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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아'와 '핵마피아',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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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아'와 '핵마피아', 얼마나 다른가

[편집국에서] 우리는 ‘안전 불감증’을 탓할 자격이 있는가

설계 수명이 다 해서 가동이 중단됐던 설비를 앞으로 10년 간 더 사용하기로 했다. 사고 위험에 대한 감독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형 참사를 부를 수 있는 불량 부품을 쓰고 돈을 받는 비리가 잇따라 터졌다. 경영진부터 말단직원까지 연루된 조직범죄다. 관료와 전문가들이 한통속으로 뭉쳐 있다. 음지에서 이권을 쫓는 마피아처럼, 이들 역시 시민의 감시와 견제 바깥에 있다. 산업 부양을 담당하는 기구와 안전 관리를 맡는 기구가 서로 견제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안전을 챙기는 쪽은 힘이 없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빚은 해운감독 체계를 떠올릴 게다. 실은 원자력 발전소(핵발전소) 이야기다.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터지면, 그 피해 규모는 일본 후쿠시마 사태를 능가한다. 좁은 국토 안에 원전이 밀집해 있는 탓이다. 또 잦은 지진을 겪은 일본에 비해, 한국은 방재 기술과 인프라가 취약하다.

이런 사정을 다들 안다. 무분별한 원전 확대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과거보다 힘이 실리는 이유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다. 원전 안전을 감시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역시 원전 확대론자가 다수다. 예컨대 새누리당이 추천한 원자력안전위원인 임창생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은 대표적인 ‘핵마피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총선 당시 여성 비례대표 1번으로 원자력 전문가를 배치했었다. 원자력을 ‘제3의 불’로 칭송하던 박정희 정부 시절의 인식에서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이다.

원전 확대를 정말 강하게 요구하는 세력은 따로 있다. 재벌이다. 후쿠시마 참사 이후, 일본 사회에 몰아닥친 반핵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분주히 움직인 세력이 일본 재계인 것과 비슷하다. 특히 한국은 산업용 전기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게 유지돼 왔다. 전기를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느라 생긴 비용은, 돌고 돌아 결국 다수 국민에게 돌아온다. 반면, 값싼 전기로 혜택을 본 대기업이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질 기미는 없다. 원자력이건, 석탄이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전력 생산량을 늘리는 게 그들에게 이익이다.

다수 시민 역시 원전 문제에 대해선 조금씩 공범 관계다. 재벌, 그리고 그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세력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 우리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처럼 전기를 펑펑 쓰는 습관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작은 편안함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는 언젠가 거대한 청구서가 돼 돌아올 게다. 아니, 지금도 누군가가 그 비용을 대신 내고 있다. 송전탑 문제로 싸우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표적이다. 전기 소비량이 극히 적은 그들은 전기를 낭비하는 대도시 사람들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는다. 약자에게 위험과 책임을 떠넘기는, 우리 사회의 공식은 여기서도 되풀이 된다.

다들 세월호 선장을 욕한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그는 가장 힘이 센 자였다. 그는 약하고 고분고분한 순서대로 위험을 떠넘겼다. 반면, 선장과 가까운 순서대로 살아남았다. 배를 벗어나는 순간, 선장은 강자가 아니다. 박봉의 계약직일 뿐이다. 그제야 그는 책임 추궁을 듣는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곳곳에서 안전 불감증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원전 부품 비리가 그토록 심각했지만, 우리는 조용했다. 감시 체계 바깥에서 이권을 탐하는 관료와 전문가들을 ‘핵마피아’라며 조롱했으나, 그저 그뿐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해피아’, ‘관피아’를 비난하고 나선다. 대기업과 대도시 사람들이 값 싼 전기를 쓰는 대가를 대신 뒤집어 쓴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여전히 고립돼 있다. 누구나 안다. 정부과 한전이 보기에 그들이 가장 만만해 보이므로, 그들이 희생양이 됐다는 걸. 서울 강남에 송전탑이 지날 리 없는 건 그래서다. 그러면서 우리는 고분고분한 아이들에게 위험을 떠넘긴 선장을 욕한다. 참으로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묻고 싶다.

우리는 ‘안전 불감증’을 탓할 자격이 있는가.

▲ 밀양 송전탑 공사현장에서 만난 한 노인.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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