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책이라면 선뜻 손이 간다. 실용문에서 창작까지 가리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사서 읽고, 그렇지 않더라도 목차 정도는 살핀다. 30년 넘게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삼았고, 7년째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 처지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무엇보다 준비 없이 기자 생활을 시작했기에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탓이 크다.
그렇게 해서 중국 고전 <문심조룡>에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김진준 옮김, 김영사 펴냄)까지 다양한 책을 섭렵했다.(물론 그렇다고 좋은 글을 쓰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나마 나아진 것이 이 정도라 할 수는 있어도…) 그 중 하나가 <당송팔가문(唐宋八家文)>이다. 청나라 때 학자 심덕잠이 엮은 책 중에 57편을 골라 우리말로 옮긴 문고본이었는데 1970년대 중반 병실에서 읽었다. 동양 고전과 글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데다 약간은 폼을 잡으려는 의도가 작용한 선택이었는데 썩 감명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그 책에 남긴 메모를 보니 "제목만 그럴 듯하다. 번역을 하니 운율, 뜻 등이 사라져 모두 사라져 이 글들이 과연 그리 명문인지 의아하다. 형식이 그리 되니 내용 또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당대에는 뛰어났을지 몰라도 공연히 힘들여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고 되어 있다. 한유, 유종원, 소식 등 중국을 빛낸 명 문장가들에게서 명문 쓰기 비법을 얻어내려는 기대가 컸음인지 자못 치기어린 평을 내렸던 셈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장삿속으로 지어진 제목은 아니다. 원제가 '당송고문팔가개술(唐宋古文八家槪述)'인 이 책은 중국 문학사 또는 문장사에서 당송 때 활약한 팔대가의 기여를 개관하고 있어서다. 한유 등이 주창한 고문운동은 가히 '혁신'이라 할 만 하기에 번역판 제목이 크게 벗어났다 하기는 힘들다.
이들이 활동할 무렵의 중국 문체의 주류는 사육변려문이었다. 반드시 대구(對句)와 운율 등 형식미와, 미사여구와 전고(典故)를 풍부하게 사용하는 수사적 장식성에 치중한 스타일이었다. 이른바 봉건지배층의 '묘당(廟堂)문학'에 쓰였는데 "공허한 말을 하는데 편리하고 아첨을 바치는 데 편한" 형식이었다. 이에 대해 팔대가의 글은 실용과 예술성을 아우르면서 구어를 우대하는 예술적 표현으로 중국 문장의 새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읽을 수 있다. '팔가' 명칭의 유래-명나라 초 주우(朱右)가 편찬한 '팔선생집(八先生集)'에서 비롯되었단다-를 설명하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들이 주도한 고문운동의 의의와 영향을 분석한 1장, 11장과, 각각의 약전(略傳)과 문학론, 예술적 성취를 살핀 2~10장이 그것이다.
왜 팔대가, 팔대가 하는지를 보여주는 1장에선 8세기 중당(中唐) 이전까지 주류 문학이었던 변려문(騈儷文)의 폐해가 나온다. 황제가 옥패를 내릴 경우 주문(奏文)을 바친다면 "삼하가 감사합니다" 두 마디면 될 것을 변려문으로는 "…은혜가 내부에서 발하고, 성대히 상을 내려주시네. 신은 바야흐로 은덕에 감사하자니 위세에 비해 명성이 부끄럽고 깊은 자애를 받자니 기쁨과 부담이 모두 찾아드네"라 요란을 떨었다는 것이다.
귀양 등을 계기로 사회 하층민의 삶에 눈 뜬 이들이 문예를 위한 문예를 거부하고(물론 한유는 인물 묘사에, 유종원이 경물 묘사에 뛰어나는 등 문장 자체도 빼어나긴 했단다), 현실 문제를 궁구하고 이를 일상어로 간결하고 호방하게 표현한 것은 당연하다. 고전의 단순한 답습을 배척한 것도 이들의 공통점인데 이 중 '논어'가 공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 아니란 점을 논증한 유종원이 눈길을 끈다.
그는 '논어변(論語辯)' 상편에서 공자보다 마흔여섯 살 적은 증삼이 공자 제자 중 가장 어렸는데 늙어서 죽었다, 논어는 증자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논어는 공자 사후 한참 뒤에 완성됐다며 합리적 논증을 통해 논어는 증자의 제자들이 완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술은 음풍농월이나 고전을 맹종하는 태도에서는 나올 수 없는 글이다.
팔대가의 문장을 언어학적으로도 살핀 점도 이 책의 특장인데 이는 우리 독자로서는 읽기 쉽지도 않고 실감도 가지 않는다. 예를 들면 구양수가 '풍락정기(豐樂亭記)'에서 청류관이란 지명을 가운데 지(之)자를 넣어 청류지관으로 4음절로 표현한 것을 자못 높게 평가한다든지, 어조사나 허사의 용법을 상술한 대목이 그렇다.
교재 형식의 입문서란 점도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예컨대 팔대가의 약전이 모두 '아무개의 자는, 호는, 어느 때 어디 사람'이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읽는 맛을 떨어뜨린다. 게다가 글을 고치는 퇴고(推敲)란 말을 낳은 시인 가도(賈島)와 한유의 만남 같은 일화는 빠지고 각 대가의 생애를 '공식적'으로 살피는 데 그친 점 역시 그렇다.
책은 역사와 평론이 어우러졌다는 평이 정확하겠다.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당송팔대가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개관하는, 드문 인문교양서란 점에서 의의가 있고 중국문학사나 동양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흥미롭겠다.
또한 글을 쓰는 마음가짐, 글에 무엇을 담을 것일까 하는 글쓰기의 '얼'을 다루는 입문서 구실을 톡톡히 하지만 논리의 전개라든가 문장 표현법 같은 '기술'을 구하려 한다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혹 나중에라도 글 배경과 구조 설명이 더해진 팔대가의 명문선(名文選)을 함께 읽게 된다면 어떨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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