이터들이) 환자한테 치아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 치료를 권유해요. '싸게 해준다'고. 환자들은 그럼 싸니까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멀쩡히 잘 쓰고 있는 치아를 빼서 앞뒤 치아를 깎아서 씌워요. 애초에 할 필요가 없는데…."

살찌는 자회사, 말라가는 모병원

과잉 진료 수익은 본사가 가져가는 매출의 일부일 뿐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따르면, 치과 지점의 경영 상황이 좋든 나쁘든 본사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본사가 지점에 각종 장비 등을 독점 공급해 수익을 빼가는 탓이다. 모회사 격인 병원은 말라가는데 자회사 격인 본사는 살찌는 구조다.

▲ 기업협 사무장 치과 구조. 우리나라 의료법상 의사가 아니면 병원을 개설, 소유, 운영할 수 없다(비영리병원, 공공병원 제외). 또 의사라고 할지라도 병원을 두 개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사무장 병원은 비의료인이 실소유주인 불법적인 병원을 뜻한다.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란, 사무장병원이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확장된 형태다. ⓒ프레시안

김 씨가 일한 치과에도 프랜차이즈 실소유주가 만든 '병원 경영 지원(MSO : 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 본부'가 있었다. 본부는 치과 기계 공급, 치료 재료 공급, 인력 공급, 광고 자회사 등을 차리고 수익을 챙겼다. 김 씨는 최근 몇 년 새 일부 기업형 사무장 치과가 급속도로 늘어난 이유를 이렇게 추측했다.

"MSO 본부에서는 어떤 명목이든 수익을 빼가요. 환자 진료 수익도 있지만 크지 않고, 재료 공급 비용, 컨설팅 비용을 빼가요. 병원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도 그래요. 지점을 늘릴수록 수익이 늘어나니 MSO 본부는 지점을 많이 세우는 전략을 취하죠."

본디 미국에서 유래한 '병원 경영 지원 회사(MSO)'는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절감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하지만 특정 경영 지원 회사가 병원을 사실상 지배하고, 독과점 공급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철신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의료괴담-주사보다 무서운 영리병원 이야기>이라는 책을 통해 "자회사가 모회사 격인 치과에 2만 원짜리 수술복을 35만 원에 팔아 이윤을 남긴 바 있다"고 지적했다. 정상적인 시장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왜 의사는 환자들의 '치료 플랜'을 짤 수 없었을까?
참다못한 김호준 씨는 '과잉 진료' 문제에 대해 얘기해 봤다. 그다음부터 그에게 배분되는 환자 수가 줄어 있었다. 배당 환자가 줄면 월급이 삭감된다. 그는 그제야 경영 방침에 어긋나는 얘기를 한 원장은 그런 식으로 퇴출 압박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무장들은 그렇게 "입맛에 맞는 원장들만 솎아냈다."

파견 직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모든 상담 직원은 성과급제를 적용받는다. 심지어 진료 실적이 부진하면 '마이너스 인센티브'를 적용받았다. 실적이 떨어진 직원들은 퇴출 압박을 받는 구조다.
그도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 "의사가 아니라 진료하는 기계, 치과 지점을 낼 명의가 필요한 곳"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는 자신을 "소모품처럼 느끼기"가 싫었다. 그만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독 환자와 상담을 많이 했던 또 다른 치과 원장은, 사무장에게 "원장님이 그렇게 상담 많이 하시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깨끗이 그만뒀다.
"기업형 사무장 치과에 단골 환자가 생길 수 있을까요?"

사표를 내고 김 씨는 자신의 치과를 개원했다. 단골 환자도 생겼다. 정직하게 진료하고, 정직하게 벌고 있다. 가끔 옛날의 악몽을 떠올리곤 한다. 왜 기업형 사무장 치과에서 유독 과잉 진료가 일어나기 쉬울까? 그는 "책임 소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의사가 어떤 동네에 자기 돈을 들여서 개원한다는 건 평생직장 개념이거든요. 자기 병원이라면 그런 과잉 진료 함부로 못 해요. 당장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오랫동안 봐야 하니, 환자한테 잘해주게 되죠.

환자들이 처음에는 (기업형 사무장 치과가) 싸다고 혹해서 진료받을 수 있는데, 거기 의사들은 '이곳에서 평생 일 안 한다'는 마음으로 애착 없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불필요한 진료로 환자들과 분쟁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병원이 오래 존속하지 못할 구조가 만들어지죠."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10일 '의료법인에 주식회사를 포함한 영리 자회사'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등은 "자법인 허용은 의료법이 금지했던 비영리병원의 영리 행위를 터주는 것이자, 불법적인 사무장 병원을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김 씨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컨설팅 명목이든, 재료 공급 비용이든 자회사가 병원 수익을 빼 가면, 아무래도 영리 행위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사무장 병원으로 적발된 의료기관이 679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류상 치과 의사가 개원한 것처럼 꾸며지기에, 내부 고발 없이 적발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불법 사무장 병원은 주로 지자체나 경찰이 적발하기에 복지부가 따로 적발하기 어렵다"며 "지난해 고발했던 몇 개 기관 외에는 추가 적발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형 사무장 병원이란? 병원 브랜드의 실소유주가 각 병원 지점에 '바지 원장'을 앉히고 비의료인인 사무장(CEO)을 파견해 지점들을 사실상 소유·지배하는 형식의 네트워크 병원을 뜻한다. 이는 '의료인만 병원을 개설할 수 있고, 의료인은 병원을 두 개 이상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의료법에 위배된다. 물론 모든 네트워크 병원이 불법은 아니다. 의사들이 독립된 병원을 차리고 브랜드를 공유하는 것은 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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