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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김부겸 '지못미'…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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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바보' 김부겸 '지못미'…도전은 계속된다

'박근혜의 영토' 대구서 역대 야권 최고 지지율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의 석패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 후보는 5일 오전 1시 기준으로 38%를 조금 넘기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가 도입된 첫해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적이 있기는 했지만, 야당을 전면에 내걸고 대구 시장 선거에서 이처럼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기 지금은 대구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다.

당선이 확실시 된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보다 김부겸 후보가 더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보' 김부겸은, 아직은 부족하지만 대구시장 선거 득표율을 기반으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김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내고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내거는 등, '대구 민심' 잡기에 열을 쏟았다.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에 대해서는 "동서 화합, 민주화 세력과의 화합 차원에서 김대중컨벤션센터와 교류를 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건립 공약을 낸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여당 대통령에 야당 대구시장이면 대박"이라는 구호를 내걸어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민심 속으로 조심스레 발을 담갔다.

▲새정치연합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연합뉴스

김 후보는 1958년 경북 상주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TK의 상징인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486세대보다는 앞서고, 민청학련 세대보다는 뒤인 '낀 세대'다. 유신 반대 시위와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여했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구속되기도 했다.

1988년 민청학련세대가 주축이 됐던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인문했고, 일생을 빈민 운동에 투신했던 제정구 전 의원 등과 진보적 대중 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91년 '꼬마민주당'에 입당,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1995년 새정치민주회의의 분당 사대 당시 민주당에 남아 노무현 전 대통령, 제정구 전 의원, 이철 전 의원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만들어 활동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밀려났던 시절에 그들과 함께한 셈이다.

그러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민주당 조순 총재와 손을 잡으면서 그의 '정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그는 정치적 스승인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하게 된다. 정치적 파고에 휩쓸려 민주당과 잠시 결별하게 된 것이다. 김 후보는 2000년 군포에 출마한 후 3선 의원을 지냈다. 국가보안법 폐지 등 한나라당 의원으로 금기시되는 소신을 펼쳤던 김 후보는 대북송금특검에 반대표를 던진 후 김영춘 전 부산시장 후보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한다. 이른바 '독수리 5형제' 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통추'에서 활동했던 김 후보의 이력을 보면 그리 낮선 장면은 아니었지만, 그는 '한나라당' 이력 때문에 야권에서 '왕따 취급'을 감내해야 했다.

김 후보는 2012년 총선 때, 자신의 수도권 지역구를 포기하고 홀연히 대구로 내려갔다. 당시에도 '파격'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성구에서 새누리당 실세였던 이한구 전 원내대표와 맞붙었고, 40.4%의 득표율을 얻어 저력을 보여줬다. "야당세가 그나마 강한 지역을 선택하라"는 주변의 조언을 뿌리치고, '정면 승부'를 위해 더욱 불리한 지역구에 둥지를 튼 결과였다.

김 후보는 포기하지 않고, "지역구도를 깨겠다"며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비록 패배했지만, 김 후보는 대구시장 선거에서 거둔 쾌거를 바탕으로 2016년 대구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김 후보에게 "대구에서 도망가지 말고 계시라. 대구의 복이다. 대선 승리 이후 정치가 많이 바뀔 것이란 예감이 든다. 한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덕담을 던진 적도 있다.

김 후보는자서전 <나는 민주당이다>에서 자신의 정치 철학과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80년대 양김 분열 이후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근원적 균열이자 망국적인 병폐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나같은 경계인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며 장벽이었다. TK 출신이 민주당 정치를 한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주의라는 악연을 끊기 위해 몸부림쳐 온 것이 나의 정치 역정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지역주의와의 투쟁사는 나의 개인사이기도 하거니와 대한민국 민주당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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