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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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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

[시민정치시평] 세월호 참사, 우리가 해야 할 것들

소리 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줄지어 선 사람들은 차분하다. 조용히 국화꽃을 받아들고 묵묵히 걸어간다. 함께 묵념을 하고 꽃을 바치고 또 걸어간다. 헌화를 마치고 나오면 '소망과 추모의 벽'이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즈음이라 눈길만 주고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많다. 몇몇은 눈물지으며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고백하는 글을 적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자리로 묵묵히 돌아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로,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세상은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로 나뉘어 버렸다. 망망대해도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섬과 2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연안이었다.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이들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국민 안전을 국정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정부는 스스로 빠져나온 사람들을 제외하고 한 명도 더 구하지 못했다. 지난 열흘, 실종자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나라에 함께 살고 있는 모두에게 캄캄한 지옥의 시간이었다.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하다.

책임을 지고 총리가 사퇴한다고 한다.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총리의 사퇴가 국정 운영의 부담을 덜어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가 정말 이 참사의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지금 급한 것이 총리의 사퇴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100여 명을 구조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조류와 장비 탓만 할 것인가? ‘구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명까지 생사를 확인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가 국민에게 보여줄 최소한의 예의이다. 대통령이 엎드려 사죄하는 것은 그 뒤에라도 늦지 않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밤잠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이라면, 부끄러움과 분노가 치민다면 뭐라도 하자. 안산의 세월호 분향소에 다녀오지 못했다면 내일이라도 가까운 합동분향소에 가자. 애꿎게 스러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건네자. 그것도 어렵다면 사이버분향소에 추모의 글이라도 남기자. 담벼락에 욕이라도 한 자락 적어놓자.

그리고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함께 이야기하자. 그것이 규제 완화와 정경유착 때문인지, 과적을 일삼은 청해진해운의 과도한 이윤 추구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 때문인지,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이유와 원인으로 침몰했는지 진상을 낱낱이 밝히자. 그리고 왜 정부는 수백 명이 실종된 사고 첫날 이후 단 한 명도 추가로 구조하지 못했는가 묻자. 그것이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직무유기 때문인지,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구조하지 못한 해양경찰의 안이한 대응 때문인지, 아니라면 청와대 그 높으신 양반들의 소위 '컨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묻자. 누구의 잘못인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꼼꼼히 따지고 엄중하게 책임을 묻자.

'세월호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사람보다는 돈이 우선되는 세상, 안전보다는 이윤이 중요한 나라, 생명보다 권력이 중요한 나라, 이런 '세월호 이전'의 '고장 난 나라'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사람이 돈보다 우선되는 세상, 안전이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한 나라, 권력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나라, '세월호 이후'의 새로운 나라, 그런 세상을 꿈꾸자. 함께 꾸는 꿈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연대하자.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고 기억하자. 애써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쉽게 잊힌다. 내년 아니 다음 달에는 벌써 잊을지도 모른다. 이 참담한 기억들이 빗속에서 흘리는 눈물처럼 사라지지 않도록, 부끄러운 기억은 곱씹어 가자.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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