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일보 1936년 3월 1일 자 기사에 '우리의 국기 축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조선중앙일보는 같은 해 4월 16일 '우리 겨레가 사는 그 어떤 곳에서도 뽈차기를 모르는 이가 별로 없다'고 보도했다.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 피쉬'(Flying Fish)호 승무원에 의해 전해진 축구가 1930년대에 조선 최고 인기 스포츠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한국 근대화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과 미국에서는 축구가 아닌 야구가 국기처럼 취급되는데 유독 한반도에서 축구가 인기를 끈 까닭은 일본과 대결해서 이길 수 있는 영역이었기 때문(변성호. <스포츠를 통한 인정투쟁-일제 식민지 시기 축구를 중심으로>)이었다. 한국 축구의 뿌리는 민족의 한과 설움에 맞닿아있다. 그래서 유독 축구에는 민족의 정서가 드러나고 국민의 마음이 담긴다. '독도는 우리 땅',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 '재일동포 여러분 힘내세요', '수재민 여러분 힘내세요' 등 세리머니와 플래카드는 축구가 담아낸 민족의 정서와 국민의 마음이었다.
어디 축구뿐이랴. 1933년 10월 8일 일본 도쿄 히비야공원 특설링에서는 조선권투구락부와 일본 간토지역선발팀과의 친선경기가 열렸다. 조선권투구락부의 창설자인 성의경 선생은 조선어로 축사를 한다.
"오늘 우리가 승리한다면 그것은 우리 조선이 강한 탓이요, 여러분이 응원해 주신 덕분일 겁니다."
일제 경찰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행해진 성의경 선생의 비장한 조선어 축사는 히비야공원을 넘어 전 조선에 울려 퍼졌다.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대의 해태 타이거즈, IMF 외환위기 시절 박찬호, 박세리 이전부터 우리는 스포츠를 통해 시대를 읽고 설움을 달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살아왔다.
2014 브라질월드컵 개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대표팀 슬로건 '즐겨라, 대한민국(Enjoy it, Reds!)'도 논란이고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도 고민이다. 포탈사이트 '다음'에서는 슬로건 변경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길거리 응원의 메카인 서울광장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가 설치돼있다. 스포츠는 우리 삶, 우리 시대와 별개가 아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2014년 대한민국을 담아내자. 대표팀 슬로건을 바꾸고 대표팀 유니폼에 노란 리본을 새기자. 서울광장 분향소를 그대로 유지하며 광화문 네거리에서 질서 있는 응원을 펼치자. 분노와 슬픔을 잊는 것이 아니라 새 희망을 찾는 모습을 세월호 희생자에게 바치자. 웃고 즐기는 것이 스포츠의 전부라면 길거리응원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스포츠엔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정권교체의 새 바람이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광우병 촛불시위에 갇혔던 이명박 정권의 탈출구였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우리에게 무엇이 될까? 축구가 우리의 죄를 씻는 세례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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