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가 열린 4일, 한국방송공사(KBS)가 총파업 일주일째를 맞았다. 양대 노조가 선거 방송에 최소 인력을 배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투입된 아나운서 조합원들은 '공정 방송' 뱃지를 달고 방송에 임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선거 중계 방송 진행을 맡은 홍기섭 취재주간은 이날 방송을 끝으로 보직을 내려놓기로 해 주목받고 있다. 임명 3주 만의 전격 사퇴다.
홍 취재주간은 이날 오후 4시 경, KBS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구사대'에 동참하지 않은 보직자들에 대해 지방으로 인사 발령을 내린 사측에 항의하고,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저도 이제 보직을 내려놓으려 합니다"라고 운을 뗀 그는 "격동의 87년이라고 하죠. 27년 전인가요. 수습 꼬리를 채 떼기도 전에 14기 동기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외치며 농성하고 대자보를 써 붙인 일로 모두가 지방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도 여기자 2명은 제외됐는데 이번에 동료 김혜례 부장이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로 발령이 났다"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폭거"라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어느 세력 편에도 선 적이 없는 중간인, 회색인으로 살아왔다"던 그는 길 사장을 향해 "후배들도 저와 다르지 않다. 좌파 노조, 기자 직종 이기주의란 말은 거둬달라"고 말했다.
임창건 전 보도본부장에 이어 이세강 전 보도본부장이 지난 2일 사퇴 선언한 사실을 들며, "두 번째 본부장마저 잡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자리를 지킬 수 있겠느냐"며 보직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길 사장에게 "무언가를 꼭 쥔 두 손으로는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다"며 "용단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밝혔다.
다음은 홍기섭 취재주간이 4일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글 전문.
저도 이제 보직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임명된 게 지난 5월 13일이니 딱 3주가 지났군요.격동의 87년이라고 하죠. 27년 전인가요. 수습 꼬리를 채 떼기도 전에 14기 동기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외치며 농성하고 대자보를 써 붙인 일로 모두가 지방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지요. 그때도 여기자 2명은 제외됐는데 이번에 동료 김혜례 부장이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로 발령이 났습니다. 어느 총국장은 업무복귀 호소문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임 5개월도 안 돼 보직을 박탈당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폭거입니다.사장님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나 어느 세력편에도 선 적이 없는 중간인, 회색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오직 당당하고 떳떳한 보도만을 꿈꿔온 기자일뿐입니다.후배들도 저와 다르지 않습니다. 좌파노조나 기자 직종 이기주의란 말은 거두어주십시오. 협회나 노조가 정치세력화 한다니요.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그렇게 규정하면 사장님 편에 설 사람이 밖에서 몇 명 늘어날지 모르지만 스스로 KBS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기자들을 모욕하는 위험한 발언입니다.이제 홀가분해졌습니다. 보도본부 국장단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후배동료의 지방발령인사가 취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설자리도 할 일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본부장마저 붙잡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너무 염치없는 짓이지요.후배 부장, 팀장들을 무책임하다고 질타했던 제가 그들 편에 서는 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자리에 연연해서가 아닙니다. 9시 뉴스만은 지켜야 한다고 했던 제가 그 사명감을 잠시 내려놓는 건 더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후배 여러분께 한 마디 드립니다. 개표방송은 선거기획단장과 보도본부장이 급히 요청해 받아들였지만 차마 번복할 수 없었던 점 양해바랍니다. 개표방송은 공영방송의 중요한 책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개표방송을 마지막으로 보직사퇴하려 한 저의 뜻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사장님, 국민의 방송 KBS를 지켜주십시오. 무언가를 꼭 쥔 두 손으로는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습니다. KBS 정상화라는 더 절박한 것을 갖고 싶다면 먼저 손에 쥔 것을 놓아야 합니다. 사장님의 용단을 간절히 기다립니다.보도국 취재주간 홍기섭20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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