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6.4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길거리엔 후보들의 현수막이 나부끼기 시작했고, 출퇴근 길 후보들이 나눠줬을 것 같은 명함들이 길가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거리 외관이 어지럽혀진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하지만 4년 동안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할 후보에 대해 알 방법이 현수막과 명함 외에는 없어 불평하기가 어렵습니다. 4년 임기의 공직자를 선출하는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13일 뿐이기 때문입니다.이뿐이 아닙니다.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정당은 특별한 정치적 현안 없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계속적·반복적으로 확성장치 등을 이용하여 정책홍보 연설을 하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든 선거운동기간 전에 여러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당부한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당이 자신의 정책을 가지고 시민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에 정치발전소와 정치외교학부 연합동아리 '여정'으로 구성된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은 직접 선거현장을 찾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지난 기사 보기 : 선관위는 정말 정치적 중립일까?
6.4 지방선거가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시장, 관악구청장, 서울시의원, 관악구의원, 교육감…아, 많기도 해라! 이번 선거에서 내가 던져야 할 표는 무려 일곱 개나 되는데, 문제는 '서울시장' 이외에는 누가 어디에 나오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거다. 아무렴 어떤가! 선거를 3주 앞두었지만, 아직 '선거운동기간'도 아닌 걸. 유세하는 후보를 본 적도, 세세하게 공약이 적힌 홍보물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이만하면 내가 후보를 모르는 건 '내 탓'은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다. 뭐 사실, 정치 한다는 양반들도 편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특히 기호 1번이나 2번을 달고 나오는 후보들, 혹은 현직을 꿰차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할 필요가 없으니, 짧은 선거운동기간은 그들의 수고를 덜어줄 것이다. 선관위도, 선거운동기간이 짧을수록 관리, 감독해야 할 것들이 줄어들어 좋겠지? 14일의 선거운동기간, 이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신의 선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선거 운동을 두 달, 세 달씩 하자고? 그 무슨 끔찍한 소리인가?
여기까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으로 글을 읽어 내려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정하겠다. 신의 선물은 개뿔. '모두가 서로를 알래야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 14일의 선거운동기간인 것을. 정치인은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유권자는 정치인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이 끊이지 않는 악순환의 비밀은 바로 이 14일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곱 가지 표를 던지기 위해 한 표 당 두 후보씩만 면밀히 살펴본다고 하면 딱 14일이 걸린다. 물론 산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소린가? 무한도전을 두 번만 보면 금방 지나가버리는 2주라는 시간이, 우리가 '자격있는 후보자'들을 선출하기에 진정 충분한 기간일까? 대의제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정치인과 유권자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뭔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14일은 누구를 위한 선거운동 기간인가?
내겐 '찰나'와도 같은 14일
얼마 전 학교에서 심상정 의원의 강연이 있었다. 그 자리에 정의당에서 구의원에 출마한 젊은 후보도 있었는데, 심상정 의원은 짧게 그를 소개하면서 "이 뒷말까지 하면 선거법 위반이 되겠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선거운동 기간 전에는 어떤 집회에서도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당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상정 의원의 유머에 좌중은 한바탕 웃었지만, 웃음 뒤에는 불편함 역시 있었다. 군소 정당의 후보가 스스로에 대해 알리고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자리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인데, 만약 내가 그 후보였다면 정말이지 아쉬웠을 것 같다. 유권자로서의 나 역시 웃음이 선해보였던 그 후보가 궁금했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그 때를 일종의 해프닝으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선거법 위반에 대한 모두의 '자기 검열' 덕에 이름마저 살짝 지나치듯 언급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이와 같이 '알려지지 않은' 군소 후보, 혹은 정치 신인들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알릴 기회가 현재의 선거법 하에서는 현저하게 적은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 문제가 그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상의 사례를 통해 여러 행위자들이 겪는 불편함을 이야기해보겠다.
