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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떡 독살설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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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떡 독살설의 진실은…

[낮은 한의학] 명종의 건강학 ②

조선 왕의 건강을 살펴보는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의 '낮은 한의학' 연재가 매주 수요일 계속됩니다.

이상곤 원장이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당시 왕들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산해진미를 섭취하였지만 격무와 스트레스, 만성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왜 왕처럼 살면 죽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현대인의 바람직한 건강 관리법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인종과 명종입니다. 각각 조선 제12대, 제13대 왕이었던 인종과 명종 재위 시절의 실제적인 조선의 통치자는 왕의 어머니였던 문정왕후 윤 씨였습니다. 윤 씨는 1545년 고작 7개월 만에 목숨을 잃은 인종을 대신해 친아들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시작해 1565년 세상을 뜰 때까지 사실상 20년간 조선의 여제였습니다.

이 기간은 흔히 조선의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암흑기로 꼽히는 기간이죠. 그러니 당연히 인종과 명종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서는 문정왕후와 이들의 관계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은 인종과 명종의 건강까지 좌지우지한 문정왕후에 초점을 맞춥니다. <편집자>

인종이 마지막으로 언급한 인물은…

인종의 재위 기간은 8개월이다. 인종 1년 윤(閏)1월 1일부터 약방 제조와 의원들은 계속해 진찰을 받고 약을 쓸 것을 왕에게 건의하지만 거절당한다. 신하들은 세종의 경우처럼 고기반찬을 먹을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인종은 1월 29일 이런 신하들의 요청에 이렇게 반문했다. 실록이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기록할 만하다.

"나도 아들인데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어디에다 나의 마음을 나타낼 수 있느냐."

인종 1년 6월 25일 이질(설사) 증세가 시작되면서 왕의 증세가 급격하게 나빠진다.

"상의 증세는 대개 더위에 상한 데다 정신을 써서 심열(心熱)하는 증세로 매우 지치셨는데, 약을 물리치는 것이 너무 심하여 광증을 일으키실 듯합니다."

이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인종은 7월 1일 세상을 떠난다. 하루 전에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죽은 조광조를 언급한 것이 특별히 눈에 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비원을 윤임에게 이렇게 털어 놓는다.

"조광조를 복직시키고 현량과를 부용(復用)하는 일은 내가 늘 마음속으로 잊지 않았으나 미처 용기 있게 결단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평생의 큰 유한이 없지 않다."

야사는 문정왕후가 인종에게 떡을 주어 독살했다고 전한다. 6월 18일의 기록은 이렇다.

"상이 경사전에 나아가 주다례를 지내고 자전(慈殿)에게 문안하였다. 자전이 수가(隨駕)한 시종, 제장에게 술을 먹이고, 또 시종에게 호초를 넣은 흰 주머니를 내렸다."

같은 날 실록은 야사의 추측에 힘을 보태는 기록을 남겼다.

"인종이 이날 이후 원기가 끊어지고 병세가 심해져 다시는 제사를 지내지 못했다."

문정왕후가 과연 떡으로 인종을 독살했는지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문정왕후가 독살을 하려 하지 않았더라도, 인종의 심신의 건강 상태가 오래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음은 틀림없다. 아무튼 인종이 이렇게 세상을 뜨면서, 문정왕후는 자신의 친아들을 왕으로 올리는데 그가 바로 명종이다.

조선의 '마마보이' 명종

▲ 드라마 <여인천하>의 문정왕후(전인화). ⓒSBS
명종 20년 4월 6일 문정왕후는 자신의 운명할 날이 다가오자 명종의 체력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유언을 남긴다. 아마도 인종의 전례를 염두에 둔 것이었으리라.

"주상은 원기가 본래 충실하지 못하여 오래도록 소선(고기나 생선이 들어 있지 않은 반찬)을 들 수 없으니, 모든 상례(喪禮)는 모름지기 보양하는 것을 선무로 삼아 졸곡까지 기다리지 말고 모든 방법을 써서 조보하는 것이 곧 나의 소망이오."

실제로 명종은 죽기 직전까지 문정왕후가 걱정할 정도로 허약했다. 명종은 즉위 직전에도 역질(疫疾)을 앓았다. '면역'이란 단어의 '역'이 역질의 그것임을 감안하면 현대적으로 볼 때 면역력이 약했던 것이다.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잘 걸리는 감기는 명종의 질병 중 단골 메뉴였다.

명종 8년 환절기에 바람을 쐬어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나른하다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12년 10월 27일 날씨가 따뜻하지 못해 감기를 오래 앓고 있다면서 궁전 처마 밑에 털로 장막을 쳐서 임금을 추위로부터 보호했다고 할 정도였다.

13년 11월과 14년 1월에도 각각 기침과 어지러움, 감기 증세로 진료를 받는다. 감기에 잘 걸리고 추위를 잘 탄다면 이는 몸속의 보일러인 신장의 양기가 약하다는 신호다. 양기가 약하다는 건 스태미나가 약하다는 의미다. 신장은 차가운 쪽과 뜨거운 쪽 양면이 있다.

차가운 쪽이 물을 상징하는 신수(腎水)라면 신장의 뜨거운 부분인 명문(命門)은 흔히 단전(丹田)과 맥락을 같이한다. 현대 의학의 부신(副腎)이라고 할 수 있는 명문은 비유하자면 생명의 문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내뿜는 일종의 인체의 보일러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체력이 약했던 탓인지 '마마보이' 명종은 엄마 문정왕후의 극성스러운 보호를 받는다.

"주상께서 큰 역질을 겪으신 지 오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기가 허약하여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한다. 학문과 양기가 모두 중요하나 내 생각으로는 기운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실록의 사관은 문정왕후의 이런 지적을 대놓고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과연 기운을 보양하는 것이 학문보다 중요한지 모르겠다"라고 딴죽을 걸었다. 그러나 성리학자 이언적은 의외로 문정왕후의 지적에 힘을 보탠다.

"어제 전교를 들으니 '주상께서는 춘추가 어리신 데다 금년에 또 역질을 앓으셔서 기체가 충실하지 못하니, 학문이 진실로 힘써야 하는 것이지만 신기(身氣)를 보양하는 일 또한 큰일이다. 곡림과 경연은 위에서 헤아려서 조처하겠다' 하셨는데 상교가 지당하십니다."

이언적은 혈기가 안정되지 않을 때 색(여자)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명종의 건강과 스태미나를 최우선 국정 과제로 꼽는다. 당대의 성리학자까지 걱정할 정도로 명종이 약골이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당연히 이언적은 먼저 세상을 뜬 인종의 예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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