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이 화제다. 세월호 참사 34일 째인 19일 대국민 담화를 하면서 박 대통령은 굵은 두 줄기의 눈물을 흘렸다. '즙'이니 '액'이니 누리꾼들 사이에서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에 공감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월호 의인들을 '영웅',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칭하며, 그 눈물로 끝을 맺은 대국민 담화에 깔린 '전제'에 몹시 마음이 불편하다.
박 대통령은 담화문 초기에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며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희생을 기리고, 타인들의 목숨을 구하느라 정작 본인의 희생된 이들을 영웅으로 칭하고, 다 마땅한 일이다. 상당수 국민들이 전국 각지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그리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는지, 연근해에서 여객선이 전복되는 사고로 304명이나 몰살당해야 하는지, 전 국민을 '멘붕'에 빠뜨린 이번 사건의 실체와 원인에 대해선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 팽목항엔 20일 현재 17명의 실종자와 그 가족들이 애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박 대통령의 '눈물'이 불편하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의 죽음을 '고귀하다'고 이른 배경엔 이번 사고가 어쩔 수 없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세월호 사건은 희생자들의 '고귀한 죽음'으로 종결된 '과거의 일'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해 피해자들을 찾아 위로하는 자리에서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말했던 것과 다른 게 뭔가.
이런 의구심은 대통령의 담화 내용이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도 있다. 이날 박 대통령 담화에는 '과거'와 '미래'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통감과 사과,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예우가 한 축이라면, 해양경찰의 해체,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의 기능을 이관해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총리실이 이를 최종 관할하게 만드는 등 정부 조직 개편이 또 다른 한 축이다. 또 대량 인명 피해를 낸 민간기업의 자산, 더 나아가 경영자와 그 가족의 은닉재산까지 환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이처럼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방식으로 '미래'에 대한 논쟁 주제를 던지면서 여론의 축을 이동시켰다. 당장 20일 조간엔 '해경 해체' 등 대통령이 던진 의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주요하게 보도됐다.
세월호 희생자의 죽음은 숭고하다. 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이들의 죽음은 '억울'하다. 박 대통령의 말 그대로 "채 피지도 못한 학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전국민이 바라보는 앞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막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일 뿐이다. 물론 박 대통령도 대국민담화에서 특검을 언급했지만, 주로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문제에 국한돼 얘기했다. 유가족들이 요구한 민간 진상조사기구를 만들기 위한 특별법 제정도 제안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회의 몫으로 넘겼다.
'미래'에 대한 파격적인 제안과 '과거'를 반성하는 눈물이 담긴 대국민 담화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현재'에 대한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당장 '해경 해체' 주장만 하더라도 실종자 가족들의 거센 반발을 낳았다. 대통령의 '눈물'에서 세월호 정국에서 하루 빨리 빠져 나오고 싶은 '조급증'이 느껴졌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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