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도 (국정 조사)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지 않나. 박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밝혀야 한다. 이런 당연한 요구를 하는데 유가족들이 국회 앞에서 삼일이나 밤을 새워야 하나."
5월 31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추모 촛불 집회가 열린 서울 청계광장은 2만여(주최 측 추산) 시민들의 분노로 들끓었다.
시민들의 분노가 향한 곳은 정치권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역 없는 진상 조사'를 약속했음에도, 여야는 국정 조사 합의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희생자 가족들은 57시간 동안 국회에 머물며 여야의 지루한 협상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 관련 기사 : "새누리 "국회 관행이…" 세월호 유족들에 '혼쭐'", "세월호 유족들 "침몰하는 국회"…김기춘 때문?", "새누리당, 세월호 국정조사 협상 중단 선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 1000만인 서명' 용지를 받으러 무대 위에 올라선 희생자 고(故) 오경미 학생의 아버지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국회에서 여야가 싸우는 것을 보고 유족은 답답하기만 했다. 다행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정치권이 진정으로 특별법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도 "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에 여야가 따로 있어선 안 된다고 했는데 여야는 전혀 합의하지 못했다"며 "정치인이 왜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아먹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2박 3일간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이 차디찬 (국회) 바닥에서 진도에서처럼 주무셨고 화장실에서 씻어야 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윤희숙 한국청년연대 대표는 '성역 없는 조사'를 촉구했다. 여야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증인 채택 문제를 두고 다툰 것과 관련, 윤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도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박 대통령이 눈물 흘리고 사과한들 진상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는 예견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발생한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의 희생자 유가족들도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침몰하는 국가를 바로 세우고 썩은 관행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촛불을 들어야 한다"며 철저한 진상 조사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 관련 기사 : "대한민국이 죽인 내 자식…박근혜도 조사하라")
"살아서 보자"… 마지막 문자 메시지에 시민들 '오열'
정치권에 대한 분노의 외침이 잦아들자, 이번엔 슬픔이 몰려들었다.
"이상하게 멀리 갈 때는 꼭 엄마랑 싸우고 나오더라. 웃으면서 꼭 안아주고 나올 걸. 울지 말아요. 엄마가 자꾸 우니까 내 몸이 마르지 않잖아."
가수 이수진 씨가 동요 '섬 집 아기'를 부르고 배우 최민아 씨가 이번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등학교 학생으로 분해 연기하자, 시민들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렸다.
이어 희생자들의 '마지막 문자 메시지'가 소개됐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놓는다. 사랑해', '언니가 말이야. 기념품 못 사올 것 같아. 미안해', '애들아 살아서 보자. 전부 사랑합니다. 살아서 만나자'
무대 전광판에 문자 메시지가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다 시민들이 흐느끼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시민들은 쉴 새 없이 눈물을 닦으며 "사랑한다 애들아", "잊지 않을게 얘들아"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열흘째 '16'에 멈춰 있는 실종자 수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한편, 5월 30일 구조 작업 중 숨진 잠수사 고(故) 이민석 씨를 추모했다. 이 씨의 안타까운 사고로, 세월호 유가족들은 당초 이날로 예정됐던 진상 규명 천만 서명 운동을 취소했다. 서울 청계광장 집회에도 유가족 다수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일부만이 참석했다. 오 양의 아버지는 "먼저 이민석 잠수사의 명복을 빈다"며 "유가족들은 잠수사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대책회의 측은 오는 8일 유족들과 함께하는 '천만 서명 운동' 행사를 예고한 뒤 청계광장 일대 행진을 시작했다.
경찰, 5명 또 다시 연행… 만민공동회, '6.10 청와대 투쟁' 예고
촛불 행렬은 오후 7시 30분에 시작됐다. 청계광장을 떠난 시민들은 종로, 을지로 등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행진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거리를 돌며 "성역 없이 조사하라", "박근혜도 조사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민들이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면서,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 추모 침묵 행진 모임인 '가만히 있으라' 참가자 50여 명은 청계광장 인근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세월호 참사 박근혜 퇴진 청와대 만민공동회' 참가자 30여 명은 KT 광화문지사 앞부터 수천 명의 경찰과 마주했다.
경찰들이 인도를 막아서자 행진 참가자들이 항의하며 행진을 시도했고, 이에 경찰 측은 여자 경찰들을 앞세웠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방송을 통해 "시위대와 여경들의 신체 접촉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가만히 있으라' 행진을 주도한 대학생 용혜인 씨는 "18일 경찰들이 여성 참가자들을 잡아가며 성추행하지 않았느냐"며 "도대체 이 나라 공권력은 왜 이렇게 제멋대로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경찰이 수차례 행진 참가자들에 대해 연행을 시도하자 용 씨는 "5월 한 달만 연행자가 300명에 이른다"며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고 조용히 행진한 시민들을 왜 잡아가느냐"고 항의했다.
오후 9시 30분경 각 행진 대오가 광화문 네거리로 모이자, 경찰은 겹겹이 '인간벽'을 세우고 참가자들을 포위했다. 광화문 네거리 일대가 경찰로 가득 찼다.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벽'을 뚫자, 경찰들은 즉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몸싸움이 벌어지며 부상자도 속출했다. 골절상을 당해 응급차에 실려 간 참가자도 있는가 하면, 한 여성 참가자가 실신하는 일도 있었다. 경찰 일부도 격한 통증을 호소해 응급 치료를 받았다.
행진 대오가 흩어지고 부상자가 속출하자, 오후 10시 10분경 '청와대 행진' 한 축인 만민공동회는 '6.10 청와대 투쟁'을 결의하며 공식 해산했다.
이날 경찰은 도로 점거 등을 이유로 총 5명을 연행했다고 종로경찰서 한상훈 수사과장이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밝혔다.
* 이날 촛불 행동에 참여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들이 취재를 도왔습니다.
* 시시각각 집회 상황은 프레시안 페이스북 페이지와 트위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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