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도소에서도 만화책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럼, 그동안은 볼 수 없었나? 대체로 그렇다.
청소년 인권 활동가 공현(본명 유윤종) 씨는 지난해 9월 대구교도소 민원실을 찾았다. 지인에게 만화책을 건네기 위해서였다. 제목 탓이었을까. 민원실 담당 직원은 교육용 만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영치품 접수를 거부했다. 만화 제목은 <흉기의 발명>(MASA 지음, 김윤경 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흉흉한 제목이지만, 읽어보면 흥미로운 추리만화다. 조선 세종 시절의 과학자 장영실이 주인공이다. 출간에 앞서 포털사이트 ‘네이트’에 연재돼 인기를 끌었다.
두 달 뒤, 공현 씨는 다시 교도소(교정시설)를 찾았다. 이번에는 영월교도소. 역시 만화책을 영치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마찬가지. 제목을 탓할 수도 없다. <세인트 영멘1>(나카무라 히카루 지음, 시리얼 펴냄)인데, 붓다와 예수가 도쿄에 아파트를 빌려 휴가를 보내는 내용이다. 코믹, 명랑만화로 분류된다.
도대체 교정시설에서 왜 만화를 보면 안 된다는 걸까. 천주교인권위원회가 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은 “수용자는 자신의 비용으로 신문·잡지 또는 도서의 구독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교정시설) 소장은 제1항에 따라 구독을 신청한 신문등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른 유해간행물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독을 허가하여야 한다”라는 규정도 있다. 교정시설 반입을 불허당한 <흉기의 발명>과 <세인트 영멘1>은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른 유해간행물”로 지정된 적이 없다. 결국 교정시설 측은 아무런 근거 없이 만화책 반입을 막아왔던 것이다.
인권위 조사가 진행되던 중 법무부가 입장을 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법무부는 지난 2월 산하 교정시설에 ‘교정기관 만화책 구독 허용 확대’ 공문을 보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른 유해간행물을 제외하고 출판물로 등록된 만화책은 전면 허용하라는 지시가 담긴 공문이다.
이 공문에서 드러난 법무부 조사 결과를 보면, 그동안 산하 교정시설 가운데 31곳은 교육용 만화만 허용하고, 16곳은 일반 만화(음란·폭력성 제외)까지 허용하며, 3곳은 전면 허용해 왔다. 만화책의 허용 여부가 통일되지 않았던 것. 이에 대해 법무부는 “수용자 가족과 담당직원의 불필요한 마찰이 발생”하고 “만화책의 음란·폭력성에 대한 판단이 교정기관마다 차이가 나고,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번 방침 변경을 통해 만화가 일반 대중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비정상의 관행을 개선하고 수용자 가족과 직원간의 불필요한 마찰과 민원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천주교인권위는 7일 낸 보도자료에서 법무부의 방침 변경이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천주교인권위는 "애초 만화책 반입 불허 방침은 현행법을 어긴 것은 물론 만화가 문학과 예술의 한 부문으로 인정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만화가 단순하고 저급한 장르라는 뿌리 깊은 편견을 반영한 것"이었다며, "법무부는 이번 방침 변경을 계기로 교정시설에서 수용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적인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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