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에서만 꼬박 12시간, 한국방송(KBS)을 항의 방문한 데서 시작하면 장장 18시간.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8일 밤부터 9일 오후까지 아이들의 영정을 품에 안고 책임 있는 사람들의 '사과'와 '경청'을 기다린 시간이다.
가족들은 9일 오후 4시께 서울 중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길환영 한국방송(KBS) 사장이 이곳을 방문해 "상처 드린 데 죄송하다"고 직접 사과를 한 이후다. 길 사장이 사과를 하는 동안 유족들은 침착하게 그의 말을 들었다.
일부 가족들은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표 수리가 아니라 파면을 원한다'고 소리내기도 했지만, 길 사장의 사과로 1박 2일간의 청와대 앞 농성을 갈무리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희생자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은 "우리가 KBS 때문에 나선 거지 청와대 앞에서 농성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 않느냐"며 가족들을 다독였다.
길 사장의 사과 이후엔 이번 참사에서 살아 돌아온 안산 단원고 심 모 학생과의 전화 연결로 청와대 앞은 한 번 더 울음바다가 됐다. 심 군의 목소리는 휴대폰 스피커와 마이크, 그리고 현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타고 유가족들에게로 전달됐다.
"거기 계신 학부모님들이 여기 학생들 목소리 듣고 싶다고 하셔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잘 알지만 그래도 죄송하다는 말, 그리고 친구들 다 같이 오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침착함을 지키던 유족들마저도 심 군의 '죄송하다'는 말에 하나둘 흐느끼기 시작했다. 고개 숙여 아스팔트 바닥으로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영정을 한없이 어루만지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던 가족들은 '아들아 네가 뭐가 미안하니', '살아줘서 고맙다'라고 외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가족들은 주변 쓰레기를 정리하고 길거리에 흩어진 물건들의 주인을 찾았다. '여기 이 휴대폰 누구 거예요?.' '어 그거 △반 ○○엄마 거예요.'
안산으로 돌아갈 버스를 향해 두 줄로 정연히 선 가족들 양옆으로 함께했던 시민들이 늘어섰다. 1박 2일간의 고생에 격려의 손뼉을 보내고 '조심히 들어가시라'며 인사를 건넸다. 영정을 품에 안은 가족들 중 일부는 '고맙습니다'라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들이 떠나고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말끔해졌다. 지난 12시간 동안 하나 둘 내걸렸던 노란 리본도 사라졌고 효자로 방향을 막고 있던 경찰 차벽과 차에 붙어있던 노란 종이배들도 지금은 볼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가족들을 만나러 나오지 않았고, 청와대 안에서의 대통령 면담도 성사되지 않았다.
이날 만난 한 유가족은 "애들이 배 안에서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런 거 고통이라고 생각 안 해요"라며 "우리는 따지러 온 게 아니라 하소연하러 온 건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어서 그걸 대통령이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그것을 알려드리려고 온 건데 참 뵐 수조차 없네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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