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의 원칙을 밝힌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하 <권리선언>) 하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권리선언>은 근대세계가 만들어낸 문건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근대 사회 및 국가의 원리를 단 17개조로 그야말로 압축적으로 밝혔다.
그런데 프랑스혁명기(1789-1799)에 나온 <권리선언>은 공식적인 판본만으로도 모두 4종류가 있다. 사실 <권리선언>은 헌법의 전문(前文)으로 작성되었는데, 그렇다면 이는 혁명기에 헌법이 모두 4종류가 있었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1793년의 헌법'이 작성되는 과정에서 의회의 주도권이 지롱드파에서 산악파로 옮겨가는 정국(政局)의 변화가 파리 민중의 개입으로 벌어졌고, 그 결과 '1793년의 헌법'은 '지롱드파의 <권리선언>'과 '산악파의 <권리선언>'이라는 2개의 <권리선언>을 전문으로 가졌다. 그러니까 그 유명한 1789년의 <권리선언>은 '1791년의 헌법'의 전문이고, 혁명력 3년의 <권리선언>은 같은 해의 '1795년의 헌법'의 전문이다.
헌법과 <권리선언>은 프랑스혁명의 변화를 일정하게 반영했다. 예컨대 '1791년의 헌법'은 입헌군주제를, '1793년의 헌법'은 민중혁명의 성과를 반영하여 민주공화국을, '1795년의 헌법'은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반영하여 보수적인 자유공화국을 설정하였고, 여러 <권리선언>들은 그 정신을 표현하였다. 1789년의 <권리선언>은 혁명을 주도했던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를 대변했지만 보편주의의 원칙을 지녀 기본적으로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개방성을 지녔고, 1793년의 <권리선언>들은 민중혁명의 대의에 입각하여 평등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지롱드파와 산악파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1795년의 <권리선언>은 혁명의 보수화에 발맞추어 권리만이 아니라 지켜야 할 의무도 포함하여 실제로는 <권리 및 의무선언>이 되었다. 이 네 <권리선언>은 이러한 내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모든 정치공동체의 목적이 인간의 기본권(당시의 용어로는 '자연권')을 보호하는데 있음을 천명하여 인권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분수령을 이루었다.
여기서 먼 나라의 옛 얘기를 길게 논의할 계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미 2세기도 넘은 옛적에 프랑스인들이 제기한 혁명과 인권의 문제는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지니며, 특히 세월호 참사에 즈음하여 자기반성을 위한 성찰거리를 제공해준다.
먼저 지적할 것은 위의 <권리선언>들이 공통적으로 자유, 소유권, 안전, 압제에 대한 저항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이 기본권들이 우리들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하나뿐인 목숨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면서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들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근대적 주체인 개인들의 생명권이야말로 인권의 요체인 것이다. 자유란 자존(自存)의 토대이며, 소유권은 자존의 수단이다. 자존이 위협받을 때, 저항권은 각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특히 우리의 주목을 받는 것은 안전이 가장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전은 시민의 인신, 소유권,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 사회가 각 시민에게 제공하는 보호에 있다.”(지롱드파의 <권리선언> 제9조) 그리고 이러한 기본권을 보존하기 위하여 정부가 존재하며, 모든 정치적 결합의 목적은 바로 이를 위한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군대와 관료제를 유지하고 세금을 징수한다. '국가'란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것의 총합(總合)이니, 정부는 이를 대표하고 관리한다. 이렇듯 <권리선언>은, 그리고 헌법은 기본적 인권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공통의 권력'의 원리를 밝힌다. 따라서 '헌법'(Constitution)은 질서 유지를 위한 '법'의 일종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나라의 몸체이다. 국가의 대강(大綱)이자 명분인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떠오른다. 국가를 대변하고 국민주권에 입각해 있다는 정부가 우리들 각자의 권리를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우리는 '국가폭력'이 그 어떤 폭력보다도 더 참혹할 수 있음을 20세기의 역사를 통해 목격하지 않았던가? <권리선언>은 일견 이에 대해 단호하다. 온갖 종류의 압제에 대한 저항권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거니와 더 구체적으로 “정부가 인민의 권리를 침해할 때, 봉기는 인민과 인민의 각 부분에게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가장 불가결한 의무이다”(산악파의 <권리선언> 제35조)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같은 <권리선언>은 제10조에서 “법의 권한으로 소환되거나 체포된 모든 시민은 즉시 이에 복종해야 한다. 저항하는 사람은 범죄자가 된다.” 과연 기존의 법체계를 거스르지 않고 저항하고 봉기를 일으킬 수 있는가? 기실 이에 대해 <권리선언>은 아무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저항권이나 봉기권은 기왕의 혁명을 정당화한 것에 불과하고 <권리선언>은 새로운 근대권력의 호교론(護敎論)에 그친 것인가?
더욱이 <권리선언>은 더 나아가 근대사회의 원리, 곧 자본주의의 존재근거를 제시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용역(서비스)과 시간을 고용 대상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팔 수도, 판매의 대상이 되게 할 수도 없다. 그의 인신은 양도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법은 하인의 신분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노동하는 사람과 그를 고용하는 사람사이에는 배려와 감사의 계약만이 존재할 수 있다.”(산악파의 <권리선언> 제18조) 이렇듯 흥미롭게도 기본권의 설정과 공통 권력의 설립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는 <권리선언>에 '자유로운 임금노동'의 문제가 마치 소나무 줄기의 송진처럼 박혀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자유의 진정성(眞正性)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사회는 각자가 자신의 육체의 주인이면서도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파는 것을 가능하게 했는데, 그는 과연 자신의 노동을 타인에게 팔면서도 자유롭다고 느끼는가? 쉽게 말해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방편이 없어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는 그러면서도 고용주의 의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존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 이제 우리 문제로 돌아오자. 세월호의 침몰과 참사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우리 사회 및 국가의 존재방식의 문제를 제기한다. 안전이란 개인적인 차원에서 스스로 지켜야 하는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그 자체로 보장해 주어야 할 기본권이다. 국가권력의 대행자인 정부가 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곧 기본권의 침해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그 안전은 단지 신체의 보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의 자유를 실체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용역을 파는 이가 피고용인이 되어 결국 특정인이나 특정집단, 더 나아가 자본의 '머슴'에 불과하게 된다면, 아무리 많은 봉급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자유는 허구에 불과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신체적 안전은 사회적 안전을 요청하며, '복지'는 이를 보장해주는 구체적인 방책이다. 그리고 각자가 자기결정권의 진정한 주체로 설 때만이 안전도 확실하게 보장받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정작 그 국민을 직접 만날 때면 4겹의 경호원을 거느리고, 우리 모두의 공통의 것을 관리해야 할 정부가 특정집단의 특정 이익만을 대변하고 공공성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점에서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를 구분한 <권리선언>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민의 권리란 곧 '권력의 형성에 참여하는 권리'로서, 국가권력이나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뜻한다. 그러니까 시민의 권리를 올바로 행사할 때만이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세월호 참사는 이번 6월 4일의 지방선거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권을 심판할 것을 요청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안으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스스로 자기결정권의 주체로 우뚝 설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 사회와 특히 우리 국가권력과 정권 그리고 정부에게 '위로부터의 혁명'에 준하는 근본적인 혁신을 강제한다. 현재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지렛대는 주권자로서 행사하는 선거권이다. 우리 모두 투표권을 탄환 삼아 '밑으로부터의 혁명'의 밑천을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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