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기류가 지배하고 있는 한나라당 내에서 '소신파'들이 온데간데 없다. 예산안 처리, 대북 정책 기조 문제 등에서 색깔 있는 목소리를 내던 의원들조차 연일 "국회법에 따라 의법 처리하겠다"며 법안 강행처리를 종용하는 지도부의 기세에 압도당한 형국이다.
'일사불란'이냐 '거수기'냐
29일이 '한나라당의 거사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26일 중진의원 긴급회의를 소집해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이한구 의원은 "토론이라기보다는 무리하지 말고 잘 처신하라는 주문이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남경필 의원은 "나는 사이버 모욕죄 등 몇몇 쟁점법안에 대해 계속해서 우려를 표했던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회의석상에서는 발언을 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중점 법안을 다시 추린다니 지도부 의견을 들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에서 원희룡 의원 등이 '속도 조절론'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도부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중진회의 직후 의원총회를 소집해 "일부에서 속도 조절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민주당이 오늘 본회의장을 점거해 속도 조절을 할 시간이 없어졌다"고 일축했다.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바람에 의외로 시기가 며칠 당겨질 수 있다"며 "의원들은 오늘부터 지역 활동을 삼가고 서울에서 비상대기 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미 FTA 상정 과정에서 현 지도부의 '일방통행'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진 정의화 의원도 홍 원내대표가 방송에서 "인기영합적 발언이다"고 직격탄을 날리자 "중진 회의에서는 내가 한 발언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일부 오해가 있음을 알렸다"고 몸을 사렸다.
한나라당 내 개혁 성향의 소장파 모임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민본21'도 이날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공식 입장 하나 내지 않았다. 민본 21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식 의원은 "지도부에 우리의 우려를 (비공개로)전달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현재 지도부가 정한 114개 법안에서 중점 추진 법안을 다시 추려야 한다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그는 "야당이 저런 상태라서 상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길 바란다"며 곤혹스러움을 나타냈다.
그는 "언론플레이는 쉽다. 성명서 한 장 발표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별로 노출되지 않는다.
친박진영이나 소위 개혁파 등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석에서는 "지도부가 너무 무리한다", "너무 청와대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목소리를 공식 석상에서 찾긴 어렵다.
가뭄에 콩나듯 다른 목소리가 언론에 실리지만 '영남권 초선 의원', '수도권 재선 의원' 같은 모자 아래서 나오는 이야기다.
예산안 논의 과정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내에선 토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예산안 처리 이후 한나라당은 좋게 말하면 '일사불란' 나쁘게 말하면 '통법부'혹은 '거수기'의 모습이 점차 역력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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