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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양당제, 심판 권한 빼앗긴 유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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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양당제, 심판 권한 빼앗긴 유권자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당 ⑤ 자민당(FDP)

2001년 쾰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때였다. 독일의 현실정치에도 조금씩 관심을 가질 무렵의 어느 날, 당 대표를 선출하는 자민당의 전당대회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게 되었다. 지지자들이 '기도(Guido)'를 연호하는 환호성 속에 그가 대표로 선출되는 장면이었다.

이후 수업이 있어서 바로 학교로 갔다. 강의실에서 만난 학우들에게 따끈따끈한 '기도'의 당선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그들은 '베스터벨레(Westerwelle)'가 대표가 되었다면서 다른 이름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방금 텔레비전에서 보고 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웃으면서 그 사람 이름이 '기도 베스터벨레(Guido Westerwelle)'인데, 성(姓)인 베스터벨레를 연호하기 힘드니까 이름인 기도를 외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의 독일유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민당의 원래 이름은 '자유민주당(Freie Demokratische Partei: FDP)'으로 독일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당이며, 연방하원에 참여해 온 정당들 가운데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당이다. 1948년에 설립된 FDP는 비록 소수정당이지만 2차 대전 이후 연방정부에 가장 오랜 기간 참여하였다. 1990년대 녹색당이 연방하원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두 거대정당인 기민(CDU)/기사(CSU)당과 사민당(SPD) 모두의 연정파트너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2차례에 걸친 CDU/CSU와 SPD의 대연정 및 사민-녹색당의 적녹연정 기간 등을 제외하고는 최근까지 자민당은 40년 이상 연립정부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FDP가 2013년 9월 연방총선에서 4.8% 득표에 그쳐 18대 연방하원에서의 의석이 제로가 된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전후 18회에 걸친 총선에서 최저득표율 기준인 5%에 미달하여 연방하원 진출이 좌절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로 이전 회기인 2009년 총선에서 14.6%를 득표하여 전체 622석의 93석을 차지했던 것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참담한 결과였다.

연방하원에서 일하던 수백 명의 자민당 소속 일꾼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철수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 독일에 가서 기민당을 방문했을 때, 벵거(B. Wenger) CDU 대외협력실장은 이번 자민당의 몰락에 대해 "연방하원에서 자유주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라며 진지하게 아쉬움을 표시하였다. 상대 정당에 대한 이러한 배려는 서로 경쟁하는 정당들 사이에서 자못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자민당의 18대 총선 성적표를 살펴보면, 전체 16개 주 가운데 최소득표율 기준인 5%를 넘긴 주는 불과 6개뿐이었다. 이번 총선과 그 총선 직전의 각각의 주 선거결과를 비교해 보았을 때, 주 선거에서는 5% 이상의 득표를 하였으나 총선에서 5% 이하로 떨어진 주들이 많았다. 함부르크, 니더작센, 브란덴부르크, 작센, 튜링엔 주들이 그랬는데, 특히 구동독지역 주들에서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겨우 현상을 유지한 주들은 바덴-뷔르템베르크, 헤센,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슐레스빅-홀슈타인 주 정도이다.

한편 18대 총선 이후 최초의 전국단위 선거인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자민당은 3.4% 득표에 그쳐 의원 수가 지난 회기 12명에서 3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번 선거부터 5% 최저득표율 제도가 유럽의회선거에서는 폐지되었기 때문에 3명의 진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1979년부터 시행된 유럽의회선거는 그동안 5년을 주기로 7차례 치러졌는데, 자민당은 1984, 1994, 1999년의 3차례 선거에서는 5% 미만을 득표함으로써 진출이 좌절된 바 있다. 하지만 FDP는 아직 독일의 16개 주 가운데 9개의 주 의회에 진출해 있고, 작센(Sachsen) 주에서는 기민당과 함께 주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18대 총선에서 참패하여 연방하원 진출이 좌절된 후 자민당은 2013년 12월 6일부터 8일까지 특별전당대회를 열어 선거실패의 원인들을 분석하고 지도부를 전면 교체하였다.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 대표였던 34세의 크리스티안 린트너(Christian Lindner)가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의 시장에 대한 신뢰는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고, 시장은 그것이 작동할 수 있도록 규정들이 필요하다"며 기존 자유주의 입장에 대한 고민을 내비쳤다. 그 밖에도 정당투표만을 강조하던 과거의 선거전략과 유럽정책의 포기 등을 비판하였다.

