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북한 인권 현장 사무소를 한국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자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북한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현장 사무소 설치를 두고 현재 남북관계에 가져올 득실을 꼼꼼히 따져본 뒤에 좀 더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는 29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루퍼트 콜빌 대변인이 "한국 정부가 사무소를 한국에 설치해달라는 제안을 수락했다"며 "한국은 북한인권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민사회와 피해자 단체들에게 중요한 장소"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리적 인접성, 언어, 인권 피해자 및 증인에 대한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이 가장 효율적인 장소라는 결론을 내고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OHCHR)가 4월 16일 우리 측에 현장사무소 설치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며 사무소 설치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측에서 다른 회원국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한국이 가장 적합하고 대부분의 나라들도 지지하고 동의한다는 입장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후 지난 28일 필레이 대표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북한인권현장사무소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북한 인권보고서에 따라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난 3월 채택한 결의안에 포함된 권고안이다. 북한 인권보고서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북한은 지난 4월 21일 사무소 설치에 대해 "우리의 존엄과 체제를 직접 겨냥한 극악한 도발"이라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이 당국자는 "유엔이 한국에 북한 인권 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이다. 유치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월드컵, 올림픽 경기처럼 경쟁에서 유치하는 것이 아니다. 유엔이 인권이사회 결의에 따라 가장 적합한 장소를 물색한 것이고, 그 장소를 한국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당국자는 "우리 입장은 일관된 것이다. 유엔의 요청과 관련국들의 동의가 있을 경우 적극 검토한다는 것"이라고 밝혀 정부가 사무소 설치에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음은 숨기지 않았다.
실제 지난 4월 10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여의도연구원 심포지엄에 참석해 "유치 못 할 이유는 없다. 다만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와 관련 국가에 한국 유치를 찬성하는 분위기로 나가면서 이뤄지는 게 좋다"고 밝혀 사실상 사무소 설치를 희망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현장 사무소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효용은 적은 반면 북한과 관계는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단법인 평화협력원 황재옥 부원장은 "현장 사무소의 역할과 위상을 고려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득실을 따져보고 설치를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무소 설치로 남한이 북한 인권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지 못하는 형국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무소 설치 시점이나 장소에 대해 "우리는 협조하는 것이고 모든 주도권은 유엔에서 가진다"고 밝혔다. 사무소 운영 예산 역시 100% 유엔에서 충당될 예정이다. 따라서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이탈주민과 사무소를 연결해주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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