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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눈물의 대국민담화'는 쇼크 독트린?

[편집국에서]'조직개편 쇼' 같은 세월호 참사 대책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34일째가 지나서야 국민을 향해 '사과다운 사과'를 처음으로 직접 했다. 눈물까지 흘렸다.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 정도면 '만시지탄'이라지만, 최고지도자로서 진정성이 있는 사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대책이다. 대책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면, 사과의 진정성도 덩달아 의심받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밝힌 대책으로 가장 주목받는 것은 '해경 해체'다. 그뿐이 아니다. 안전행정부 해체, 해양수산부 해체 등 정부조직개편이 대책의 핵심이다.

세월호 참사 같은 전대미문의 비극적 사건이 벌어졌고, 일각에서는 "정부에 의한 집단학살"이라는 성토까지 하는 마당이다. '최종 책임'을 자인한 대통령이 '진상 규명'도 나오기 전에 "많이 겪어봐서 안다는" 듯 조직개편을 대책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일까?

정치적 능력은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조직개편에 실패했다. 그것도 국민안전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었는데, 이름만 바꾼 조직개편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자 아예 안전행정부를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그게 대책인가?

대안이 뭔가 했더니, '국가안전처' 신설이다.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 직속으로 해도 제대로 기능할 지 의문스러운데, '얼굴마담'이라는 총리 소속에 두는 부처가 대안이라니 뭔가 이상하다. 아마 '국가안전처'가 실패한 조직개편으로 드러나는 참사가 또 일어나면 그때 대책이라고 다시 '안전국가처'를 신설할 것이라는 비아냥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쯤해서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안전'이 도대체 뭔지도 궁금해진다. 혹시 '안전행정부'의 안전의 대상이'정권'이었던 것은 아닐까? 대국민담화 전날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을 대거 연행하고, 촛불시위에서 체포한 113명도 전원 형사 처벌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을 보니 말이다. 희생자 가족들을 경찰이 불법사찰한 것도 마찬가지다. 최고지도자의 말과 실제 정부의 움직임이 앞뒤가 맞지 않으니 희생자 가족들도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50점짜리"라며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재난 자본주의'에 이용되나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마치고 기자들과의 문답도 회피한 채 외국의 행사 참여를 이유로 곧바로 출국해버렸다. 공교롭게 그 행사는 아랍에미리트 원자로 설치식이다.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참사'를 능가할 재난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이 바로 '원전'이다. 지난해 국민에게 충격을 준 '원전비리'에도 불구하고 원전 비리나 원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특단의 조직개편이 이뤄졌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진정한 대책인지 의심스러운 것은 또 있다. 세월호 참사 등 재난의 근본 원인의 한 축으로 '관피아'로 지목하고, '관피아' 척결을 위해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5대 5 수준으로 맞춰가되, 궁극적으로 고시제를 폐지하고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뽑도록 하겠다는 대책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미국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의 역저 <쇼크 독트린>이 떠올랐다. 클라인은 이 책에서 자본주의 기득권 세력은 온국민이 충격을 받는 재난이 발생하면 이를 기득권의 '소원수리'를 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통찰을 제시했다. 이를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방식이다. 9.11 테러가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의 부시 정권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충격과 공포'라는 전쟁기법으로 '대테러 전쟁'에 돌입했다. 테러 사태에 놀란 국민은 미국의 재정을 파탄낸 일련의 전쟁에 저항하기는커녕, 부시가 잘했다고 재선까지 시켜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질 즈음, '망가진 미국'의 뒷치닥거리를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하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쇼크 독트린'이 대한민국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고시제 폐지도 '기득권의 소원수리' 대상으로 세월호 참사를 핑계로 밀어부쳐진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고시제' 대신 '현대판 음서제'가 판을 치는 사회로 빠르게 이행될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관가에서 많이 나돌고 잇는 얘기다

한 고시 출신 전직 고위관료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고시, 옛날의 과거시험은 기득권 세력을 깨기 위한 수단이었다. 사회 이동성을 위한 통로였다. 고시가 사회에 기여하는 긍정적 역할의 핵심은 능력있는 인재 기용이 아니라 사회이동성에 있다. 시험에서 1점 앞선다고 그 사람이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 않는가. 고시의 부작용을 여러가지로 들 수 있다. 그런데 고시를 폐지한 사회는 어떻게 될까, 곰곰히 생각해보라. 기득권 출신들이 관직을 장악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관가 주변에서는 "지금도 간부급이라면, 직계가족은 쉽지 않겠지만, 친척 정도는 알음알음으로 정부기관이나 산하기관에 꽂아넣는 일이 적지 않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대국민담화에서 나온 대책은 대책이 아니라 책임 회피를 위한 희생양을 지목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가 20일 성명을 통해 "대통령은 정부의 부실하고, 무능하며, 무성의한 사태 해결 노력에 대해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기보다는 해경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일방적 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무책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고 비판했다. 희생자 가족들도 이 비판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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