▲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자민당 대표 ⓒ독일 자유민주당 홈페이지 갈무리 (http://www.fdp.de/)

린트너는 1979년생으로 16세에 FDP 당원이 되었다. 1996~98년에는 당내 청소년그룹인 '학생자유주의자'의 대표를, 1998년부터는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2000년 그는 21세에 최연소 주 의원이 되었고, 지역위원회 위원장, 주 지도부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연방지도부에서 활동하였는데, 2009년 연방총선에서 연방의원이 되었고, 당 사무총장직을 수행하였다. 2012년 5월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 의회 선거를 앞두고 주 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2013년 3월부터는 당 부대표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가 비록 30대 중반에 당 대표가 되었지만, 그의 다양한 당내 경력이나 오랜 활동기간은 대표직을 수행하는데 전혀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FDP는 독일 전역 16개 주에 당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2013년 말 현재 약 5만 7000명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다. 당원이 가장 많았던 때는 1981년 8만 7000명일 때와 통일 직후인 1990년으로, 당시 약 18만 명을 기록했을 때였다. 당원가입의 최저연령은 16세이고, 평균연령은 53세이며, 여성의 비율은 23%이다. 당의 상징색은 주로 노란색이며, 파란색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과거 2명의 연방대통령인 테오도어 호이스(Theodor Heuss)와 발터 셸(Walter Scheel)을 배출하였으며, 독일통일을 전후하여 당시 헬무트 콜 수상과 함께 오랫동안 외교장관으로 활약한 한스-디트리히 겐셔(Hans-Dietrich Genscher)가 여기 출신이다.

현재 자민당의 주요노선은 2012년 칼스루에(Karlsruhe)에서 개최된 제63차 전당대회 강령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1997년 비스바덴(Wiesbaden)의 제48차 전당대회의 결정을 개정한 것이다. 경제정책으로 자유주의적인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상응하는 부대조건이 마련된, 하지만 지나친 간섭에 의해 시장이 왜곡되는 것에는 반대하는 '국가적 질서정책(staatliche Ordnungspolitik)'을 요구한다. 투자환경의 개선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그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관료주의 축소, 민영화, 탈규제, 보조금 삭감, 노사 간 임금자율협상 제도의 개혁, 조세정책의 단순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국가의 과도한 권력과 보수적 또는 평등적 사회상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국가는 필요한 만큼만 권력을, 국가는 가능한 한 적은 권력을!"이라는 모토아래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가능한 한 제한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국가에 의한 모든 형태의 감시를 거부하고 있다. 가족정책에서도 동성으로 구성된 부부도 일반적인 부부와 동일한 입양이나 조세혜택을 가져야 하고, 연방차원에서 유치원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본다.

