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진로의 키를 쥔 박근혜 전 대표의 최종 선택은 어디로 향할까. 박 전 대표는 "이런 식으로 하면 경선도 없다"면서 경선불참 가능성까지 시사했다가 곧바로 "(경선에 불참하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한나라당의 예상되는 진로는 박 전 대표의 경선 불참보다 더욱 어두운 쪽으로 기울어 있다.
최대 분수령은 중재안을 의결하는 상임 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다. 중재안이 최종 확정되려면 재적인원 79명인 상임전국위(15일)의 의결을 거쳐 900여 명으로 이뤄진 전국위원회(21일)에서 통과돼야 한다.
김학원 전국위 의장은 15일로 예정된 상임 전국위부터 안건상정 자체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그러나 강재섭 대표가 전국위 표결을 밀어붙이려는 의지가 강해 실제 표 대결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박 전 대표로서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안건상정과 표결 자체를 봉쇄하기엔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 79명의 상임전국위원 가운데 72명을 대상으로 '중재안 발의 찬성' 여부를 물은 <한국일보> 전화조사의 결과, 발의에 찬성하는 위원은 재적 절반에 육박하는 38명에 달했고 '반대'는 24명, '유보 또는 모름'은 10명이었다.
중재안 통과될 경우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강재섭 중재안이 전국위에서 통과되는 경우다. 이 경우 박 전 대표가 시사한 경선 불참 가능성이 유력하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 캠프의 유승민 의원도 "박 전 대표 본인이 이런 룰을 갖고 경선을 치르는 것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중재안이 통과될 경우 경선에 불참하겠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 불참 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당에 남아 후보교체론이 등장할 시기를 기다리거나 탈당해 새 살림을 차리는 것이다. 박근혜 캠프는 "탈당은 없다"고 단속했다. 그러나 재기의 기회를 엿보기가 쉽지 않고, 경선 불출마 시 현재의 조직을 유지하기조차 힘들어진다.
이로 인해 20%의 확고부동한 지지기반을 가진 대선후보가 출마조차 포기한 채 당에 주저앉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게다가 박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당을 뛰쳐나간 전력이 있다. 박 전 대표가 이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대선구도는 지극히 혼미해진다.
중재안 무산될 경우
전국위 표결이 아예 봉쇄되거나 표 대결에서 부결될 경우에도 혼란은 계속된다. 박 전 대표는 '당원들의 힘으로 원칙을 지켜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된다. 이명박 전 시장으로선 일정한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표결 저지가 아닌 표 대결에서 무산될 경우에는 표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때부터는 경선 룰 논란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김학원 전국위의장은 "이 경우 현행 경선방식대로 경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준위 합의 이전의 룰인 '6월-4만 명'의 혁신위 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8월-20만 명'이라는 강재섭 중재안 이전의 합의로 돌아갈 수도 없다. 어찌됐건 새로운 경선 룰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중재안이 불발로 끝나면 이를 제안한 강재섭 대표는 현실적으로 대표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한나라당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는 경선 룰 논의와 함께 비대위 구성, 신임 지도부를 위한 전당대회 개최라는 산을 동시에 넘어야 한다.
경선 룰을 책임질 지도부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이명박 진영의 극단적인 갈등은 물론이고 새 지도부의 중립성 문제 등이 겹쳐 양쪽이 공존하는 한나라당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10월까지 이같은 지루한 공방을 벌이다 두 사람이 끝내 각자 출마하는 쪽으로 정리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극적 합의?
이 전 시장이 양보하거나 박 전 대표가 중재안을 수용해 극적 타결을 이룰 가능성도 남아 있기는 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여론조사 반영방식에 있어 어느 한 쪽이 상대의 주장을 수용하는 경우다.
지도부도 현재로선 "양 진영의 합의가 이뤄지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합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와 캠프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격앙돼 있다. 경선불참 시사 발언이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니라는 말도 공통적이다.
게다가 중재안에 대한 본인의 발언과 '원칙'을 중시해 온 박 전 대표의 평소 스타일에 비춰보면 중재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반면 한껏 느긋해진 이 전 시장은 전날 대선출마 공식선언에 이어 11일 판문점을 방문하는 등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 캠프 소속의 한 초선의원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우리가 왜 퇴로를 열어줘야 하느냐. 지금은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과 박근혜 전 대표의 싸움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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