현재 '가'시의 시장인 B는 '선거일 전 180일부터는 법에서 정한 예외사항 이외의 경우에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등에 관한 홍보물을 발행/배부/발송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제86조에 따라 시정 홍보물을 만들 수 없어 답답하다. 오랜 시간 공들여 중요한 공약을 실천했는데, 언론에서는 그 사업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직접 홈페이지까지 찾아와 정보를 먼저 찾아주길 바랄 정도로 그가 어리석지도 않다. 재선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공약을 잘 지키는 정치인인지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참 답답한 노릇이다. 결국 그는 후보로 정식 등록한 후 보다 그를 더 잘 알릴 수 있을 선거운동기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분명히 B에게는 '현직의 이점'이 크게 존재하기는 하겠으나, 그가 유권자들과 더욱 '소통'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도록 우리의 법은 '정치'를 막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4일의 선거운동기간 동안에는 정치인과 유권자 간의 소통이 가능한 걸까?
군소 정당의 후보 A씨는 3일 연속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비 오는 날엔 어딜 가도 많은 사람이 한 데 모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들 집 안에 웅크리고 있을 텐데, 그것 참 매 가정마다 호별방문을 할 수도 없고. '2주'라는 선거운동기간 자체도 촉박한데, 그 중에 며칠 비라도 내릴라치면 그야말로 울상을 짓고 싶은 심정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후보들은 14일 동안 마치 게임에서처럼 긴박하게 퀘스트를 하나, 하나 깨는 것 같은 기분일까? 그들은 '한정된 자원'을 통해 '최대의 효용'을 이끌어내야 하는, 그야말로 '경제학적 합리성'을 지닌 행위자로 변신해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그마저도 날씨 같이 외부적 조건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힘든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후보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적고, '언론'에서 무엇을 얼마나 집중 조명해주느냐가 관건이 되기 쉽다. 그러나 언론에서 작은 후보에 관심을 기울일 리도 만무하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가지고 싶은' 시민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시민 C는 궁금한 게 많은데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습득하면 그것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건 그의 머리가 나빠서는 아닐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오랫동안 후보들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싶었는데, 결국 14일 동안 '압축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그들에게서 의미 있는 정보들을 얻어낼 수 없었다. 게다가 선거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더욱 혼란스럽다. 특히 최근 D 후보의 막말이 다른 유권자들의 표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고 싶은데 말이다. 결국은 '뽑기'를 하듯 투표를 해야 하는 건가 싶다.
14일, 그러나 사실상 13일 동안의 레이스
이게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 '14일'이라고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선거운동기간은 사실상 '13일'이다. 선거 당일에는 선거 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거 당일에는 인쇄물을 배부할 수 없고, 확성기를 통해 지지를 호소하거나 호별로 방문을 할 수도 없으며, 집회를 할 수도 없고, 전화나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를 밝힐 수도 없으며, 반대 투표소로부터 100m 거리 이내에서 투표 참여를 권유할 수도 없다. 선거 당일 오전 열두 시 정각이 되는 순간,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올 스톱되는 것이다. 다만, 특정 정당 또는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 없이 단순히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는 가능하다.
물론 부정 선거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취지 자체를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다른 방식의 규제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투표 참여 권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애초에 규제의 실효성이 적을 수도 있다. 예컨대 평소 특정 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뚜렷한 유명인이 '투표하자'라고 말하는 건 단순한 투표 독려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그런 식의 애매한 의사표현이 실질적인 '선거 운동'의 역할을 한다면, 아예 적극적인 '지지 표명'을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는 적극적으로 보장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이제는 정치를 복원해야 할 시간
황종섭 서울시의원 후보(노동당)는 예비공보물에 '학력'을 기재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홍역을 치렀다.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리고 소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그나마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인 학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 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나 들어도 '와!'할 만한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만큼 단기간에 유권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만한 것도 많지 않으리라.
누가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선거를 앞둔 기간은 가장 역동적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이 넘쳐나야 마땅할 시간임에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불가능하다. 결국 후보가 어느 학교를 나왔네, 언제 시의원을 했네, 따위의 '얕은 정보'만이 오갈 수밖에 없게 된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 사건을 통해 정치가 '일상'이 되어야 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시작은 정치인과 일반 시민 사이의 활발한 의사소통에 있다. 분명한 것은, '14일'의 짧은 선거운동기간으로는 그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드라마 <신의 선물>에서는 14일의 긴박함 속에서 결국 딸을 살려낼 수 있었지만, 그건 드라마의 판타지일 뿐이다. 2주는 무언가 '제대로' 해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인 걸. 우리는 정치의 과정 속에서 깊게 대화하고, 소통하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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