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범정부적 '규제 완화' 사업에 해상 안전 관련 규제도 이미 다수 포함됐던 것으로 24일 나타났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등의 방법이 아닌, 정부가 시행령이나 규칙을 고치는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왔던 것. 특히 선장의 안전점검 의무를 면제하고, 선박에 싣는 화물 컨테이너의 안전점검 횟수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는 이번 세월호 사고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19일 국토·해양·환경분야 정부부처 업무보고 당시 "무엇보다 경제혁신 필수 과제인 규제개혁에 각별히 노력해 달라"며 "현재 국토부와 해양 분야의 입지 관련 규제가 정부 전체 규제의 31%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세 부처(국토부, 해수부, 환경부)가 정부 규제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었다. (☞관련기사 보기 : 세월호 참사, 이래도 규제 완화인가?)
대형 참사를 낸 세월호의 선령(船齡)이 21년이며, 이명박 정부 당시 선박 운항연령 규제를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한 것이 이번 사고의 배경 중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중이라 더 주목된다.
해수부, '선원 피로' 이유로 안전규제 완화
해양수산부의 '규제개혁 추진자료'와 국무총리실 '규제정보포털' 등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미 완화됐거나 완화를 추진 중인 해상안전 관련 규제는 최소한 10건 이상이다.
해양수산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해 8월 공개한 '규제개혁 추진과제' 62건 가운데 포함된 '내항선박 안전관리체제 이행요건 완화' 항목을 보면, 정부는 "국내항해에 종사하는 선박(내항선)은 선원의 고령화 등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선박과는 운항·관리 여건이 상이"하다는 이유로 "선장의 부적합 사항 보고와 매년 실시하는 내부심사를 면제하고 이를 안전관리책임자·안전관리자의 주기적 방선(선박 방문)·점검으로 대체"하도록 했다.
이는 지난해 5월 해사안전법 시행규칙(해양수산부령 78호)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개정 이전의 시행규칙에서는 '안전관리체제의 수립·시행'(별표11)에 있어 내항선과 외항선을 가리지 않고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으나, 개정 이후는 '여객선 및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500톤 이상의 여객선 외의 선박'과 '국제항해에 종사하지 아니하는 선박' 등으로 나눴다. 이에 따라 선박 안전에 대한 인증심사 사무처리 규정(해양수산부 훈령 84호)도 개정됐다.
또 추진과제 중의 '내항선사 및 선박 최초인증심사 절차 완화' 항목을 보면, 해수부는 "안전관리체제에 대한 내항선 종사자의 이해 부족으로 내부심사를 통한 시스템 검증 효과는 미미한 반면 행정적 절차이행에 따른 선원 피로 증가"를 이유로 들어, 내항선의 경우에는 "내부심사를 육상주도의 안전관리(책임)자 확인으로 대체"하고 "선박 최초인증 심사 전 내부심사 의무 면제"를 추진해 관철시켰다. '안전관리하느라 선원이 피로하다'는 이유로 규제를 완화해준 셈이다.
선장이 휴식을 취할 때 1등 항해사 등이 선박의 조종을 대신하도록 한 선원법 규정을 구체화하는 시행령 조문 신설도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1등항해사와 운항장 또는 이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직원이 선장의 직무를 대행할 수 있게 됐다. 단 이는 지난 2006년 국제 해사노동협약에 따라 선장을 포함한 전 선원에게 법으로 정한 휴식 시간을 보장한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컨테이너 안전점검은 "사업자 부담" 이유로 점검 축소 추진
완화를 추진 중인 규제 항목은 더 많다. 해수부는 배에 실리는 화물 컨테이너의 안전점검 관련 규제도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해수부는 "지방해양항만청은 컨테이너 안전점검사업자에 대한 현장점검을 연 1회 이상 하도록 하고 있다"며 "현장점검이 과다할 경우 안전점검사업자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규제개선 추진과제 중의 '선박안전법상 안전점검사업자에 대한 현장점검 축소'항목을 보면, 현행 선박안전법 시행규칙 66조는 지방해양항만청이 컨테이너 안전점검사업자에 대한 현장점검을 연 1회 이상 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문을 개정해 '연 1회 이상'을 '연 1회'로 못박고 "연 1회의 현장점검(자료제출 포함)을 실시하고 구체적 필요사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추가 현장점검을 하도록 명확히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해수부는 이 사업의 기대효과로 "민간 부담 경감 및 컨테이너 안전점검사업자 점검 업무의 효율성 향상 제고"를 들었다.
또 △해상교통 안전진단 적용범위 축소, △예인선 총톤수 제한규정 완화 및 예인선에 탑승하는 선원의 자격요건 완화, △항만 지역 내의 선박 수리작업 등 허용, △어항 구역 내 고기잡이 도구 설치금지 완화 등도 이번 세월호 사고와의 연관성은 크지 않으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해상 안전 분야의 규제 완화 사업에 포함돼 있다. 이 역시 효율성을 이유로 안전사고 위험을 증가시키는 조치다.
규제 완화 법안이 '안전 법안'으로 둔갑
이 가운데 항만 지역 내의 선박 수리작업은 현행 '개항질서법'에 따라 안전상의 이유로 제한하고 있으나, 정부는 지난해 1월 '선박의 입출항에 관한 법률'(입출항법)을 개항질서법의 대체 법안으로 제출했다. 입출항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개항질서법은 자동 폐지된다.
정부가 제출한 새 법안은 현재의 '항만 내에서 위험물 운반 선박이나 20톤 이상 선박을 수리하려는 자는 해수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을 '해수부 장관은 위험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리를 허가해야 한다'는 취지로 바꾸고 있다. 박 대통령이 누차 강조한 '네거티브 방식'의 입법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해수부는 "선박수리 또는 선박경기 등의 허가 요청시 불허할 수 있는 경우를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아 담당자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한 허가 우려"가 있다며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모두 허가하도록 해 민원인의 편의 도모"를 하겠다고 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입출항법 제정의 취지를 봐도 이 법안은 5톤 미만의 선박 및 수상 레저기구에 대한 항구 출입신고 면제, 선박수리 및 선박경기 등 행사 허가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가할 것 등 규제 완화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안전 관련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은 선박 교통관제에 대한 근거 마련 및 관제응답 청취의무 부여 등으로 더 적다. 그런데도 이 법안은 엉뚱하게 '국회에서 낮잠자는 안전 관련 법안'으로 둔갑돼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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