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여기서 ‘도시농업’은 ‘토지, 건축물 또는 다양한 생활공간을 활용하여 농작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법 제정의 목적은 ‘자연친화적 도시환경 조성, 도시민의 농업 이해 제고’에 두고 있다. 이처럼 정부에서 별도의 법률까지 제정할 정도로 도시농업은 유행하고 있다. 그리 된 배경과 원인은 우리 농업의 붕괴라는 엄혹한 현실에서 우선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도시농업은 쿠바, 네팔 등 제3세계의 생계형 도시농업과는 출발부터가 다르다. 김광남 러번다이나믹스 대표(2013년)는 유럽 선진국에서 하는 취미생활이나 여가선용 프로그램 목적의 농업과도 방향과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도시농업은 식량위기, 에너지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신자유주의로 인한 농업 붕괴에 대비하는 범 사회적 차원의 공동체 운동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도시농업의 진정한 가치와 효용은, 단지 도시나 도시민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농촌과 도시의 상생 발전’을 매개하고 촉발하는 데 있다. 농촌이 주곡개념에서 식량기지라면, 도시는 부식거리를 생산하는 식량 자급기지가 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식량자급률을 올려 식량주권을 확보하려면 농지와 농업 인구를 보전하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도시농업 법률에서도 “도시농업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통하여 자연친화적인 저탄소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도시민의 정서 순화 및 도시지역 공동체의 회복을 도모하며, 도시민의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를 증진함으로써 도시와 농촌의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려는 것”을 목적이라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도시농업은 도시(민)만의 현안이 아니다. 농민을 포함한 우리 국민 모두의 숙제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도시농업은 아직 진입기를 벗어나지 못한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도시지역의 유휴지 면적과 같은 기초 자료 조사마저 미비한 실정이다. 도시계획법, 농지법, 국토법, 건축법 등 손질해야 할 법률도 산적하다. 풀어야 할 숙제도 많고 가야 할 길도 아직 멀다. 하지만 ‘농·도 상생 국민농업’의 해법을 구하려면 도시농업의 길을 피해갈 수 없다. 원하는 답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도시농업의 시작은 ‘도시 농지‘를 확보하는 일부터
도시농업은 ‘땅’이 문제다. 도시농업은 일단 ‘땅(농지)’을 확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도시의 토지 소유자들은 도시농업보다는 수익이 높은 상업적 개발과 이용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도시에서 농지를 찾고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도시지역에는 경사도가 크거나 하천 유역의 범람 때문에 건축 용도로는 부적합하지만 도시농업에는 중요하게 사용될 만한 공유 및 사유 공지가 산재한다. 이런 경우 그 대상지에 대한 법적 제한을 어떻게 풀 것인지가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된다. 따라서 도시농업을 위한 도시 농지를 확보하거나 보존하려면,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노력이 선행 또는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도시마다 ‘도시농업공원’을 조성하면 어떨까. 법의 문제만 풀면 기술적인 문제, 재정적인 문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듯하다. 현재는 공원에서는 텃밭을 조성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 위법이고 불법이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지정된 장소에서 경작행위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도시농업공원’ 개념을 신설, 조성하면 된다. 아예 미집행된 공원부지를 ‘도시농업공원’ 조성을 목적으로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은 1990년 ‘시민농원정비촉진법을 제정한 바 있다. 또 <공원녹지조례>에서 시·도지사는 ‘그 밖의 주제공원을 조례를 통해 규정’할 수 있다. 도시농업공원을 이 주제공원에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농업농지’도 보전해야 한다. 도시에도 지목상 엄연히 농지가 존재한다. 생산녹지다. 도시계획법에서는 도시의 녹지지구를 보전녹지, 자연녹지, 생산녹지 등 3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보전녹지는 말 그대로 보전하는 녹지로 개발이 안 되는 곳이다. 자연녹지는 제한적으로 보전하는 곳이다. 생산녹지는 개발유보지로서 농지에 해당한다. 바로 이 생산녹지를 보전녹지로 격상시켜 도시농지를 보전한다는 차원에서 도시농업부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생산녹지는 언제든지 개발이 될 수 있는 개발유보지 상태로, 마땅히 ‘도시농업부지’ 대상지로 보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도시농업농지’는 임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농지법상의 임대차 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도시농업에 한해서는 제한적으로 농지를 임대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농지 보전, 부동산투기 등 폐해를 막기 위한 목적의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 “개발유보지인 농지를 임대해주면 안 된다”는 예외규정으로 두어 투기는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1989년 특정농지에 대한 특례를 마련했다. 2005년에는 <특정농지대부법>도 시행했다. 