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작성 과정에서 한일 양국 정부 간 문안 조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겉으로는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담화가 사실상 양국의 '정치적 타협물'이라는 결론을 내면서 일본 내 우익세력들을 중심으로 담화를 무력화시키려는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는 20일 작성 검증 결과를 국회에 제출했다. 결과 보고서에는 한국과 담화 문안 조정 과정에서 △위안소 설치에 관한 군의 관여 △위안부 '모집' 시 군의 관여 △위안부 '모집' 시의 강제성 등 3가지가 논점이 됐다고 명시됐다.
일본 <교도통신>은 고노담화에 명시된 위안부 모집 주체와 관련, 당시 일본 정부는 처음엔 '군의 의향을 따른 업자'라고 표현했지만 이후 한국 측의 주장을 배려해 '군 당국의 요청을 받은 업자'로 수정했다는 내용이 검증 결과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에 대해 "양국 정부가 담화 문구를 수면 아래서 조정해 담화를 만든 경위가 보고서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또한 보고서에는 위안소가 '군의 요청'에 의해 설치됐다는 내용도 한국과의 조율을 거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고서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명시하라는 한국 측 의향을 바탕으로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反)하여 (모집이) 이뤄졌다"는 문구가 고노담화에 들어가게 됐다고 명시했다.
보고서에는 양국 정부가 고노담화의 문안 조정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는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고노담화의 토대가 됐던 위안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청취 내용을 사후에 확인하기 위한 조사가 없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향후 파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통신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대신이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검증이 일·한 관계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노력하고 싶다"면서 한국 측이 차분하게 받아들이도록 촉구할 의향을 밝혔다고 전했다.
또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역시 이날 오후 정례회견에서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한국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한 사전 조치에 나섰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역사 연구와 평가는 "전문가들의 손에 맡기겠다"고 덧붙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14일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밝혔고, 일본 정부의 이번 검증 역시 '작성 과정'에서의 검증이지 담화 내용 자체에 대한 검증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일본 정부가 당장 고노담화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담화의 주요 내용이 한일 간 '정치적 합작'으로 작성됐다고 검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담화를 무력화시키는 시도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일본 우익 세력들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건드리며 향후 '고노담화 작성의 무력화→위안부 동원 강제성 부정→책임 부정'의 시나리오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의 외교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작성 경위 검증 결과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외교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했다는 것은 관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위안부, 독도, 과거사 문제 등에서 첨예하게 대립해온 한일 양국의 갈등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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