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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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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할 텐가?

[민교협의 정치시평] 아이들 헛배 불린 나쁜 교육은 이제 그만

잔인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봄이 다 지나가 버렸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제야 출퇴근길에 주변을 살펴보니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사방에서 그윽하다. 들판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어릴 적 나에게 아카시아 꽃은 배고픔의 이미지였다. 아카시아 꽃은 꼭 튀밥처럼 생긴 것이 한 송이를 따서 먹으면, 배고픔이 가시지는 않지만 튀밥 한 움큼을 입에 넣어 먹는 것처럼 즐거웠다. 그러다 언제 저 모내기 들판이 황금물결로 변하나 하고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계절은 잔혹한 겨울을 겪고, 성급한 희망에 들떠 헛배만 불린 봄을 지나, 이제는 내실 있는 열매를 맺기 위해 모든 것이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초여름에 접어들고 있다. 

바야흐로 지방자치단체 장, 의원 및 교육감을 선출하는 선거철이다. 다들 이제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변화를 모색할 시기라고 한다. 새마을운동의 어법으로 말하면 개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계절에 비유하면 모든 것을 갈아엎고, 다시 씨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 시기라는 뜻일 것이다. 스러져간 꽃 사태를 겪으며 무참했던 어른의 한 사람으로, 교육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지금 필요한 교육감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문득 계절에 빗대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이제 더 이상 헛배 부르지 않게 할 사람이다. 대한민국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공부한다. 2010년 통계청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초등학생 평일 7시간 49분, 중학생 9시간 4분, 고등학생 10시간 47분을 공부한다. 그리고 가장 적게 잠잔다. 수면시간은 201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발표 자료에 의하면 초등학생 8시간 19분, 중학생 7시간 12분, 고등학생은 평균 5시간 27분으로, 중고등학생이 되면 겨우 하루 평균 6시간 내외로 잔다. 밥은 하루 두 끼 먹고 식사시간은 10분 내외이며, 그나마 저녁은 보통 8~9시에 학원 근처에서 패스트푸드로 때우는 형편이다. 

어른들이 국민소득 2만 6천 달러, 선진국 순위 12위 라며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을 때 ‘애들’은 여전히 잠 좀 자고 밥 좀 먹자고 아우성 치고 있다. 그래도 학업성취도 순위 세계 1~2위라며, 이 수준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지 않지 않느냐고 아우성을 못 들은 체한다.

졸리고 배고픈 애들에게 화려한 수치의 성적표 내세우며 헛배 부르게 하는 교육은 이제 제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사랑한다며, 행복교육을 운운하며, 학부모의 근심을 해결하겠다는 화려한 말로 아이들의 생존 절규보다 어른들의 근심을 더 걱정하며, 어른들의 표에 더 관심 있는 사람이 교육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른들보다 ‘애들’에게 먼저 작은 것이나마 삶아갈 맛을 보여줄 교육감이어야 한다.

둘째 쟁기질하고 호미질 할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야말로 갈아엎고 다시 가꾸어야 할 때이다. 수확을 기뻐하며 가을걷이할 할 때가 아니다. 알맹이 없는 텅 빈 결실에 더 이상 눈이 어두워서는 안 된다. 열매의 달콤함에 젖어 본 사람은 수확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여기저기 다니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결실을 따먹고 주머니를 채워본 사람이 절실한 때가 아니다. 벌판에서 스스로의 몸과 손으로 하나하나 일구고 싹을 틔우고 가꾸어 본 사람이 필요하다. 교육자치의 걸음마 단계에서 중앙에서 나누어주는 열매를 받아먹을 사람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제 손으로 밭을 갈고 일구어 뿌리내리도록 할 교육감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 ‘애들’이 부모 그늘 밖에서도 자라나갈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다.  

셋째 열심히 바쁘게 정신없이 모든 것을 다하고 있으니, 가만히 있다 결실을 맛보라는 식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안 된다. 내가 전문가이고, 내가 옳고,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해줄테니 가만히 있으면 된다면서, 열심히 바쁘게 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성과를 마치 선물처럼 던져주려는 사람이 교육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숨가쁘게 열심히 뛰어왔고, 전력을 다해 교육해왔지만, 결국 “애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나쁜 교육을 해왔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단지 열심히 하는 것, 수치로 드러나는 성과를 잘 올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다시 판단하고 결행해야 할 때이다. 이제 나쁜 교육을 계속할 것이냐, 좋은 교육을 모색하고 일구어 나갈 것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무엇보다 이념과 철학이 빈곤한 교육감은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교육감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부탁 하나 하고자 한다. 학생, 아동청소년의 현재 생활과 미래의 삶을 좌우하는 정책을 만들고 실행할 지역의 교육 수장을 뽑는다는데도, 학생, 아동청소년은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하는 현실부터 고쳤으면 한다. 그래야 ‘애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며 제 길을 찾아갈 것이다. 당장 제도적으로 하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어른으로서 먼저 묻고 경청하자. ‘애들’은 무엇을 먼저 해결했으면 하는지, 어떤 공약을 더 선호하는지, 어떤 후보를 더 지지하는지 물어보자.

헌화하고 묵념하는 조문조차 어른들이 만든 공간에서 줄 맞추어 서서 구령에 맞추어 해야 했던 ‘애들’이 학교 앞 나무에 리본을 달고 거리에 편지를 붙이며 답답함과 슬픔을 달래고 있다. 앞으로도 ‘가만히 있게 할’ 교육을 계속할 것인가? 그런 교육을 잘 할 사람을 교육감으로 뽑고, 어른들이 만든 공간 밖으로 나가는 ‘애들’을 문제아로 몰아붙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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