한편, 전업 또는 은퇴하고자 하는 농가 등으로부터 장기임대한 농지와 한국농어촌공사 소유농지를, 전업농 또는 농업법인에게 장기임대하는 <농지은행> 사업을 준용하여 예외조치를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농업계획’의 녹지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건축법에 따르면 건축물 승인을 위해서는 일정 이상 녹지를 보전하고 조성하는 녹지비율을 지켜야 한다. 다만 다년생 나무만 인정되고 농작물 식재부지는 녹지로 인정되지 않는다. 농작물도 녹지로 인정하면 부동산투기꾼들이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단 도시농업계획에 명확하게 녹지계획을 제출한 경우에 한해서 녹지로 인정해주면 된다. 또 사후에 모니터링 등 관리와 규제를 철저히 한다는 전제도 필요하다. 일본의 ‘생산녹지지구’는 ‘면적이 500제곱미터 이상인 곳, 농림업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 등을 지정요건으로 하고 있다. 도시농업을 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도시농업을 하려면 ‘사람’과 ‘법’의 문제를 선결해야
도시농업의 주체는 당연히 도시농업인, 또는 도시농부이다. 법에서도 도시농업을 함께하기 위하여 자율적으로 구성한 ‘도시농업공동체’라는 단체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도시농업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정부, 지자체 등에서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인증제도의 도입도 검토해볼 사항이다. 법으로도 농촌진흥청, 지방농촌진흥기관, 대학, 도시농업에 관한 연구활동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소나 기관 또는 단체를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도시농업 전문 사회적기업인 텃밭보급소(소장 안철환) 같은 곳에서는 텃밭보급원 등 도시농업활동가(멘토)를 양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도시농업의 주체인 도시농업인(시민)과 정책 지원의 주제인 행정을 중간에서 연결하고 소통시켜주는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 지자체 단위의 도시농업 사업 전반을 기획하고 운영·관리하는 민간 도시농업 전문가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경제적, 산업적 농업 배제부터 명문화해야 한다. 도시농업의 범위에 어업·축산업·임업과 관련된 행위로서 대량생산, 영리판매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산업적 농업이 포함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조항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2013년 농식품부에서 새로 추진하는 ‘식물공장 시범사업’ 등 경제적·산업적 농업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농어촌지역 농업인의 이익이 상대적으로 침해될 우려가 크다.
‘다년생식물 재배’ 배제도 명문화하자. ‘다년생식물을 재배하는 행위’를 포함할 경우 가정에서 관상용으로 화분을 키우는 행위, 도로의 가로수를 재배하는 행위 등도 도시농업에 포함되어 그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진다.
도시농업 조례도 실효성 있게 재정비해야 한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도시농업 관련 조례를 경쟁적으로 제정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대부분 상징적,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다. 도시농업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참여 주체 간의 협력, 토지 이용 관련 권리와 의무, 문제발생시 분쟁에 대한 조정, 기금의 조성과 운용, 학교급식 및 저소득층 복지와의 연계 문제 등 현실적으로 실효성있게 적용 가능한 조례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도시농업은 도시빈곤을 퇴치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어
도시농업의 사업계획은 기본적으로 도시 공간 계획에 통합되는 게 타당할 것이다. 도시농업이 도시 생활의 질, 식품 안전, 근린 안전, 환경 관리 책무를 증진시키는 바람직한 공공활동으로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도시농업을 도시 토지 이용 계획에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농업은 도시계획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도시계획 차원에서 도시농업이 포함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제약이 뒤따르게 된다. 두 정책 사이에 충돌이 생겨 도시농업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이미 도시계획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녹지 계획, 공원 계획, 경관 계획은 도시농업과 기능면에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도시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때 도시농업을 포함하는 토지 이용 계획을 수립하고 공간의 틀을 짤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도시의 유휴 토지 및 기타 자원을 도시농업을 위한 용도로 보존하고 전환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공간 계획에 대한 혁신적 정책변화가 필요하다.
