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미일 3국의 '독트린'은 북한 핵 포기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주도로 6자회담을 가동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일각에서는 북한과 일본이 납치자 재조사 문제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를 6자회담 추진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10일 (사)평화통일시민연대가 '오바마 방한 이후 북한의 핵문제와 그 해법은'이라는 주제로 주최한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출구전략'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별로 없고, 한국은 그러한 미국의 전략에 보조를 맞춰주고 있다. 한미일 3국은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 달라는 이른바 '중국 역할론'만을 부르짖고 있지만 중국 역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중국의 딜레마는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 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과 북한의 핵확산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 이렇게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딜레마를 활용하고 있지만 중국은 대응하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출구를 찾기 어렵지만, 출구전략을 모색한다면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며 △포괄적인 수준에서의 동시 행동 원칙 (예를 들어 북일 간 납치자 재조사 문제에서 조사 개시 시점에 대북 제재완화를 시작하는 방식) △담대한 초기 이행조치 △장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포괄적인 협상 등을 제시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장희 교수 역시 동시 행동 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미국과 중국을 설득해 행동 대 행동, 동시 원칙으로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출구전략이 현실화되기 위해 한국의 능동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능동적으로 이끌고 있기 보다는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현 정부가 미국에 대해 너무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미국이 견지하고 있는 '단호한 원칙론'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한 것이나, 올해 4월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가 6자회담 재개 조건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고 발언했다가 미국의 유감 표명 이후 침묵한 것 등을 봤을 때 정부가 미국에 맞춘 외교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현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통령 자신이 대미의존성향을 가진 데다 육사 출신의 친미엘리트들이 외교 안보라인 핵심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 보수친미 세력이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 등을 살펴봤을 때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미국을 설득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그런데 이는 북핵 문제 해결, 나아가 한국의 이익에는 도움될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북핵이 고도화될 경우 "북·미 관계가 강경국면으로 가면서 정부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결성을 거절할 명분이 적어지고, 중국이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의 MD 참여 역시 가속화될 것"이라며 "동북아 신(新)냉전이 현실화되어도 (우리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설명했다.
가까워지는 북한과 일본···6자회담으로 이어지나
최근 가까워지고 있는 북·일 관계를 6자회담 재개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구갑우 교수는 북·일 간 납치자 재조사 합의로 시작된 관계개선 분위기를 "북핵 문제 해결의 적극적인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 교수는 "일본이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과 (납치자 재조사 문제를) 합의했다"며 "이 상태에서 양국이 교섭을 하고 있는 셈인데, 여기서 6자회담 참가 혹은 재개 이야기를 하면 일본도 무조건 거부할 수만은 없다. 북한으로부터 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북·일 간 교섭이 일본을 비롯한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을 회담장으로 불러낼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철 교수는 북·일이 '수교'라는 형식의 관계개선까지 이룰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현재 양국이 서로를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은 결코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북·일 양국은 변화하는 동북아 질서 속에 적절한 묘수를 발휘한 것"이라며 "어디까지 통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현재는 굉장히 절묘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교수는 북핵문제와 무관하게 북·일 관계개선이 진전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핵문제가 터졌을 때 아베 정부도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다만 "아베 정부도 북한과 관계를 통해 얻는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국익을 추구하려는 일본의 현재 분위기가 쉽게 바뀌지도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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