FDP는 전통적으로 기본법(헌법)을 제약하고자 하는 법들을 거부한다. 그래서 전화나 인터넷 관련 정보들의 저장에도 반대한다. 1995년 한 개인주택에 대한 도청사건은 커다란 논란을 불러왔다. 자민당은 판사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 그 사건을 문제 삼았고, 그에 대해 당원의 의견을 묻는 직접투표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약 64%의 당원들이 그 도청 가능성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그러자 그러한 결과에 대한 대응으로 당시 자민당 출신의 로이트후서-슈나렌베르거(S. Leutheusser-Schnarrenberger) 연방법무장관이 사임하였다. 1998년 연방하원이 그 관련법을 제정하였을 때, FDP의 좌파진영은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2006년 지도부는 온라인상의 수색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들은 이민 2세들에 대한 독일어 교육의 강화를 요구하며, 기존의 학교시스템에 찬성한다. 또한 연구에 지장을 주는 법이나 규정의 폐지를 주장하는데, 예를 들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을 강조한다. 원전 에너지의 사용중단에 대해 오랫동안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이를 받아들였고, 석탄, 석유, 가스,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원료들을 활용하는 에너지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군의 해외파병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보이며, 이는 최후의 수단으로 반드시 UN의 사명에 따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밖에 병역의무의 폐지, 이중국적의 장기적 허용 등을 주장하고 있다.

당내 그룹으로는 자유주의 우파와 자유주의 좌파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우파에는 보수적 자유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샤움부르크 그룹(Schaumburger Kreis)'과 스스로 전통적 자유주의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자유주의 출발(Liberaler Aufbruch)'이란 그룹이 존재한다. 좌파에는 프라이부르크 학파의 전통을 계승하는 '프라이부르크 그룹(Freiburger Kreis)'과 좌파-자유주의 시각을 대변하는 사회학자의 이름을 딴 '다렌도르프 그룹(Dahrendorf-Kreis)'이 있다.

자민당은 '앨데'(Liberale Depesche의 머릿글자를 딴 LD)라는 당 신문을 부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는데, 2012년의 경우에는 5차례 발행하였다. 그밖에 다수의 유관기관들이 존재하는데, 젊은 자유주의자(Junge Liberale: JuLis), 대학생 자유주의자 연합(Bundesverband Liberaler Hochschulgruppen: LHG), 학생 자유주의자(Liberale Schüler), 여성 자유주의자 연맹(Bundesvereinigung Liberale Frauen), 중소기업 자유주의자 연맹(Bundesvereinigung Liberaler Mittelstand), 자유주의 연구자모임(Verband Liberaler Akademiker: VLA), 자유주의 노동자(Liberale Arbeitnehmer: LAN), 자유주의 동성애자(Liberale Schwulen und Lesben: LiSL), 시니어 자유주의자(Liberale Senioren: LS) 등이 그것이다.

2000년대 초반 자민당은 베스터벨레 대표 하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2002년 연방총선에서 7.4%, 2005년에 9.8%에 이어서 2009년에 14.6%를 득표하여 그 정점을 찍었다. 2009년 10월 기민/기사당과의 연정에 참여하면서 외교, 법무, 보건, 경제, 개발 등 5개의 연방장관직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조세인하, 원전에너지, 의료보험 개혁, 사회보장제 등의 주제들에서 연정파트너들과 대립되는 입장을 취하면서 갈등을 보이게 되자, 이후 치러진 주 의회 선거들에서 점차 지지율이 감소하면서 2013년 연방총선에서는 최악의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민당의 부침을 보면서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정당을 심판하는 모습이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아무리 심판을 하고 싶어도 그것을 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선택할 정당이 달랑 2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순다수제를 선택하는 현행 선거제도에서 사표방지 심리상 거대양당을 제외한 다른 소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새정치'가 선거제도의 개혁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독일에서는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자민당과 같은 소수정당의 의회진입이 가능한 것이다. 역대선거에서 자민당 후보의 지역구 당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한 34세의 당 대표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 나이에 그러한 역량을 지닌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독일의 정당, 독일사회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상황은 실로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정치를 하고 싶어도 수많은 기존의 기득권들 때문에 정치권에 대한 진입조차도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당내 민주화의 실종, 공식 선거운동일의 제한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왜 언제나 일상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와 더불어 정치의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무나 뒤늦게 정치인으로 나서도록 또는 나서고자 한다. 이러한 관행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언론인은 언론계에서 은퇴하면 된다. 이런 것들을 바로 잡는 것이 바로 '비정상의 정상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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