‘환경’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전에 서울시가 한강둔치를 도시농업 농지로 활용하려했을 때, 국토해양부가 수질오염을 이유로 반대한 적이 있다. 아무리 유기농업의 원칙을 견지한다 해도 도시환경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사후 관리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도시농업이 초기에서 벗어나 일정 규모 이상으로 확대되면 재배기술 외에 고려할 사안이 많다. 경영자금, 소비와 판매, 지역사회 복지와 일자리 등 도시농업 관련 분야의 정책과 연계성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가령 농기계 은행, 공동 처리장 등의 공유 시설, 지역사회 지원 농업 벤처, 기술 서비스 같은 분야에서 지방자치단체와 농협 등 관련기관의 참여와 지원이 요구된다. 도시농업 참여를 통해 고령자와 저소득층이 소득과 일자리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도시농업과 노동, 복지의 연결성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미국은 취학 전 아동이 이용하는 유치원은 물론 학교, 병원, 교도소, 기업과 직장에도 신선하고 영양가 있는 식품을 제공한다. 지역 생산품에 대한 직접 마케팅을 위해 농장과 교육기관의 상호 협력과 교류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또한 모든 주가 농민 장터에서 신선한 농산물을 구매하도록 지원하는 영유아·임산부 보조 프로그램 WIC(Special Supplemental Food Program for Women, Infants, and Children), 농민 장터 영양 보조 프로그램(Farmer’s Market Nutrition Program), 고령자 농민 장터 영양 보조 프로그램(Seniors Farmer’s Market Nutrition Program) 등의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도시농업의 궁극적인 목적과 가치는 다름 아닌 ‘도농 상생’, ‘국민농업’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농업이 활성화돼 도시민들의 농산물 자급자족률이 높아지면 그 피해가 농촌의 농가에 전가될 우려를 제기하는 이도 있다. 기우다. 도농 상생은 도시농업과 농촌농업의 상생을 촉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도시농업은 판매(sale)보다는 나눔(share)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심지어 UN 식량농업기구(FAO)는 “도시농업이 도시빈곤을 퇴치하는 유용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도시농업이 단지 도시민의 농산물 자급자족, 생태적인 여가활동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사회복지 차원의 접근이다.
이처럼 도시농업의 전망은 긍정적이다. 일본의 경우 1999년 2512개이던 시민 농원이 2009년 기준으로 3596개소로 늘어났다. <특정농지대부법>, <시민농원정비촉진법>에 따라 개설된 시민 농원의 숫자는 2010년 3월 말 현재 3596농가, 17만3443구획, 1219헥타르에 이른다. 이중 지방자치단체가 개설한 것이 전체의 약 70%이며 <특정농지대부법>에 의해 설립된 것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일본 농림수산성). 도시농업의 전망은 관련 지원 법과 제도의 정비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확인시켜주는 선행 사례다. 먹을거리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근래 구제역, 광우별, 조류독감 등으로 도시민들은 농산물과 식품등 먹을거리의 안전성에 대해 크게 각성하게 되었다. 비만, 당뇨, 암, 심장질환 등 현대병도 가공식품, 유전자조작식품(GMO) 등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도시민들이 스스로 텃밭, 주말농장 등을 통해 안전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도시농업에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생태환경의 관점에서는 더욱 미래지향적인 기능을 발휘한다. 지구환경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커지면서, 농업을 단지 식량생산 기능으로 보는 시대는 벗어났다. 자원과 에너지 순환·재활용을 통한 지속가능성, 환경보전, 경관보호, 휴양과 치유 등 농업이 가진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도시농업이 당연히 친환경농업의 방법론과 기술을 원칙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도시농업은 사회복지의 질을 높인다. 도시농업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판매(sale)가 아닌 나눔(Share)이 목적이자 가치가 되어야 한다. 고령자, 저소득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영양공급과 건강유지 위한 급식, 로컬푸드 운동, 일자리 제공 등 사회복지 차원의 정책과 제도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시행될 필요가 있다. 안양―군포―의왕시는 관내 청소년들을 위해 <공동급식지원센터 설립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하고, 사업의 실천력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재단법인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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