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연상됐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 사이에 화성시 태안읍 반경 2킬로미터 내에서 발생했는데, 사망자 10명이 모두 여성이었고 범행수법이 극히 잔인하고 엽기적이었다는, 그리고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범인이 검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세인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사건이었다.
<살인의 추억>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분명 당시의 한국사회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유형의 사건이었다. 당시의 수사기법이나 수사진의 상상력을 가지고는 연쇄살인범을 체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시 범인 검거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단지 시대를 앞선 범인의 신출귀몰하는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범죄의 예방과 범인 체포에 실패한 보다 주요한 원인은 국가가 치안 보다는 시국사건에 경찰력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전두환 정권 말과 노태우 정권 후반을 관통하는 시기인데, 이 기간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 통일운동 등이 가장 성했던 때였고 정권도 이에 대응하는데 동원가능한 공권력을 쏟아부었다. 정권의 안위와 관련된 것이니만큼 대통령을 위시한 정권 수뇌부의 관심도 당연히 시국사건에 집중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화성연쇄살인 사건 등 치안사건에 국가기관이 투입할 관심과 자원이 제약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사건을 예방할 수도, 범인을 검거할 수도 없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가장 중요한 존재목적으로 하는 국가는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완전히 실패했고, 철저히 무능했다.
세월호 사건과 화성연쇄살인 사건 사이에 유사점은 찾기 힘들다. 다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그렇지 못하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국가가 제일의 책무 완수에 철저히 실패했다는 점만은 놀랍도록 동일하다. 국민의 생명 보호는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중의 으뜸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는 여객선에 대한 정기점검을 하고, 안전에 관한 각종 교육과 지침을 마련해 집행토록 하며, 여객선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당도할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와 인력을 투입하고, 유사시에 승객을 구난할 수 있는 정교한 매뉴얼과 이를 실현할 시스템을 갖추며, 각종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다.
비대언론들이 사태를 호도하려고 하고 있지만, 세월호 사건에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못했다. 국가는 구조에 결정적인,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돌이킬 수도 없는 '골든타임'에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에도 지리멸렬한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진도 앞바다에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권안보에는 집요하고 유능하지만,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데는 완전히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가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니.
세월호 사건-사태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은 가슴을 찢는 아픔을 준다. 여기서 말하는 아픔은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 고통이다. 사망자와 실종자 다수가 생의 초입에 있는 청소년들이라는 사실은 비극의 비극이다. 세월호 사건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을 다스리고 있는 박근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능력과 진정성에 대해, 국가기관과 공무원들의 존재 이유에 대해, 언론의 사명과 본령에 대해,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병리적 멘털리티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하지도 못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죄로 너무나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을 달랠 길이 없으며, 대한민국의 몰락을 막지도 못할 것이다. 어쩌면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이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징후적 사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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